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7-10 14: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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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여야가 6·3 대선 공통 공약 실현을 위해 협의를 강화하며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의 공통 공약에는 기술탈취 및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증거수집제도)가 포함돼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는 향후 기업들의 민사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도입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 갈무리>
10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공통 대선 공약 목록을 공유하고 법안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야 정책위의장은 지난 7일에 만나 '민생 공통공약 추진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후속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어제(9일) 국민의힘과 공통 법안 목록을 공유했고 실무회의 첫 단추를 뀄다”며 “중소벤처기업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200여 건의 공통 공약 가운데 입법이 필요한 80건을 추렸는데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도 이 가운데 포함돼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최근 한국형 디스커비리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는 소송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술탈취 입증 및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현장조사로 수집해 증거로 활용하는 제도다.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 전에 서로의 증거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는 이를 한국 현실에 맞도록 수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침해 내용은 기술을 침해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기 일쑤이다. 이에 피해 기업이 기술탈취라는 점을 재판에서 입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김정호, 박범계, 오세희, 김동아, 송재봉 민주당 의원은 물론 서일준,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관련 법안(특허법, 하도급법, 대중소기업 상생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그러나 디스커버리 제도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특히 반도체업계는 디스커버리 제도 시행으로 기술 정보가 재판 과정에서 유출되면 해외소송에서 우리 기업이 불리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서치원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입법 토론회’에서 “법률자문서 공개에 대해 반도체업계가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해외소송에서는 '변호사 비밀 유지권' 제도로 인해 기술 정보를 감출 수가 있는데 증거수집 과정에서 국내 소송에서 기술 정보가 공개된다면 해외소송에서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소송 리스크 증가’도 재계의 부담 요인이다.
재계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 정보 공개 의무가 확대되면 기업의 사소한 실수나 과거의 문제점까지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한다. 이에 기업의 소송 건수가 증가하고 소송 방어를 위한 법률 비용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판사가 지정한 전문가가 비밀유지 확약을 한 상태에서 상대방(침해자)의 자료를 열람한 뒤 판사에게 보고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어 비빌유출 위험성이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실제 오세희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영업 기밀 유출 방지를 위해 전문가에 의한 사실조사 제도를 도입하고 중소벤처기업부로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되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 등 비공개 자료에 해당하는 경우 법원이 이를 확인하도록 했다. 또한 영업비밀을 알게 된 사람에게 비밀유지명령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최승재 세종대 교수는 4일 지식재산위원회가 개최한 '제5차 IP 정책 포럼'에서 “현재 발의된 법안들 아래에선 기업이 제기하는 영업비밀 유출될 우려가 적고, 특허 괴물의 과다한 소송 제기 등도 사실상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입법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남근 페이스북 갈무리>
게다가 중소기업들에게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CJ올리브영이 한 중소기업의 마스크팩 기술을 탈취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6월 중소기업이 CJ올리브영을 상대로 제기한 마스크팩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해당 중소기업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만일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런 사례에서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증거를 확보하는 게 훨씬 쉬워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보 비대칭이 해소돼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9일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토론회에서 “기술탈취 피해가 발생해도 중소기업들은 기술탈취 소송에서 손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독일식 전문가 사실조사제도 도입 등을 통해 기술침해 소송의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입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