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7-10 15: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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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가 기업회생의 위기에 몰렸다. 사진은 박태훈 왓챠 대표이사가 2022년 왓챠 미디어데이에서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한때 ‘개인 맞춤화’ 플랫폼으로 주목받았던 왓챠가 벼랑 끝에 섰다. 국내 1세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출발해 기술 기반 추천 서비스와 마니아 콘텐츠로 차별화를 꾀했지만, 결국 치열한 콘텐츠 전쟁과 투자 자본력 차이를 넘지 못한 채 회생 절차의 문턱까지 밀렸다.
최근 왓챠에 투자한 전환사채(CB) 채권자 가운데 한 곳이 법원에 단독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왓챠는 “협의를 통해 철회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등 돌린 투자자 신뢰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9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왓챠의 시장 내 존재감이 크게 약해지며 존속 가능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왓챠는 2016년 OTT 시장에 진출한 이후 영화 추천 기술, 마니아층 중심 콘텐츠, 개인화 서비스 등을 앞세워 빠르게 이용자를 끌어 모았다. 2021년에는 두나무와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49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천억 원 이상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OTT 시장이 본격적인 ‘쩐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왓챠의 균열도 본격화됐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플랫폼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와 독점 계약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왓챠는 이렇다 할 대표작 하나 없이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이 같은 격차는 극명하게 갈린 투자 여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넷플릭스는 2021년 한국 콘텐츠에 5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023년에는 2026년까지 총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경쟁사들이 잇달아 오리지널 콘텐츠를 쏟아내는 동안 왓챠는 콘텐츠 경쟁에서 크게 밀려났다. 그 여파는 곧바로 이용자 이탈로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기준 왓챠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59만 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8%나 줄었다.
업계에선 이번 기업회생 신청을 기점으로 투자자 이탈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본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추가 자금 유치는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다.
왓챠는 2022년 매출 734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같은 해 555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2023년 영업손실을 221억 원, 2024년에는 20억 원 안팎까지 줄였지만 외형도 함께 축소됐다. 같은 기간 각각 매출 438억 원, 338억 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는 완전히 꺾였다.
재무구조 역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기준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907억 원 많아 단기 지급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6월에는 감사인 신한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거절’ 의견을 받으며 기업 존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공식화됐다.
이에 박태훈 왓챠 대표는 저비용의 고전 영화와 드라마를 앞세워 마니아층 공략에 나섰다. 구독료 외에도 ‘왓챠 개봉관’ 등 VOD 단건 판매 서비스를 도입해 수익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신작 영화를 시청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 왓챠가 마니아층을 겨냥한 저예산 콘텐츠와 단건 판매 등으로 수익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마니아 콘텐츠만으로는 유료 구독자 확대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단건 판매 역시 이용자 전환율과 재구매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독 외 수익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용자들의 충성도가 전제돼야 하지만 이탈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기반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 속에서 왓챠가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긴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다. 전환사채의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한 데다, 만기 연장에도 실패하면서 자본시장의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회생 신청에 나선 투자사 역시 자금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회생절차를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왓챠는 초창기 기술 기반 미디어 플랫폼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자본력 경쟁에서 밀리며 성장성과 회수 가능성 모두 희박해졌다”며 “지분 가치보다는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회생 신청을 철회한다고 해도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닌 실질적인 자금 수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추가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 없이 독자 생존을 이어가기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왓챠는 과거 LG유플러스와 인수 협상을 추진했지만 악화된 실적과 복잡한 전환사채 구조로 인해 협상이 무산된 바 있다. 최근에는 전체 기업 인수 대신 콘텐츠 라이브러리나 추천 시스템 등 핵심 자산만을 분리 매각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투자자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인수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각에선 왓챠가 현 위기를 극복하려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왓챠는 창업자인 박태훈 대표가 10년 넘게 회사를 이끌며 구조조정, 비용 절감, 신사업 정리 등을 직접 진두지휘해왔다.
하지만 반복된 적자와 투자 유치 실패, 인수합병 무산 등이 이어지며 창업자 중심의 단일 리더십만으로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 역량뿐 아니라 외부 시각과 전문성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회생 절차를 둘러싼 대외 신뢰 회복과 전략적 투자 유치, 기업가치 재정립을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왓챠는 초기 기술력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주목받았지만 현재 자본시장 내 신뢰는 이미 크게 훼손됐다”며 “이제는 창업자 개인의 철학보다도 시장 관점에서 회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리빌딩할 수 있는 외부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