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에서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들이 연임할 것으로 보인다.

권력집중 등 부정적 효과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만큼 관치와 낙하산 관행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금융권 'CEO 연임은 기본'으로 안착, 실적으로 관치와 낙하산 물리쳐

▲ (왼쪽부터)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10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연임이 결정된 데 이어 16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재연임도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올해부터 내년 3월까지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권 수장들이 대부분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허인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권광석 우리은행장 등 시중은행의 수장들 대부분이 무난히 연임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앞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올해 초 연임에 성공했고 김정태 회장도 두 차례 연임해 9년째 하나금융지주를 이끌고 있다.

금융권 수장의 연임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수시로 CEO가 교체됐던 이전과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치와 외풍 속에 낙하산을 타고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자리에 앉으려는 수요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연임은커녕 원래 임기도 못 채우고 물러나는 인물들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KB금융지주다. 초대 회장인 황영기 회장부터 어윤대 회장, 임영록 회장까지 외부에서 이른바 낙하산인사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내야 했다.

이들은 임기 내내 금융당국, 사외이사 등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 그러는 사이에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도 경쟁에서 뒤쳐졌다. 잦은 수장 교체에 따른 지배구조 불안정과 이에 따른 단기 성과주의가 KB금융의 성장을 가로막은 셈이다.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1954년 설립돼 70년에 가까운 역사에서 연임에 성공한 수장은 이동걸 회장을 포함해 단 4명에 그친다. 그것도 마지막이 무려 1994년으로 26년 전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연임은커녕 임기 3년을 다 채운 수장조차 없다.

금융권 수장들의 연임에는 무엇보다 성과가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 6년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KB금융지주 순이익이 꾸준히 늘어나 신한금융지주와 1위를 다투는 수준까지 올라왔고 LIG손해보험(KB손해보험), 현대증권(KB증권),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성공하면서 비은행부문도 강화했다. 해외사업 확대를 통해 ‘안방 호랑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낸 점 역시 윤 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이동걸 회장 역시 2017년 취임한 뒤 산업은행의 오랜 과제인 금호타이어, 성동조선해양, 한국GM, STX조선해양, 동부제철 등의 구조조정 문제를 하나둘씩 해결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직 마무리짓지는 못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을 20년 만에 매각한 점도 이 회장의 대표적 성과 가운데 하나다.

이 밖에 연임이 유력한 허인 행장, 진옥동 행장 역시 각 은행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신한은행을 제치고 순이익 1위를 차지했다. 신한은행도 진 행장 취임 첫 해인 2019년 비이자이익이 2018년보다 늘었다. 허 행장과 진 행장 모두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사태에도 실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금융지주를 비롯해 각 금융지주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지배구조를 꾸준히 다듬은 결과 그동안 회장 선임 과정에서 매번 불거졌던 ‘셀프연임’ 등 투명성 논란에서도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다. 과거 ‘거수기’로 불리던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지배구조가 개선되면서 안팎 모두에서 정당성을 입증받은 장수 CEO의 탄생이 한결 수월해진 셈이다.

KB금융지주는 2018년 2월 금융지주 회장이 회장후보 추천위원회는 물론 사외이사를 정하는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재 추천위원인 사외이사 7명 전원 가운데 스튜어트 솔로몬 사외이사만 제외하면 모두 윤 회장이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제외된 뒤 선임된 인물이다.

장기 집권에서 오는 부작용은 물론 경계해야 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친 연임조차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금융지주가 관치와 낙하산 등 외풍에 취약할수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지주에게 해외진출과 인수합병이 필수로 떠오른 지금 꾸준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장수 CEO가 많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JP모건을 이끌고 있다. 그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CEO도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