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활발한 경영행보에
문재인 정부가 긍정적 반응을 내놓으며 힘을 실어줬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올해는 더 적극적으로 경영보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박근혜 게이트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지난해만 8차례의 해외출장을 다녀올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행사에 등장하거나 경영진과 공식적으로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부회장이 직접 5G통신장비와 반도체 등을 담당하는 주요 사업장을 방문해 경영현안을 챙기는 일이 늘어나면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3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5G통신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했고 4일 기흥사업장에서 반도체사업부 경영진과 간담회를 열었다. 삼성SDI 등 계열사도 직접 방문해 점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0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이 부회장을 만나 "그동안 걱정이 있었지만 이 부회장의 연초 행보를 보면서 많은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 부회장의 경영보폭 확대를 지지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리는 지난해 한국 반도체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도 삼성전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며 5G통신장비와 같은 신사업에 진출을 앞당긴 노력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에서 거둔 성과에 이 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공이 컸다는 점을 인정한 대목은 앞으로 정부의 경제 활성화 노력에 적극 호응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정부와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오너 일가의 사이는 무척 껄끄러웠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게이트의 여파로 집권에 도움을 받은 반면 이 부회장은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반부터 삼성을 포함한 재벌그룹의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우면서 정부와 삼성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세계 무역분쟁 등으로 한국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삼성의 멀어진 거리는 양쪽 모두에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한국경제에서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그룹의 투자 확대 등 역할이, 삼성은 사업 경쟁력 강화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 등 지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삼성의 소원한 관계가 장기화한 데는 소통창구 부재 탓도 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박근혜 게이트 여파로 삼성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삼성과 정부가 소통할 채널이 사라진 것이 가장 아쉬운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보면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정부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인도에서 삼성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 부회장을 만났다. 8월에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이 부회장과 간담회를 마련했다.
이 부회장과 정부의 접촉면도 넓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하고, 올해 1월 정부 신년회에도 참석해 문 대통령과 만남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이 경영보폭을 넓히는 한편 정부 관계자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삼성의 역할과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경제 위기 해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올해 이 부회장이 박근혜 게이트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점도 정부와 접점을 넓히고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물론 삼성과 정부의 관계는 이 부회장의 사법처리와 별개 사안이지만 한국경제 위기 대응에 삼성의 역할을 인정받는 것은 사회적으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은 이 총리와 간담회에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도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한편 중소기업과 상생 및 미래 인재 육성에도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이 지난해 8월 180조 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으며 정부의 경제 활성화 노력에 어느 정도 화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런 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올해 박근혜 게이트 재판과 사회적 여론에 따른 부담을 뒤로 하고 더욱 활발한 경영행보를 보일 공산이 크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