▲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제일모직-삼성물산의 부당 합병’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그동안 경영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재계는 이 회장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오랫동안 미뤄왔던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과 같은 사업 결정을 속도감 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9월1일
이재용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뒤 약 3년5개월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재판에서 이 회장 측과 검찰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로는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를 의도적으로 높였는가’하는 것이다. 이어 두 번째는 ‘제일모직 주가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지시했는가’, 마지막으론 ‘이 모든 것을 이 회장이 보고받고 지시했는가’다.
재판부는 이 세 쟁점과 관련해 모두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공정하다고 판단할 증거가 없다”며 “합병 목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합작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은폐했다 보기도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 이 회장이 이같은 불법 행위를 보고받고 지시했는지도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지만, 1심 재판부가 대부분 쟁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결정한 만큼 항소심에서도 검찰이 범죄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진단이다.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남에 따라 이 회장은 앞으로 ‘뉴삼성’ 비전 실현을 위해 본격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23년 11월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지금 세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그 한 가운데 있다”며 “부디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맨 왼쪽)에게 빈대떡을 건네고 있다. <연합뉴스> |
이 회장은 우선 미뤄왔던 대규모 투자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28일 공식적으로 삼성전자 회장에 올랐지만, 미래 먹거리 신사업 확보 측면에서는 이렇다할 경영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2016년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한 뒤 8년 동안 대형 기업 인수합병은 전혀 없었다. 스마트폰, 가전은 물론 ‘초격차(따라올수 없는 격차)’를 유지하던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마저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공지능 반도체인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았는데, 재계는 삼성전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결단과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히장이 운신할 수 있는 범위에 제한이 생기면서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미래 신수종 사업 발굴과 과감한 대규모 투자 집행을 위해 전체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위한 '컨트롤타워 부활'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국정 농단 사건에 휘말린 2017년 2월28일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삼성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대응방안,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신사업 진출 등 중장기 전략을 세우려면 전체 계열사를 관장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재계의 지적이 이어져왔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컨트롤타워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3기 준감위에서 삼성의 컨트롤타워 부활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임을 내비쳤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도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말 사내이사 임기를 마친 뒤 4년 넘게 등기이사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LG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등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일각에서는 이르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는 시급히 결정할 사안은 아닐 것”이라며 “무죄 선고를 받아 어느 정도 운식의 폭이 자유로워졌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항소할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