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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꼬인 삼성 지배구조, 이재용 소유와 경영 분리하면 길 있다

남희헌 기자
2020-09-22   /  10:20: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삼성그룹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재벌기업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던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최근 보험업법 개정을 계기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과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삼성그룹의 역할모델 발렌베리그룹은 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모범답안으로 주목받는가 

소유와 경영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분리하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국내만 놓고 보면 재벌기업이 소유와 경영을 모두 차지하려다 보니 불법 논란이 심상치 않게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이 앞으로 오너경영체제를 마감하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하는 지배구조로 가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새 지배구조체제와 관련한 역할모델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바로 발렌베리그룹이다.

삼성그룹도 이건희 회장 때부터 이재용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가량 발렌베리가문과 교류해오며 그들의 상속과 소유, 그리고 경영 문제를 연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발렌베리그룹은 5대째, 햇수로만 160여 년 동안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스웨덴의 재벌그룹이다.

스웨덴 GDP의 20~30%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산하에는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 그리고 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 등 100여 개의 기업이 있다.

이런 기업집단을 보유한 가문이라면 당연히 오너일가 대부분이 계열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여겨지지만 발렌베리가문은 다르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룹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직접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도 발렌베리가문 5세대 가운데 3명만이 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발렌베리재단이 최상단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인베스터와 팜(FAM)이라는 중간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인베스터는 아래에 사브나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등 수십 개의 상장기업을 드고 있고, FAM 밑에는 보스턴파워와 PWP, SKF 등 여러 비상장사가 있다.

발렌베리그룹의 소유와 경영 분리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해서 ‘기업을 소유하고만 있고 경영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경영을 전문경영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발렌베리그룹을 두고 일컫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오너일가들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분을 소유한 기업들의 경영에 개입할 이유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그룹 산하의 기업 경영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국내 재벌기업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더 쉽다.

국내 여러 재벌기업의 오너일가들이 지닌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상속이다. 상속세도 내야하고 기업 지배력도 유지해야 하니까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힘을 쏟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를 통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등이 문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하지만 발렌베리그룹에는 이런 행위를 할 동기가 전혀 없다.

그룹이 소유한 기업들이 잘 돼봐야 발렌베리가문 오너일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전혀 없다. 그룹 최상단에 위치한 발렌베리재단에는 오너일가의 개인 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룹 산하 계열사에서 나온 이익금이 개인이 아닌 재단 소유로 귀속된다는 점도 특별한 장치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보니 발렌베리가문은 오로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만 신경을 쓸 수 있다.

개인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영에 개입하는 일을 없게 만드는 것이 발렌베리그룹에서 얘기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정리할 수 있다.

◆ 삼성그룹은 발렌베리그룹에서 무엇을 배울까? ‘전문적 이사회’와 ‘독립적 경영진’이 핵심

발렌베리가문은 실제로 어떻게 산하 기업들을 관리할까?

발렌베리그룹은 이사회라는 장치를 통해 산하 기업들의 경영에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재벌기업들처럼 경영진을 대표하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거나 이사회가 사실상 경영진의 거수기처럼 유명무실하지 않다는 것이 다르다.

발렌베리가문은 통상 소유기업에 기업의 현안에 전문적 식견을 지닌 1~3명의 이사를 지명한다. 

이들은 기업의 이슈에 대한 심도 깊은 분석과 비즈니스에 대한 지속적 업데이트를 제공해 이사들의 이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업의 중장기적 목표를 세우자는 이사회의 역할에만 철저하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오너일가의 전횡을 방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거수기 역할에만 충실하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 재벌기업 계열사의 이사회와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 과정에는 오너일가가 일방적으로 이사회에 그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렌베리가문이 지명한 이사들의 권한이 다른 이사회 멤버를 앞서지 않는다는 장치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는 발렌베리가문이 운용하는 기업 이사회의 한 단면만 보여준다.

실제로 발렌베리그룹 산하 기업의 이사회가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기업을 이끌 전문경영인을 선출하고 이들에게 완전하게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발렌베리그룹 산하 이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른바 ‘전문경영인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쥔 강한 이사회’ ‘독립적 경영진’이 발렌베리그룹 산하 계열사 이사회의 특징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이런 지배구조 원칙이 수립된 것은 발렌베리가문 2세대 때인 마르쿠스 시니어 회장 때였다.

그는 다양한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이사회와 경영진을 분리하는 것, 이것이 이사회를 통해 지명한 CEO를 지켜보고 적절하게 통제하는 확실하고 실용적인 해법”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그가 했던 말인 “유능한 CEO가 역전시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회사는 없으며 무능한 CEO가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우량한 기업도 없다”와 “선장이 우선, 그 다음이 배”라는 말은 현재까지도 기업경영과 관련해 자주 인용된다.

발렌베리가문은 지금도 산하 기업들을 관리하면서 누구를 어떤 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앉힐 지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각 기업 이사회에 사람을 파견하면서 기업 관계자들과 꾸준하게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 삼성그룹, 보험업법 개정안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삼성그룹에게 발렌베리가문과 같은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할까?

현재의 삼성그룹에게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 바로 보험업법 개정안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할 때 채권과 주식 합계액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 기준으로 하여 자산운용비율 3%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지분 보유분을 5년 이내에 해소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다시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이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점유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유력한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업법 개정안의 영향권 안에 놓인 그룹이 바로 삼성그룹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5%를 대부분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지분을 받아줄 수 있는 계열사가 거의 없다.

삼성그룹에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팔아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혹은 없다 등의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제로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해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부회장이 이미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식의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증권가에서 나오는 시나리오들은 모두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어떻게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유지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그룹이 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면 오너일가 중심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 시나리오가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마지막 문제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그룹에 주어지는 시간이 길어봐야 7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렌베리가문처럼 재단을 만들 것인지, 재단의 운영구조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리고 재단을 통해 기업을 소유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국회 논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고려하면 7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짧게 여겨진다.

이재용, 소유와 경영 분리하고자 하면 과거와 단절하는 새 길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부회장이 약속했듯이 경영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즉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문제로 되돌아간다면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실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삼성그룹이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승계 과정에서 온갖 무리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편법 증여’가 바로 대표적 사례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1995년 61억 원을 증여받는다. 이 부회장은 이 돈을 바로 승계의 종잣돈으로 삼아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헐값에 사들인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가 된 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이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른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그룹은 합병을 활용해 삼성전자 지배력 확보에 나선다.

2014년만 하더라도 삼성전자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가 바로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었는데 바로 삼성물산이 이 과정에서 핵심으로 부상한다.

삼성에버랜드는 2013년 제일모직과 합병해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상장한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다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한다.

이런 합병의 결과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삼성그룹의 급격한 변화는 여러 논란을 낳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 산정을 둘러싼 잡음,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 기업가치 부풀리기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지분 승계와 관련해서는 국정농단사건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돼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이 부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문제가 됐던 것은 소유와 경영권을 모두 손에 쥘 수 있는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썼지만 이 과정에서 편법이나 불법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소유도 하고 경영권을 쥘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시에 찾다 보니 결국 탈이 난 측면도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하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삼성의 지배구조에 접근해 볼 가능성도 생긴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왜 중요한가, 장하준 교수 말로 되돌아본다

삼성그룹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의 완전한 지분 승계를 이뤄내면서 삼성전자 지배력까지 유지하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삼성그룹에서 과거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려다가 접은 것도 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마냥 미뤄두기만은 힘들다.

삼성그룹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대신에 삼성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더 고민할 수 있게 해주자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해결책이 전무한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현재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고 전체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는 것이다.

삼성그룹에 특혜를 주자는 얘기가 아니라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보는 시각을 좀 바꾸자는 얘기다.

진보경제학계의 대표적 주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과거부터 이런 목소리를 내왔다.

장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를 생각할 때 당위성이 아니라 실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족 지배구조나 순환출자 등을 모두 잘못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관점이 아니라 한국경제에 좋은지 나쁜지의 관점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시각이다.

장 교수는 2014년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기업으로 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기투자가 가능했던 삼성 특유의 지배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너일가가 들고 있는 지분이 미미함에도 전체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순환출자가 삼성그룹에 있었기 때문에 글로벌기업으로 우뚝설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단지 지분 5%를 지닌 전문경영인에 불과했다면 이익이 날지 안 날지 모르고, 불투명한 미래와 마주해야 하고, 이익이 나도 10~15년 후에나 발생하는 대규모 투자는 애초부터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장 교수가 바라보는 가족기업이나 순환출자에 대한 시각도 독특하다.

장 교수는“우리가 미국과 미국의 기업제도만 정답으로 여기기 때문에 순환출자 등을 반칙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유럽 선진국이나 아시아 부국의 경우 가족기업이 장기 대규모 투자를 훨씬 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순환출자를 비판하는 논리를 지적한다.

삼성그룹의 오래된 지적사항인 금산분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삼성그룹은 이른바 고객 돈이 모인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지배구조를 확립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하지만 장 교수는 “금산분리 역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절대적으로 옳은 원칙일 수는 없다”며 “독일·일본 같은 나라들은 오히려 금산분리가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는 주장도 많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성장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진 빚, 한국경제의 미래에서 삼성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만약 삼성이 앞으로도 대규모 장기투자를 계속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필요하다면 그 구조를 보장해주는 것이 더 민주적일 수 있다”고 바라본다.

필요하다면 삼성법을 만들어서라도 삼성이 존속하고 장기적 투자로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법률적 틀을 만들어야 줘야 한다고 본다.

◆ 발렌베리그룹 성장에는 ‘오너의 권리 보호’해주는 사회적 대타협 있었다

발렌베리그룹의 소유와 지배구조는 발렌베리가문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스웨덴 정부와 발렌베리가문, 그리도 노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고 토론해 만들어낸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다.

스웨덴은 1930년대 대공황의 영향으로 강력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마주했다. 당시 집권당이던 사회민주당을 비롯해 발렌베리가문을 비롯한 경영자 집단, 그리고 노동계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

이들은 1936년부터 2년 동안 협상한 끝에 세계사에서 노사정 대타협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살트쉐바덴 협약’을 체결했다.

자본가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사용자들이 이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기업 이익금의 85%를 사회보장 재원으로 내놓기로 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실제 합의문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노동계가 ‘자본가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경영자들은 ‘노조의 단결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이 협약의 핵심이다. 

이 정신들을 발전하고 계승한 것이 바로 현재까지 내려오면서 발렌베리가문의 지배구조가 확립됐다. 이 과정에서 차등의결권과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실제로 현재 발렌베리그룹의 중간지주사인 인베스터에 발렌베리재단의 지분율은 23.3%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의결권은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50%를 부여받고 있다.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 있는 만큼 발렌베리가문은 사회환원을 통해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원칙을 대대로 지켜오고 있다.

발렌베리가문은 세대를 거치면서도 수익의 8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장기적으로는 산하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렌베리가문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논의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를 노사정 대타협으로 해결해 한국사회에 가장 알맞는 구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 삼성 지배구조 문제의 뿌리는 어디인가, 경제성장기의 ‘순환출자’와 ‘상호출자’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의 역사적 뿌리는 어디서부터였을까?

삼성그룹의 모태는 삼성물산이다. 1938년 이병철 창업주가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회사인데 당시만 해도 농산물과 국수 판매를 주력으로 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1950년대에 지금까지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등을 세웠고 삼성화재의 모태인 안국화재도 인수했다.

1960년대에는 신세계그룹의 모태가 되는 신세계백화점으로도 사업을 뻗었고 중앙일보도 이 시절에 만들었다. 1969년에는 삼성전자의 역사도 시작된다.

이러한 국내 재벌기업의 사업 확장을 통상적으로 ‘선단경영’이라고 표현한다. 배의 무리를 이끈다는 뜻인데 단어 그대로 그룹에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경영방식을 말한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한국경제의 고성장기였다. 당시 정부는 재벌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는데 여러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독려하는데는 대기업들의 자본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재벌들도 이렇게 문어발식 확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은 없었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묘안으로 나왔던 것이 바로 ‘순환출자’와 ‘상호출자’였다.

순환출자는 A기업에서 번 돈을 B기업에 집어넣고, B기업에서 번 돈으로 C기업을 차리고, C기업으로 다시 A그룹에 돈을 집어넣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적은 자본으로도 계열사를 계속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라면 처음 자본을 출자하는 자본이 여러 기업을 출자하여 돌고 돌아 원래 처음 출자했던 기업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무한 확장도 가능하다.

상호출자 역시 문어발식 확장에 아주 중요한 무기였다. A기업에서 투자받은 B기업이 이 돈을 다시 A기업에 투자하다 보니 각 기업의 자본조달이 아주 쉽게 이뤄졌다.

삼성그룹도 이러한 방법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정부에서도 이를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를 눈부신 속도로 발전시키고 이끌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대기업 위주의 경제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딱히 이런 방식에 제동을 걸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지배구조의 취약점이 뜻하지 않은 시기에 대거 드러난다. 바로 IMF금융위기다.

순환출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기업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다른 기업으로 전이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회사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회사까지 연쇄적으로 부도가 나서 거대한 그룹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어발식 확장의 대명사였던 대우그룹이다. 대우그룹 역시 태생적으로 많은 순환출자 구조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는데 무리하게 사업을 넓히는 과정에서 과도한 차입금을 일으켰던 것이 나중에 문제되면서 결국 그룹이 해체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순환출자의 문제가 또 나타난 사례는 바로 기업 투기자본으로 알려진 소버린의 SK그룹의 경영권 장악 시도다.

소버린은 2003년 SK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등장했다.

당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검찰 소환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소버린은 당시 저평가됐던 SK 주식을 단돈 1800억 원을 투입해 단숨에 지분 14.99%을 확보하고 2대주주에 올라섰다. 소버린은 이렇게 지분을 확보한 뒤부터 SK그룹을 향한 총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SK의 지분을 1%도 채 가지지 않았는데 순환출자 등으로 SK텔레콤 등 계열사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최 회장은 SK 지분을 사는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영권을 지켜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순환출자가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점을 깨달은 정부는 한국의 여러 재벌기업들을 더욱 안정적 지배구조로 만들기 위해 정책적으로 유도하기 시작한다.

과거에 문제삼지 않았던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재벌기업들을 유도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시기를 겪고 난 이후다.

재벌 스스로도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 추진하면서 이 시기에 SK와 LG를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완전히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역시 순환출자와 상호출자 등을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2018년 순환출자고리를 완전히 해소했지만 아직 지주회사 전환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채널Who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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