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한이 오는 9일로 다가오면서 국내 자동차·철강·가전·반도체 등 수출 기업들은 관세폭탄에 따른 직격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제시한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한(7월9일 0시1분)이 다가오면서 자동차·철강 분야에서 시작된 품목 관세 여파가 가전·IT 등 국내 주요 수출 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상호 관세가 실제 발효한다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9조 원 이상 감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관세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는 주요 기업들은 미국 현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1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유예 기간 만료일인 7월8일까지 관세 합의를 하지 않으면, 지난 4월 초에 발표한 고율의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다고 압박하면서 정부와 수출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올해 4월5월 기본관세 10%와 국가별 개별 관세로 구성된 상호관세(한국 15%)를 부과했지만, 90일 동안 상호관세 적용은 유예했다.
그 뒤 각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협상을 이어왔으며 최근 영국, 중국 두 국가와는 거의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6월3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6월22일이 되어서야 고위급 한미 관세 협상에 나선 만큼 7월8일 유예기간 종료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철강·알루미늄(50%)과 자동차(25%)에 관해서도 미국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줄라이 패키지(7월 포괄합의)라는 말은 이제 쓸 필요가 없다”며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이 매우 가변적”이라고 말하며 미국과 관세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만약 합의 없이 상호관세 유예 기간이 지난다면,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기본관세 10%에 상호관세 15%를 더한 25%의 관세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가 실제 발효한다면 국내 실질 GDP는 최대 0.4%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2024년 한국의 실질 GDP가 2292조2024억 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9조 원 이상의 GDP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귀 KIEP 무역협정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30일 ‘한미 관세조치 협의 관련 공청회’에서 “한미가 통상 협상에 실패할 경우, 우리나라의 실질 GDP은 기존보다 0.3%에서 0.4% 하락할 것”이라며 “다만 협의가 잘 이뤄져 한국에만 낮아진 관세가 부과된다면 실질 GDP는 상호관세 전면 부과 때보다 0.427~0.751%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6월2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맨 왼쪽),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가전, 자동차 산업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오븐 등 가전은 6월23일부터 철강으로 만드는 파생 상품으로 분류돼 50%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30일 ‘2025년 3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 보고서’를 통해 가전 품목의 3분기 EBSI가 52.7로, 수출 여건이 가장 크게 악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EBSI는 다음 분기 수출 경기에 관한 국내 수출기업들의 전망을 조사·분석한 지표로, 100 이하면 경기가 전분기 대비 나빠질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는 의미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 품목 관세 25%가 유지되면 현대자동차 영업이익은 연간 6조2600억 원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에 있는 현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려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가업 업체도 공급망을 재편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LG전자는 베트남 공장의 가동률을 조정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냉장고 물량을 줄이는 대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라 관세 면제 혜택을 받는 멕시코 공장의 냉장고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도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한 일부 물량의 생산지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부품 업체인 LG이노텍도 올해 말부터 멕시코 공장에서 전장 부품을 양산하며, 상대적 ‘관세 안전지대’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올해 상반기 상호관세 유예에 따른 메모리 비축 수요로 반사이익을 입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자동차와 같은 약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이 25% 반도체 품목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4.7~8.3%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양지원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가전·자동차 등 관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품목뿐 아니라 반도체 등 전략 품목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과 시장 다변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