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을 지키며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았던 이른바 '찐윤'(진짜 친윤) 의원 44인은 이번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이 계속 국민의힘 주류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0일 새벽 2시7분쯤 직권남용 권리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공용서류손상, 대통령경호법 위반, 범인도피 교사 혐의로 내란 특검팀이 청구한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3월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뒤 124일 만이다.
남세진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내란 특검팀이 제시한 관계자 진술과 물적 증거를 토대로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전날 오후 2시22분부터 6시간40분간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출석해 무혐의를 항변했음에도 두 번째 구속을 피하지는 못했다.
국민의힘은 '안타깝다'는 짧은 입장만 내놓은 뒤 사실상 '침묵' 또는 '회피'에 들어갔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전직 대통령이 다시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굉장히 송구하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수사와 재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또 공정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상전벽해라 할 만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앞서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전 체포영장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1월6일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서울 한남동 관저 앞으로 집결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체포를 몸으로 막아 나선 것이다.
이들 사이에는 최근 압수수색을 당한 윤상현 의원, 출국금지된 김선교 의원,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나경원 의원, 그리고 이날 '유감'의 뜻을 밝힌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전체 의원(108명)의 약 40%나 되는 의원들이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셈이다. 이들은 주로 영남권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당직을 가진 의원도 다수였다. '당의 주류'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윤 전 대통령의 체포를 몸으로 막아섰던 이른바 찐윤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의 사저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도, 법원 앞에도, 서울구치소 앞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성훈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 때 의원들이 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반응이 있었냐'는 물음에 "그런 내용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의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문제이긴 하지만 의원들이 그런 (단체행동) 입장을 표명한 경우는 없었다. (분위기도) 형성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찐윤 의원들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의 칼날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당내에서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제는 윤 전 대통령에 '충성'을 다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9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한남동 관저로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집결했던 의원들이 무려 45명이다.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며 "이들은 인적 쇄신의 대상으로, 인적 청산의 대상은 45 플러스 알파"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적·사법적으로 수세에 몰린 친윤계는 앞으로 어디서 정치적 활로를 찾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윤계는 우선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송언석 원내대표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직까지 겸임하고 있어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특검의 수사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송 원내대표 등 친윤계는 비대위를 통해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단일지도체제'는 당대표 '원톱' 구조로 당대표 선거와 최고위원 선거를 따로 치른다. 반면 집단지도체제는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권한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간판급 스타'가 없어 전당대회에서 불리한 친윤계는 집단지도체제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친윤계에 여러 중진 의원들이 포진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이렇다 할 간판 스타가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친윤계는 '당대표급' 인사들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해 거대 여당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은 주류 세력의 기득권 유지 의도가 있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7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우리가 10년 전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을 때 완전 봉숭아 학당이 됐다"며 "누가 책임을 지는 각오로 당권을 쥐고 당을 운영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친윤계는 이렇게 당권을 지키면서 당분간 '방어전'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내란·김건희·채상병 등 3대 특검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어 1차 목표는 '특검 국면에서 살아남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야당 탄압'을 명분 삼아 세력을 유지하면서 버틴다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윤계 의원들 대부분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이들 지역구 유권자들은 지난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줬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은 9일 MBC '뉴스외전'에서 "(국민의힘 의원) 107명 중에서 90여 명이 이제 지역구인데 그중에 60여 명 정도가 다 영남 쪽이고 안정적인 지역구"라며 "당권 경쟁에서 승리하면 3년 뒤에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당연히 당선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