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회장은 2022년 6월 산업은행 회장에 오른 뒤 그해 초 현대중공업의 인수가 무산된 대우조선해양 매각전에 속도를 내 9월 한화그룹을 인수예정자로 선정했다.
사실상 취임과 동시에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진두지휘해 성과를 낸 것이다. 강 회장은 2023년 6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잘한 일로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꼽기도 했다.
강 회장은 임기 내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힘을 실으며 노조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수시로 갈등을 일으켰다.
이런 정치적 논란에 가려졌지만 강 회장은 교수 출신 경제전문가로 산업은행을 이끄는 동안 대우조선해양 매각뿐 아니라 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과 쌍용차 매각 마무리, 태영건설 구조조정 등 굵직한 과제들을 안정적으로 풀어냈다.
강 회장은 2022년 6월7일 임기를 시작해 6월6일 3년 임기가 끝난다. 6월3일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강 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강 회장이 임기 막판 잔여 지분 매각으로 임기 초반 새 주인을 찾아준 한화오션과 인연 정리 작업의 의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강 회장의 한화오션 지분 매각 결정은 산업은행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산업은행이 한화오션 지분을 처분하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분야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13.9%로 국내 주요 은행 가운데 가장 낮다. 지난해 3분기 말 14.36%에서 3%포인트 넘게 빠진 것으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3%를 살짝 웃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 현물출자를 비롯해 2조4천억 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는데도 반짝 효과를 보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서도 2월 650억 원, 3월 1550억 원 등 2천억 원이 넘는 증자를 진행한 데 이어 추가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국내 산업 육성 등을 이끄는 국책은행으로 자기자본비율이 낮으면 투자 여력이 줄어 새로운 투자를 진행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강 회장은 취임 이후 국내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두고 여러 차례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에 3년 동안 100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대한민국 리바운드 프로그램’도 새로 내놨다.
산업은행이 신규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기자본비율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데 한화오션과 같은 주식 자산 매각은 비율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BIS 자기자본비율을 산출할 때 분모에는 위험가중자산(RWA)이 들어간다. 주식 자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중치가 부여돼 주식 자산을 매각하면 위험가중자산을 줄일 수 있다.
▲ 산업은행이 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HMM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나온다. 사진은 HMM 선박 모습. < HMM >
강 회장이 이와 같은 이유로, 위험가중자산을 줄이기 위해 남은 임기 중 HMM 지분을 매각하기 위한 정지 작업을 할 가능성도 나온다.
강 회장은 23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린 ‘넥스트라운드 실리코밸리’ 행사 이후 기자들과 만나 “HMM 지분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 규정상 은행이 특정기업 지분을 자기자본 대비 15% 이상 들고 있으면 15%가 넘는 지분에는 위험가중치 1250%가 적용된다.
HMM의 경우 주가가 1만8600원대에 오르면 위험가중치 1250%가 적용되는데 HMM 주가는 전날 1만8660원에 장을 마쳤다.
강 회장은 “HMM 주가가 2만5천 원을 넘어가면 BIS 자기자본비율 13%가 위험해진다”며 아무리 말년 병장이라도 산업은행을 위험 상황으로 내몰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