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사진)이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다툼에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 사업부)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비즈니스포스트]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다툼에 중국 다롄에 공장을 둔 계열사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사업부)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국내 공장과 솔리다임의 다롄 공장은 낸드 생산 방식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 속에서 SK하이닉스는 다롄 공장 생산분을 국내로 이전하기도, 현지 추가 투자를 하기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24일 기업신용평가업계와 증권업계 말을 종합하면 박 부회장에게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 시설 가운데 다롄 공장은 미중 갈등 속에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20%를 중국 솔리다임 다롄 공장에서 생산하고, D램의 40%를 중국 우시 자체 공장에서 만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정책에 따라 첨단 생산장비의 중국 반입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SK하이닉스 중국공장의 구형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신용평가업체들은 박 부회장이 중장기적으로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반도체 칩을 생산할 때 국내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중국 공장의 용도전환을 꾀해 연착륙해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다롄 공장의 경우 낸드 생산 핵심기술이 국내와 달라 한국 공장으로 물량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으로 SK하이닉스의 다롄공장은 플로팅 게이트 기술(FG)을, 한국공장은 차지트랩플래시(CTF) 기술을 적용해 낸드플래시를 생산한다. 두 공장 사이 기술적 기반이 달라 보완 생산이 어렵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다롄 공장을 핵심으로 하는 솔리다임 인수는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직접 밀어붙인 일로 전해졌다.
이 전 사장이 솔라다임 실적 부진에 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박 부회장으로서는 SK하이닉스의 골칫거리가 된 솔리다임의 뒤처리를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박 부회장에게 다롄 공장은 뱉을 수도 그냥 삼킬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5월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한 다렌 2공장을 착공해 이르면 5월 건물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설비 투자 축소로 인해 반도체 장비 반입이 늦춰지고 있다.
박 부회장은 다롄 2공장 착공식에서 “SK그룹은 다롄을 SK하이닉스의 핵심 생산기지로 보고 투자확대와 기술개발을 지속할 것이다”고 말했지만 속내가 복잡하게 됐다.
미국 상무부는 2022년 10월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한정해서는 1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지만 아직까지 추가 연장여부는 불확실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삼성전자와 비교해 메모리 의존도가 큰 SK하이닉스를 향해 "미국의 반도체 정책 시행과정에서 더 이상 규제 예외를 적용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미국의 유예조치가 종료되는 올해 10월까지 다렌 2공장의 장비를 모두 반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가 제2공장을 다 지은 뒤 곧바로 중국 현지업체에 매각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YMTC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산 장비를 활용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추진 중인 점도 이런 시각에 힘을 보탠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YMTC가 자국 장비로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도 지난해 콘퍼런스콜 당시 “중국 현지 공장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면 공장을 매각하거나 장비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다롄 2공장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업계의 한 전문가는 "현재 미중 관계에서 볼 때 SK하이닉스가 다롄 2공장을 중국 업체에 매각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업계 일각에서는 "다롄공장은 국내 공장과 기술이 다르지만 모바일 낸드가 아닌 서버용 낸드 제품 중심"이라며 "현재 어려운 시기를 지나 메모리 업황이 좋아지면 다롄 공장은 SK하이닉스 실적 회복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