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유산을 모두 롯데그룹 사회재단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나온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방법인 것과 동시에 유산이 현재 신 회장 중심의 롯데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신동빈, 신격호 유산을 롯데 사회재단에 넘겨 분쟁 불씨 원천차단하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1일 재계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이 남긴 유언장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유산을 사회에 환원할 가능성이 있다.

신 명예회장이 남긴 재산은 약 1조 원가량으로 절반 정도는 부동산이고 나머지는 롯데지주와 일본 롯데홀딩스 등 주식이다.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은 20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생전에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것을 가족들이 잘 알고 있다”며 “재산 상속문제는 상속을 받으시는 분들끼리 의논할 것이며 사회환원 여부도 가족끼리 의논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산 환원은 평소 신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기업보국’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업보국’은 기업의 존재이유를 생산활동을 통해 인간 행복에 기여하고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에서 찾는 정신을 뜻한다.

신 명예회장이 생전에 사재를 출연해 1983년 롯데장학재단과 1994년에 롯데복지재단을 각각 만들어 장학사업과 교육 ,학술, 복지, 나눔사업 등을 해왔던 만큼 유산을 이들 재단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

공익재단에 유산을 넘기면 따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이미 끝나 신 명예회장이 들고 있던 주식을 물려받아야할 필요성이 낮은 데다 롯데그룹 사회재단을 세워 이 주식을 보유하면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신 회장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품에 아버지의 유산을 온전히 남겨놓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신 명예회장이 창업주 1세대 가운데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만큼 ‘신격호’라는 이름이나 신 명예회장의 호인 ‘상전(象殿)’을 딴 새 사회재단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10대 재벌 창업주들의 이름은 각종 장학사업 및 복지사업에 남아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호를 딴 호암재단을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산사회복지재단과 범현대그룹 총수일가가 재산을 기부해 만든 아산나눔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선경최종건장학재단과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남촌재단, 정석재단, 두산연강재단 등도 각각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허준구 GS그룹 창업주,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호에서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곳들이다.

모두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창업주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들로 기업의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통로이자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를 원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산 상속방식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신 명예회장의 유산 사회환원 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린 목적이 신 명예회장의 유산 분배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다툼이나 경영권 분쟁 불씨 등을 차단하려는데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황 부회장이 유족이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신 명예회장의 의지를 알려 사실상 신동빈 회장이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에게 다같이 상속을 받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신 명예회장의 의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혹시라도 지배구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열쇠는 유족의 동의다.

법적 상속인은 장녀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딸 신유미씨 등이다.

이들은 사업 확장 및 앞으로 경영행보를 위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신 명예회장의 의지였던 만큼 공개적으로 반대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산을 처리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맞대게 되는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두 사람은 ‘형제의 난’ 이후 사이가 멀어질 대로 멀어졌는데 2018년 신동빈 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2심 선고 이후 1년3개월 만에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일반적으로 장례기간에는 유산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 만큼 장례절차가 마무리 된 뒤에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