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시행하는 감세 법안에 배터리 투자 지원 정책은 유지되지만 전기차 판매 인센티브는 폐지되며 한국 배터리 3사에 여전히 불안 요소가 남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GM 전기차 주요 라인업 참고용 사진.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의 감세 법안이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 투자를 계속 지원하면서도 수요 위축은 불가피한 방향으로 추진돼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는 전기차 산업 침체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을 잠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13일 로이터와 폴리티코 등 외신을 종합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의 ‘합작품’인 감세 법안이 시행되며 전기차 시장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전문지 폴리티코는 “공화당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투자를 지원하며 정작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에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는 불균형한 정책을 도입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전기차 신차 또는 중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최대 7500달러(약 1030만 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왔다. 이는 9월 이후에 곧바로 폐지된다.
반면 미국에서 배터리 셀과 모듈을 제조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세액공제 혜택은 대부분 유지됐다.
폴리티코는 현재 배터리 생산 투자가 이뤄지는 미국 내 대부분 지역이 공화당 지지층에 포함된 만큼 이러한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을 전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업체들이 주축으로 자리잡은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설비 투자가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단기적으로 실적에 받게 될 타격은 최소한에 그칠 공산이 크다.
폴리티코는 배터리를 비롯한 전기차 관련 시장의 운명이 결국 소비자들의 손에 달렸다고 바라봤다. 구매 인센티브 폐지 뒤에도 이들의 수요가 유지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남았다.
미국 전기차 수요는 한동안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기업들이 세제혜택 폐지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차량을 판매하기 위해 프로모션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테슬라와 포드 등 제조사는 올해 가을까지 전기차 판매량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시작했다”며 “소비자들이 보조금 ‘막차’를 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체들이 이처럼 전기차 판매에 전폭적으로 힘을 싣는 상황은 오히려 정부 지원이 폐지된 뒤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특수’가 끝나고 나면 미국에서 전기차 수요가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에도 점차 타격이 번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 포드와 SK온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조감도(왼쪽) 및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오하이오주 배터리 합작공장. |
로이터는 5월 기준으로 미국 전기차 평균 판매가가 5만8천 달러(약 7970만 원)로 전체 차량 평균과 비교해 1만 달러 가까이 비싸다는 조사기관 코스오토모티브의 분석을 전했다.
전기차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라 제조사의 초반 투자비용 회수 및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 공급망 안정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적 모순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수요 불확실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차 전문지 인사이드EV는 “미국 정부는 중국에 집중돼 있던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고 있다는 점을 자부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상당 부분 전기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러한 리쇼어링 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 투자가 늘어났기 때문인데 정부 지원 감축이 큰 변수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인사이드EV는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중심으로 변화하는 흐름에서 미국만 소외되는 일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기차 인센티브 폐지 여파로 미국에 투자가 지연 또는 위축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사례도 늘어나며 제조업 일자리 감소, 지역경제 침체 장기화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이를 계기로 중국산 배터리에 의존을 높이거나 에너지 산업에서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며 국가 경쟁력 약화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바이든 정부가 다양한 전기차 구매 및 투자 지원 정책으로 유치한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미국 진출 확대는 미국의 오랜 숙원이던 제조업 리쇼어링에 성공적 사례로 꼽혔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여전히 미국 내 설비 투자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큰 폭의 방향 전환은 파악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 개월 뒤부터 미국 전기차 수요가 급감하고 제조사들도 이에 맞춰 배터리 수요가 줄어드는 등 변화가 본격화된다면 이런 계획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인사이드EV는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은 계속 유지되겠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지고 기업들에 부담도 커질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은 이미 반대 노선을 탔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