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규연 기자
2019-06-18 10:30:00
1
  • 전체
  • 활동
  • 비전
  • 사건
  • 기타
  • 어록
  •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 생애

    이인영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다.

    민주화운동가 출신의 3선 의원으로 국회를 완전히 정상화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민생경제 법안의 빠른 의결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964년 6월28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서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학생운동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초대 의장을 역임하면서 민주화 항쟁 전면에 나섰다. 

    새천년민주당 창립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계파로 분류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동과 통일에 관련된 정책 행보가 특히 부각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재야의 원칙주의자 인사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민주당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이전보다 유연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힘쓰고 있다.

    ◆ 활동의 공과

    △민주당 4기 원내대표, 국회 정상화 과제
    2019년 5월8일 시행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결선투표에서 76표를 얻으면서 과반을 넘어서 제4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이인영은 당선 소감에서 “내 신념과 가치보다 우리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실용과 중도를 저들에게 내주지 않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 보이겠다”며 “자유한국당이 극우로 갈 때 신속하게 중원을 장악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선되자마자 국회가 공전 중인 점을 고려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직접 연락한 뒤 찾아가겠다고 했다. 2019년 5월9일 상견례에서 나 원내대표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고 하자 이인영이 “밥을 잘 사주겠다고 하니 나는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듣겠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인영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원내대표들과 수시로 만나면서 국회 정상화에 힘썼다. 2019년 5월20일에는 국회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나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국회 정상화의 해법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개편안의 철회와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하는 점을 놓고 협상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 특히 2019년 4월25일 국회에 제출된 6조7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되지 않고 있는 점이 이인영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이인영은 한국당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한국당에서 제안한 '선 경제청문회 후 추경안 심사'도 반대하면서 국회를 민주당 단독으로 소집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6월17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국회 소집에 동의하면서 6월 임시국회가 6월20일에 열리게 됐다. 다만 이인영은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하는 대신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주도한 요구서 제출에 민주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국당의 국회 복귀 협상을 지속하기 위한 안배로 풀이된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2019년 6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개헌 논의 이끌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남한과 북한이 평화 구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2017년 12월 남북 주민의 연락을 활성화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특사 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구체적 방법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2017년 1월 개헌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문을 열자 민주당 간사를 맡았다. 그 뒤 정부형태를 논의하는 개헌특위 2소위의 위원장에 올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시행하자는 주장을 밀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쳤다.

    2018년 1월에 신설된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민주당 간사를 맡았다. 이인영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공개한 정부 개헌안을 민주당의 개헌안으로 확정한 뒤 야당 정치개혁특별위 의원들과 개헌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정치개혁특별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시행에 필요한 국민투표법 처리기한으로 제시한 2018년 4월23일까지 개헌 합의를 이끌지 못했다. 이인영은 정치개혁특별위 간사에서 사임하면서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았던 정부의 개헌안도 2018년 5월24일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개헌 논의도 가라앉았다.

    2018년 8월에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당대표에 다시 도전했지만 이해찬·송영길·김진표 의원에 밀려 예비경선(컷오프)를 넘지 못했다. 

    2018년 10월 신설된 국회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오르게 됐다. 10월30일 첫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가장 높아지고 있는 만큼 여야가 지혜를 초당적으로 모아 실질적 해법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에서 대선까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와 득표율 52.02%를 얻으면서 김승제 새누리당 후보(33.93%)를 제치고 3선 의원에 올랐다. 

    20대 국회에서도 노동정책 마련에 힘써 ‘직장 내 왕따’를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서비스업 종사자도 작업중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했던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과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의 50% 이상으로 결정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다시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있던 2016년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시행하자 “정부가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정책에 안주해 관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적대적 공존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2016년 하반기에 들어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했다.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이 의결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뒤에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미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국가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2019년 6월10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8대 대선과 19대 국회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이범래 새누리당 후보(45.44%)와 경쟁한 끝에 득표율 52.22%로 당선되면서 재선 의원이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경선 과정에서 이인영을 비롯한 민주평화국민연대 인사들은 공식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연대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사로도 꼽혔다. 

    다만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문재인 후보로 확정되자 이인영은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왔다. 2012년 10월 선거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 후보 측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18대 대선의 패배 이후 김한길 민주통합당 대표가 추진한 중도화 노선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4년 3월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게 됐을 때 6.15선언과 10.4선언을 정강에서 빼자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공공기관 개편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 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5년 2월에 진행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도전해 본선에 올랐지만 당선자인 문재인 의원과 2위 박지원 의원에게 밀려 득표율 3위로 낙선했다.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의 노동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데 한국노총이 반발하면서 2015년 9월15일 체결한 노사정합의를 파기했다. 이인영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와 새누리당의 ‘노동개악’ 처리 과욕이 예상했던 파국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그 뒤에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이인영은 19대 국회 회기 안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과 의견이 엇갈리면서 결국 무산됐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9년 6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여야3당 원내대표의 회동이 결렬된 뒤 방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18대 총선에서 낙선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파란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와 이범래 한나라당 후보와 다시 맞붙었다. 이때는 득표율 45.4%로 이범래 후보(46.48%)에게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서 쓴잔을 마신 뒤 정치 지망생들이 참여하는 ‘정치아카데미’를 열어 보수주의와 공화주의 등을 놓고 전문가들과 토론했다. 스페인으로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2011년 ‘산티아고 일기-사람의 길’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인영은 2010년 7월28일 재보궐선거 당시 고향인 충청북도 충주에 출마해 달라는 민주당 지도부의 요청을 두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2010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현직 의원이 아니고 조직력도 비교적 부족하다고 평가됐다. 같은 ‘86 세대’인 백원우·최재성 후보와 단일화를 약속했지만 백원우 후보의 중도사퇴에도 불구하고 단일화에 실패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인영은 단일화 실패를 딛고 경선에서 득표율 11.59%로 최종 4위를 차지해 민주당 최고위원에 오르면서 이변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10월 민주당에서 결성된 4대강대운하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비정규직특별위원장도 지냈다. 2011년 7월에 출범한 야권통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최종적으로 민주통합당 출범에 기여했다.

    2011년 4월27일 재보궐선거 당시 야권연대를 주도해 민주당의 경기도 분당을 승리 등을 뒷받침했다. 당시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설전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2011년 10월26일 시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처음에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무소속인 박원순 후보로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자 이인영은 박원순 후보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했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해 ‘젊은 대표’ 이미지를 앞세워 세대교체론과 탈계파론을 주장했다. 최종 결과 5위로 한명숙 대표에게 밀렸지만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회 첫 입성, 진보 성향 초선 의원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득표율 44.72%로 이범래 한나라당 후보(32.69%)를 제치고 당선했다. 

    의원이 된 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적극 주장했다. 2004년 당시 이라크에 파병한 자이툰부대의 주둔 연장에 반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하는 ‘개혁 연정’을 주장하면서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재야파’ 또는 ‘김근태계’로 평가됐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6년 1월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이인영이 핵심참모로 꼽히기도 했다. 

    2006년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을 때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했던 여야 의원 2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열린우리당의 내부 갈등이 커질 때 김근태 의원과 천정배 의원이 진보 성향의 신당 창당을 추진할 때 이인영도 적극 참여했다. 이에 따라 2007년 6월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19년 5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계 입문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창립에 참여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권에 수혈한 ‘젊은 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갑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당시 김기배 한나라당 후보과 치열한 득표경쟁 끝에 1804표 차이로 석패했다. 

    당시 득표율을 살펴보면 김기배 후보 49.07%, 이인영은 47.02%다. 정계에 갓 들어온 정치신인이 3선 의원 출신인 김기배 후보와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새천년민주당의 원외 지역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민주당 원내외위원장들과 함께 ‘남북경협 지속발전을 위한 범국민 운동’을 제안하는 등 통일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 민주화운동가
    1984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비공개 모임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7년 3월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돼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에서 ‘혈서 유세’를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합법·대중적으로 운동을 진행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5월에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를 결성해 의장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7월5일 사망한 뒤 장례식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국 대학생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19일 창립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첫 의장을 맡았다. 그 뒤에는 10여 년 동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의 재야단체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 비전과 과제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9년 5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당선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를 맡아 국회 정상화를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인영이 그동안 원칙주의자이자 강성 이미지로 알려진 만큼 야당과 협상력을 제대로 보여줄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를 놓고 이인영은 “내 안의 낡은 관념과 아집부터 불사르겠다”고 약속했다. 평소에 염색하지 않고 다니던 머리카락도 검게 염색하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뒤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이인영이 강경한 태도로 다시 돌아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손잡고 2019년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인영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장외투쟁을 주도한 점을 겨냥해 국회 안에서 민생경제를 비롯한 정책경쟁을 펼치는 데 집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하락한 상황에서 2020년 제21대 총선에 대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인영이 원내대표에 오른 점도 ‘친문재인’계인 이해찬 대표와 재야출신인 이인영이 균형을 맞춰야 2020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당내 의견에 힘이 실린 결과로 풀이된다. 

    ◆ 평가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4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좌우명처럼 쓰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신영복 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에게 받은 ‘국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습니다’를 좌우명으로 잡았다. 

    어렸을 때는 비교적 내성적이었다고 회상하지만 성남초등학교 시절 어린이회장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독서반에서 활동하면서 삼국지와 초한지 등을 읽었다. 

    학창시절에 청소년적십자(RCY) 모임 활동도 오랫동안 했다. 당시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현재도 계속 알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아버지와 같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거나 교수로 일하는 쪽을 희망했지만 현실에 눈을 뜨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용납되지 않는 문제를 보면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쓰는 성격으로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영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첫 의장을 맡았다. 당시 전대협 부의장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친분이 있다.

    민주당의 ‘586(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을 대표하는 인사로 꼽힌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각별한 사이라 ‘김근태계’로 분류되고 있다. GT의 분신이라는 말도 듣는다.

    1988년 김성환 현 서울 노원구청장이 인재근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김근태 전 의원을 이인영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김 전 의원을 ‘정치적 스승’처럼 모시게 됐다.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에 따라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됐다. 당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송영길·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 참여했다. 

    1999년 월간지 ‘말’의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 리더’에서 우상호 민주당 의원과 이인영의 관계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욱 가깝게 지냈다’로 표현됐다.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가족과 함께 임종을 지켰다. 김 전 의원의 장례식에서 맏상제 역할을 맡았다. 

    김근태계 인사들이 주로 몸담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진보성향 의원들의 정치행동·정치의견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지지도 받고 있다. 

    2011년에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야권연대에 적극 참여하는 과정에서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측근으로 평가된 적도 있다. 

    좋아하는 노래는 ‘그날이 오면’이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도중 밤길을 혼자 걸으면서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친문재인’계로 꼽히진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친문재인계 인사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엘리트 학생운동가 출신으로서 타협보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으로 꼽혔다. ‘강성 원리주의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다만 민주당 안에서는 비교적 중립적 행보를 보여 다른 계파로부터 거부를 덜 받는 인사로도 꼽히고 있다. 

    2015년 1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인영을 도전정신과 역동성을 갖춘 인사로 꼽았다.

    취미는 등산이다. 20대 국회의원들의 바둑 동호회인 ‘국회기우회’ 회원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꾼 태몽은 목화가 소담하게 피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진다. 

    2019년 5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최운열·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시각을 배우는 등 유연성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당대표 경선에 주로 출마하다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게 된 이유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월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덤에 있어야 할 ‘386세대’의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모욕감을 느꼈다는 점을 들었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스스로를 성찰한 내용을 담아 2011년 ‘산티아고 일기’를 펴냈다.

    2011년 ‘진보 보수 마주보기’에서 김재원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과 함께 여러 사회현안에 관련해 진보와 보수 양쪽의 관점에서 논의를 나눴다.  

    2017년 8월3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8월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도착하는 민통선 횡단을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릴레이로 진행한 경험을 ‘2017년 통일 걷기, 민통선을 걷다’로 펴냈다. 

    종교는 개신교다. 서울 고척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 헌법개정및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앞줄 오른쪽)이 2018년 1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 회의에서 일정 합의를 위해 회의를 잠시 중단한 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왼쪽),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앞줄 가운데)과 함께 자리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현과 '관료 말 안 들어' 논란
    이인영이 2019년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가 시작되기 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했던 이야기가 논란에 올랐다. 당시 두 사람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사담을 나눴다.

    당시 이인영이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 것은 내가 다 해야..."라고 말하자 김수현 실장은 "정부가 (출범)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고 대답하면서 구체적 사례로 버스 파업사태를 들기도 했다. 이때 이인영은 "단적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개월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며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노동조합은 버스 파업사태의 책임이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에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에서도 '레임덕'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며 공세를 펼쳤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인영과 김수현 실장의 대화 내용이 사실에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김현미 장관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당신들을 믿는다"며 국토부를 추슬렀다. 

    △‘586 세대’ 놓고 이동학과 공개 논쟁
    이인영은 ‘586 세대(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이 때문에 2015년 7월15일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586 세대를 비판하는 글인 ‘586 전상서’에서도 이인영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당시 이동학 혁신위원은 586세대가 후배그룹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의제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인영에게 다음 총선에서 약세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인영은 2015년 7월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역구를 바꿔도 혁신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이동학 혁신위원에게 혁신위원회의 방향을 노동문제와 같은 가치 추구로 바꿔야 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고발
    2012년 12월1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선대본부장을 맡은 이인영을 서울 남부지방검찰청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문재인 후보 측이 12월15일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불법 행사용 소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줬다는 혐의를 주장했다.

    △이보은씨 가족 공안기록 조회 논란
    2009년 10월 당시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이 2008년 6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이인영의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인영의 공안기록도 조회했다.

    당시 이인영의 부인 이보은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고시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던 여성 환경단체의 간부로서 검거됐다. 

    경찰은 이보은씨의 신상을 ‘시위사범 전산입력 카드’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이인영과 아버지인 이해학 목사 등의 공안사범 처벌 기록을 함께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최규식 의원은 “헌법이 금지한 ‘연좌제’에 해당되는 위헌이자 반인권적 행태”라며 “경찰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체포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자 2월7일 국민추도대회와 3월3일 평화대행진 등에 적극 참여했다. 그해 5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7년 5월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창립에 참여했다가 그해 6월1일 구속됐다. 민주화 항쟁 시위가 크게 열렸던 그해 6월10일에는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 있었다. 6월17일에 구속이 취소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났다.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뒤에 집회시위법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한 차례 더 구속돼 1988년 6월30일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형을 받았다가 1988년 12월21일 특별사면됐다. 

    ◆ 경력

    ▲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제2소위원장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특위 제2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1987년 제20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그 뒤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1987년 제1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19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간사를 맡았다.

    1993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지냈다.

    1999년 한국청년연합회(KYC) 지도위원을 맡았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한반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제17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2년에 제18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 5월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현재까지 20대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제20대 국회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 학력

    ▲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이 2015년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의 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새민련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북도 충주에서 성남초등학교과 충주중학교를 나왔다.

    1983년 충청북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년 재수해 1984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8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정보통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 ‘희망의 인문학과정’ 1기를 수료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기수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1988년에 별세했다. 2남2녀 가운데 막내다. 

    장인은 경기도 성남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해학 성남주민교회 목사다. 이해학 목사의 어머니인 한맹순 권사도 여러 민주화 집회에 참여했고 ‘맹순할매 억척 기도일기’를 펴냈다. 

    아내 이보은씨와 사이에서 아들 이규찬씨를 뒀다. 이보은씨는 농부들이 직거래로 다품종 소량생산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상훈

    2003년 제1회 박종철인권상을 받았다.

    2007년 제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정기재산변동 신고내역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모친 명의로 모두 9억375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속돼 옥살이를 했다. 이 때문에 수형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나의 꿈 나의 노래’(2007), ‘산티아고 일기-사람의 길’(2011), ‘진보 보수 마주보기-젊은 한국을 위한 뉴코리아 플랜’(2011), ‘2017 통일 걷기, 민통선을 걷다-12박13일의 기록’(2017) 등 저서 4권을 썼다. 

    ◆ 어록

    ▲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2월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경선 후보자로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인 선수에 대한 조명이 한창이다. 그의 패스는 속도와 거리, 타이밍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이 이강인 선수와 같은 모습을 갖춰야 한다. 산불과 지진으로 고단한 재해 주민, 미세먼지 없는 내년 봄을 기다리는 시민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여파로 예고된 수출전선의 먹구름, 경제 침체에 직면한 위기의 자영업, 중소기업, 청년실업 등 어려운 한국경제에 이강인 선수의 자로 잰 듯한 패스처럼, 또 신 내린 퍼팅과 같은 패스처럼 적재적소에 정확한 규모로 타이밍을 맞춰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는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 (2019/06/13,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여당 원내대표로서 야당 원내대표에게 동생 취급을 받으면서도 낮은 자세로 국회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가 진짜 누나를 먼저 두 명이나 낳아줬다. 누나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했다. 그 정도로 정성을 다해 예의를 갖춰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점도 한편에서 알아줬으면 좋겠다.” (2019/06/04,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우선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 내가 고집이 세다는 평가가 많은데 원내대표를 하면서 불식해 나가겠다.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많이 달라졌고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칭찬이었고 기뻤다. 까칠한 이인영이 아닌 선후배의 중간에서 심부름 잘 하는 이인영이 되겠다.” (2019/05/08,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로 당선된 뒤 소감에서)

    “내가 이념적으로는 가장 선명하지만 일을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유연하다. 더불어민주당 안의 주류와 비주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2019/05/01,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미래정당으로 거듭나겠다. 세대혁신을 촉진하겠다. 진보는 꼰대, 보수는 꼴통이라는 낡은 이미지에서 먼저 벗어나겠다. 다양성, 포용성, 역동성에 기반하는 더욱 강력한 여당을 만들겠다. 빼기와 나누기가 아니라 더하기와 곱셈의 용광로 감성을 다시 일깨워 내겠다.” (2019/04/21,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간베스트’ 수준의 잡스런 얘기가 국회 본회의장에 난무할 수 없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2019/03/12,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말한 점을 비판하면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는 가치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1차 진보의 길로 당을 혁신해 집권할 수 있었다. 이제 2차 진보의 길을 열어야 한다.” “2차 진보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살리는 경제진보의 길이다. 재벌중심 이윤독점의 불평등 경제를 중소기업·자영업과 이윤공유의 상생경제로 바꿔내는 게 핵심이다. 2차 진보의 또 다른 축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다. 노동과 복지가 낭비 아닌 포용적 성장의 핵심이라는 인식과 정책의 대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2018/07/21,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페이스북 글에서)

    “(개헌은)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고자 하는 일이다. 일부는 개헌을 통해서 (민주당이) 장기집권하려고 한다는데 그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군사 독재자들이 하는 짓이다.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2018/02/04,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개헌행 열차는 종착역 없이 달리는 설국열차가 아니다.” (2017/12/25,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시행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놓고)

    “북한은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즉각 중단해야 하고 핵으로는 북한의 운명을 지킬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한반도 밖의 미군 전력을 이용해 ‘외과의사 수술식’으로 도려내는 서지컬 스트라이크도 한국민의 의지와 맞지 않는다.” “우리 정부도 당면한 위기를 풀어헤칠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제안했으면 좋겠다. 감 떨어질 때를 기다리지 말고 우수천석(雨垂穿石·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의 심정으로 정상회담 및 특사교환을 실천해야 한다.” (2017/08/15, ‘2017 통일 걷기’ 민통선 횡단을 마친 뒤)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혁명이고 2017년 촛불혁명은 6월 항쟁의 2017년판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 측면에서 본질은 하나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은 더욱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의 결과다. 그에 반해 촛불 혁명은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들이 아주 많이 광장에서 모여 이뤄낸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2017/06/09,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전화 인터뷰에서)

    “우선 왜 이런 불신의 상황이 초래되었는가.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키운 일이다. 우선 (최순실씨로부터) 연설문 자문 정도를 받았다고 했는데 요컨대 부정, 비리, 농단 이런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왔다. 시중에서 양파는 껍질을 벗길수록 작아지기라도 하는데 이건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더 커진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해놓고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이런 불신을 키워온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2016/11/30, YTN 뉴스에 출연해)

    “서울 구로구갑에서 지역구를 옮기라는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의 주장) 이면에 내 지역구가 서울에서 좋은 지역구라는 편견이 있다면 솔직히 불편하다. (구로구갑은)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운동권 시절의 이상이 숨 쉬던 구로라서 찾아갔던 지역구였다. 구로구을에 비해 구로구갑인 내 지역구는 참 많은 지역 편차가 있었고 지지기반도 약했다.” (2015/07/16,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2015년 7월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인영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해야 한다고 요청한 점을 놓고)

    “나는 변화와 혁신이고 문재인 후보는 현실이고 안주다. 이인영은 커다란 가능성이고 문재인은 작은 안락함이다.” (2015/01/13,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서 맞붙게 된 문재인 후보를 평가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창업자인데 그 후예들은 그렇지 못하다. 김 전 대통령은 반독재 민주화의 길을 컴컴한 군부독재 시절에도 내어 정권 교체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장벽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창업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정작 그 후예들은 유산 상속자처럼 패권, 계파, 지역에 안주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2015/01/0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중도화로 보수를 막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문제다. 진보는 삶의 진보, 유연한 진보, 점진적 진보, 생활의 진보로 걸어왔었고 이를 고수했어야 했다.” “중도화 경쟁은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다. 중도화 경향은 우리 스스로의 혼란만 자초한 꼴이다. ‘이 바보야, 문제는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제대로 못해서야’라는 지적을 따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4/02/20, ‘야(野)! 민주당! 민주당의 혁신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야권의 통합은 정방향인데 야권의 분열이나 분립은 그에 반하는 방향이다. 야권의 분열은 어떤 경우에도 피했으면 좋겠다. 특히 정당의 모습으로 나눠져서 나타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3/11/20,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후보 단일화는) 새누리당에게 참 나쁜 선거전략이겠지만 국민에게는 참 좋은 선거전략이다.” (2012/11.02,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대선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는 점을 놓고 새누리당에서 ‘나쁜 선거전략’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과반수로 총선 승리할 수 있었던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놓쳤다. 분하고 또 분하다. 그러나 조속히 당을 수습하고 대선승리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내고야 말겠다.” (2012/04/12, 제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둔 점을 놓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  이인영 민주통합당 공동선대본부장(민주통합당 의원)이 2012년 12월12일 대전 대덕구 중리시장 입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별이 졌다. 김근태의 깃발은 내려졌지만 수천만 수백만 가슴 속에 해방 횃불로 타오른다. 그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의 성장에 새기겠다.” (2011/12/30,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별세하자 애도를 나타내면서)

    “젊은 대표가 출현하면 야당이 바뀌고 그러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20∼40대가 호응하는 젊은 민주당이 되면 50대 이상의 국민까지도 우리를 다시 신뢰할 수 있다.” (2011/12/21, 민주통합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원래 책을 쓰려고 걸었던 길은 아니다. 더군다나 일기 형식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번쯤은 어느 운동권 정치인의 고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보가 트렌드로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시대정신이고, 시대의 선택이다. 진보를 위해 끊임없이 그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신념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2011/11/10,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일기’를 쓴 이유를 질문받자)

    “나는 지금부터 통일의 길을 걷고자 한다.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20년 안에 통일을 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길도 20년쯤이면 도달할 수 있다. 꿈같은 얘기지만 아득한 800km의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니까 끝이 보였듯 나는 반드시 통일과 복지의 종착점에 도달하겠다.” (2011/11, ‘산티아고 일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서울시장이 이번 주민투표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일을 고백했다. 아이들의 먹는 것으로 불장난하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2011/05/17,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할 의사를 밝히자)

    “내 판단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이다. 옳다는 것은 신념이 걸리는 문제다. 대신 한 번 결정하면 바꾸지 않는다.” (2011/05/16,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진보는 시장과 돈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자 범람하는 상품의 논리로부터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일하는 사람들의 보람을 지켜내는 것이다.” (2011/05/13, 한겨레 인터뷰에서)

    “삼국지의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결정한 뒤 (같은 편인) 제갈량을 제거하고자 했다. 우리는 주유의 이런 용렬함을 넘어야 한다. 연대와 연합에서 누가 승자가 되느냐는 작은 문제다.” (2011/04/13,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를 통한 단일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자 지지를 호소하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억지로 딴청을 부린다고 생각한다. 고통 분담은 못할망정 초과이익과 기대 이상의 이익도 최소한 나누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로서 너무 인색한 모습이다. 중소기업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동반성장을 모색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공감한다면 억지로 딴청부릴 일은 아니다.” (2011/03/11,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전날 ‘이익공유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점을 비판하면서)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마 북한의 무력 사용은 준엄하게 규탄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확전에 반대했을 것이다. 평화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무력 사용 중단을 촉구했을 것이다.” (2010/11/24, 북한의 연평도 해안포 사격 사건이 일어나자)

    “민주당은 변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공과를 떠나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당심의 결과다. 민주당이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는 반성이 나온다.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변에 국민 마음과 고단한 서민 삶이 있다. 그 삶을 개선하는 진보와 복지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정치혐오를 하는데 정치는 서민들에게 복이 됐으면 좋겠다. 복의 정치가 복지의 길이다.” (2010/10/04, 민주당 경선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힌 다음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민주당의 현재고 나와 젊은 정치인들은 민주당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질진 몰라도 진보개혁의 일관성과 진보민주 대통합의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신뢰를 놓고 보면 나에게도 상당히 큰 힘이 잠재적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적극 역할을 맡겠다.” (2010/09/15, CBS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민주당 경선에 함께 출마한 손학규·정세균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과 경쟁을 질문받자) 

    ▲ 이인영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2011년 12월29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입원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단지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 당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마음가짐, 소통과 혁신, 그리고 진보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새로운 지도부가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0/09/06, BBS라디오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86 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가 민주당 지도부에 올라야 하는 이유를 질문받자)

    “당시에는 사람들 가슴 속에 사회 정의가 짓밟히고 유린되는 점을 향한 분노,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학살자를 향한 분노가 있었고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정서적·정신적 공유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왜 나가야 하는지 설득하기보다 용기를 내도록 선동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목청이 높아지고 손짓이 강렬해졌다. 내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일과 사람들 가슴속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일치된 과정이었지 사람들에게 없는 분노를 심는 게 아니었다. 의식을 세뇌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용기를 터뜨리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그게 필요했을 뿐이고 나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아니다.” (2007/06/25, 신동아 인터뷰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죽음이다. 보편적 가치가 왜곡될 때 국민의 폭발력이 어떠했는지 경험하지 않았나.” (2007/01/13, 서울신문 기사에서 박종철 열사의 서거 20주기를 하루 앞둔 소감을 질문받자)

    “무조건 모이자는 차원을 넘어 정책과 이념적 정풍운동을 분명히 하면서 통합과 재편의 순서를 밟아야 한다.” “여권은 전략적으로 불분명하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6월 항쟁 당시의 프레임(개념구도)이 ‘반독재 민주대연합’이었는데 지금은 ‘반보수우경화 중도개혁대연합’과 ‘비신자유주의 신중도연합’으로 지향되고 승화돼야 한다.” (2006/12/12, 열린우리당 ‘한국적 제3의길 연구회’에서 개최한 ‘6월 항쟁 20주년 회고와 전망’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통합을 위한 진정성이나 절박성에 공감하지만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진보를 위한 개혁 연정이 더욱 바람직하다. 지역 구도를 넘어 통합하기 위한 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파트너로서 필요하지만 개혁을 위한 연합이나 연정이 필요할 때 (한나라당은) 대단히 미흡할 수 있다.” (2005/07/30,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평생을 법과 상관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여러 사람들이 권하기도 했고 의원 활동은 입법행위를 통해 구체화된다는 걸 알았다. 또 입법이 헌법 정신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강한 만큼 새삼스럽지만 (헌법을) 공부하게 됐다.” (2004/09/20,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최근 헌법학 개론서를 사들여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은 폐지 수순에 가 있다. 반드시 폐지될 것이고 폐지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만 적절한 타이밍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2004/07/09, 내일신문 기사에서)

    “지역주의가 되살아나 선거 의미가 훼손된 일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헌법을 유린한 부패 정치 세력을 심판했다. 국민이 강한 나라, 국민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 (2004/04/15, 제17대 총선에서 당선한 뒤 연합뉴스의 당선자 인터뷰에서)

    “‘386(3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세대 특성상 문제 제기를 하려면 정면으로 하지 왜 음모를 꾸미겠느냐.” (2003/07/28,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당시 불거졌던 ‘386 음모론’을 반박하면서)
  • ◆ 활동의 공과

    △민주당 4기 원내대표, 국회 정상화 과제
    2019년 5월8일 시행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해 결선투표에서 76표를 얻으면서 과반을 넘어서 제4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이인영은 당선 소감에서 “내 신념과 가치보다 우리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실용과 중도를 저들에게 내주지 않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 보이겠다”며 “자유한국당이 극우로 갈 때 신속하게 중원을 장악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선되자마자 국회가 공전 중인 점을 고려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직접 연락한 뒤 찾아가겠다고 했다. 2019년 5월9일 상견례에서 나 원내대표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고 하자 이인영이 “밥을 잘 사주겠다고 하니 나는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듣겠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인영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원내대표들과 수시로 만나면서 국회 정상화에 힘썼다. 2019년 5월20일에는 국회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나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국회 정상화의 해법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개편안의 철회와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하는 점을 놓고 협상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 특히 2019년 4월25일 국회에 제출된 6조7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되지 않고 있는 점이 이인영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이인영은 한국당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한국당에서 제안한 '선 경제청문회 후 추경안 심사'도 반대하면서 국회를 민주당 단독으로 소집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6월17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국회 소집에 동의하면서 6월 임시국회가 6월20일에 열리게 됐다. 다만 이인영은 민주당에서 공식적으로 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하는 대신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주도한 요구서 제출에 민주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국당의 국회 복귀 협상을 지속하기 위한 안배로 풀이된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2019년 6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통장 처우개선 및 책임성 강화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개헌 논의 이끌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남한과 북한이 평화 구도로 들어가야 한다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2017년 12월 남북 주민의 연락을 활성화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고 특사 파견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구체적 방법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2017년 1월 개헌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문을 열자 민주당 간사를 맡았다. 그 뒤 정부형태를 논의하는 개헌특위 2소위의 위원장에 올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시행하자는 주장을 밀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쳤다.

    2018년 1월에 신설된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민주당 간사를 맡았다. 이인영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공개한 정부 개헌안을 민주당의 개헌안으로 확정한 뒤 야당 정치개혁특별위 의원들과 개헌 논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정치개혁특별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시행에 필요한 국민투표법 처리기한으로 제시한 2018년 4월23일까지 개헌 합의를 이끌지 못했다. 이인영은 정치개혁특별위 간사에서 사임하면서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았던 정부의 개헌안도 2018년 5월24일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개헌 논의도 가라앉았다.

    2018년 8월에 열린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당대표에 다시 도전했지만 이해찬·송영길·김진표 의원에 밀려 예비경선(컷오프)를 넘지 못했다. 

    2018년 10월 신설된 국회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오르게 됐다. 10월30일 첫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가장 높아지고 있는 만큼 여야가 지혜를 초당적으로 모아 실질적 해법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총선에서 대선까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와 득표율 52.02%를 얻으면서 김승제 새누리당 후보(33.93%)를 제치고 3선 의원에 올랐다. 

    20대 국회에서도 노동정책 마련에 힘써 ‘직장 내 왕따’를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서비스업 종사자도 작업중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19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했던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과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의 50% 이상으로 결정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다시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있던 2016년 9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시행하자 “정부가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정책에 안주해 관성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적대적 공존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2016년 하반기에 들어 국정농단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했다. 국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이 의결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뒤에는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미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국가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가 2019년 6월10일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8대 대선과 19대 국회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이범래 새누리당 후보(45.44%)와 경쟁한 끝에 득표율 52.22%로 당선되면서 재선 의원이 됐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경선 과정에서 이인영을 비롯한 민주평화국민연대 인사들은 공식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연대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사로도 꼽혔다. 

    다만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문재인 후보로 확정되자 이인영은 대선기획단 기획위원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왔다. 2012년 10월 선거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 후보 측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18대 대선의 패배 이후 김한길 민주통합당 대표가 추진한 중도화 노선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4년 3월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연합이 합당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게 됐을 때 6.15선언과 10.4선언을 정강에서 빼자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공공기관 개편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 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5년 2월에 진행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 도전해 본선에 올랐지만 당선자인 문재인 의원과 2위 박지원 의원에게 밀려 득표율 3위로 낙선했다. 

    2016년 1월 박근혜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의 노동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데 한국노총이 반발하면서 2015년 9월15일 체결한 노사정합의를 파기했다. 이인영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와 새누리당의 ‘노동개악’ 처리 과욕이 예상했던 파국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그 뒤에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이인영은 19대 국회 회기 안에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과 의견이 엇갈리면서 결국 무산됐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9년 6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 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여야3당 원내대표의 회동이 결렬된 뒤 방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제18대 총선에서 낙선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파란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나와 이범래 한나라당 후보와 다시 맞붙었다. 이때는 득표율 45.4%로 이범래 후보(46.48%)에게 밀려 낙선했다. 

    총선에서 쓴잔을 마신 뒤 정치 지망생들이 참여하는 ‘정치아카데미’를 열어 보수주의와 공화주의 등을 놓고 전문가들과 토론했다. 스페인으로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2011년 ‘산티아고 일기-사람의 길’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인영은 2010년 7월28일 재보궐선거 당시 고향인 충청북도 충주에 출마해 달라는 민주당 지도부의 요청을 두 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2010년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현직 의원이 아니고 조직력도 비교적 부족하다고 평가됐다. 같은 ‘86 세대’인 백원우·최재성 후보와 단일화를 약속했지만 백원우 후보의 중도사퇴에도 불구하고 단일화에 실패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인영은 단일화 실패를 딛고 경선에서 득표율 11.59%로 최종 4위를 차지해 민주당 최고위원에 오르면서 이변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10월 민주당에서 결성된 4대강대운하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비정규직특별위원장도 지냈다. 2011년 7월에 출범한 야권통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최종적으로 민주통합당 출범에 기여했다.

    2011년 4월27일 재보궐선거 당시 야권연대를 주도해 민주당의 경기도 분당을 승리 등을 뒷받침했다. 당시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설전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2011년 10월26일 시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처음에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무소속인 박원순 후보로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자 이인영은 박원순 후보의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했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해 ‘젊은 대표’ 이미지를 앞세워 세대교체론과 탈계파론을 주장했다. 최종 결과 5위로 한명숙 대표에게 밀렸지만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국회 첫 입성, 진보 성향 초선 의원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득표율 44.72%로 이범래 한나라당 후보(32.69%)를 제치고 당선했다. 

    의원이 된 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적극 주장했다. 2004년 당시 이라크에 파병한 자이툰부대의 주둔 연장에 반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민주노동당 등이 참여하는 ‘개혁 연정’을 주장하면서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재야파’ 또는 ‘김근태계’로 평가됐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6년 1월 전당대회에 출마했을 때 이인영이 핵심참모로 꼽히기도 했다. 

    2006년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을 때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했던 여야 의원 2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열린우리당의 내부 갈등이 커질 때 김근태 의원과 천정배 의원이 진보 성향의 신당 창당을 추진할 때 이인영도 적극 참여했다. 이에 따라 2007년 6월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19년 5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계 입문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창립에 참여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권에 수혈한 ‘젊은 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갑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당시 김기배 한나라당 후보과 치열한 득표경쟁 끝에 1804표 차이로 석패했다. 

    당시 득표율을 살펴보면 김기배 후보 49.07%, 이인영은 47.02%다. 정계에 갓 들어온 정치신인이 3선 의원 출신인 김기배 후보와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새천년민주당의 원외 지역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민주당 원내외위원장들과 함께 ‘남북경협 지속발전을 위한 범국민 운동’을 제안하는 등 통일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 민주화운동가
    1984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비공개 모임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7년 3월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돼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에서 ‘혈서 유세’를 펼쳐 주목받기도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 합법·대중적으로 운동을 진행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5월에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를 결성해 의장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7월5일 사망한 뒤 장례식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국 대학생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19일 창립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첫 의장을 맡았다. 그 뒤에는 10여 년 동안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의 재야단체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 ◆ 비전과 과제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9년 5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당선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문제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를 맡아 국회 정상화를 추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인영이 그동안 원칙주의자이자 강성 이미지로 알려진 만큼 야당과 협상력을 제대로 보여줄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를 놓고 이인영은 “내 안의 낡은 관념과 아집부터 불사르겠다”고 약속했다. 평소에 염색하지 않고 다니던 머리카락도 검게 염색하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뒤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이인영이 강경한 태도로 다시 돌아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 손잡고 2019년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인영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장외투쟁을 주도한 점을 겨냥해 국회 안에서 민생경제를 비롯한 정책경쟁을 펼치는 데 집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하락한 상황에서 2020년 제21대 총선에 대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인영이 원내대표에 오른 점도 ‘친문재인’계인 이해찬 대표와 재야출신인 이인영이 균형을 맞춰야 2020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당내 의견에 힘이 실린 결과로 풀이된다. 

  • ◆ 평가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4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좌우명처럼 쓰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신영복 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에게 받은 ‘국민이 가라는 길을 가겠습니다’를 좌우명으로 잡았다. 

    어렸을 때는 비교적 내성적이었다고 회상하지만 성남초등학교 시절 어린이회장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독서반에서 활동하면서 삼국지와 초한지 등을 읽었다. 

    학창시절에 청소년적십자(RCY) 모임 활동도 오랫동안 했다. 당시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현재도 계속 알고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아버지와 같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거나 교수로 일하는 쪽을 희망했지만 현실에 눈을 뜨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용납되지 않는 문제를 보면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쓰는 성격으로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영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첫 의장을 맡았다. 당시 전대협 부의장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친분이 있다.

    민주당의 ‘586(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을 대표하는 인사로 꼽힌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각별한 사이라 ‘김근태계’로 분류되고 있다. GT의 분신이라는 말도 듣는다.

    1988년 김성환 현 서울 노원구청장이 인재근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김근태 전 의원을 이인영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김 전 의원을 ‘정치적 스승’처럼 모시게 됐다.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에 따라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됐다. 당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송영길·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 참여했다. 

    1999년 월간지 ‘말’의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 리더’에서 우상호 민주당 의원과 이인영의 관계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욱 가깝게 지냈다’로 표현됐다.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가족과 함께 임종을 지켰다. 김 전 의원의 장례식에서 맏상제 역할을 맡았다. 

    김근태계 인사들이 주로 몸담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를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진보성향 의원들의 정치행동·정치의견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지지도 받고 있다. 

    2011년에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야권연대에 적극 참여하는 과정에서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측근으로 평가된 적도 있다. 

    좋아하는 노래는 ‘그날이 오면’이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도중 밤길을 혼자 걸으면서 ‘그날이 오면’을 불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친문재인’계로 꼽히진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친문재인계 인사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엘리트 학생운동가 출신으로서 타협보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으로 꼽혔다. ‘강성 원리주의자’라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다만 민주당 안에서는 비교적 중립적 행보를 보여 다른 계파로부터 거부를 덜 받는 인사로도 꼽히고 있다. 

    2015년 1월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인영을 도전정신과 역동성을 갖춘 인사로 꼽았다.

    취미는 등산이다. 20대 국회의원들의 바둑 동호회인 ‘국회기우회’ 회원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꾼 태몽은 목화가 소담하게 피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진다. 

    2019년 5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최운열·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시각을 배우는 등 유연성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당대표 경선에 주로 출마하다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게 된 이유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1월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덤에 있어야 할 ‘386세대’의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모욕감을 느꼈다는 점을 들었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스스로를 성찰한 내용을 담아 2011년 ‘산티아고 일기’를 펴냈다.

    2011년 ‘진보 보수 마주보기’에서 김재원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과 함께 여러 사회현안에 관련해 진보와 보수 양쪽의 관점에서 논의를 나눴다.  

    2017년 8월3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출발해 8월1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도착하는 민통선 횡단을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릴레이로 진행한 경험을 ‘2017년 통일 걷기, 민통선을 걷다’로 펴냈다. 

    종교는 개신교다. 서울 고척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 헌법개정및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앞줄 오른쪽)이 2018년 1월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 회의에서 일정 합의를 위해 회의를 잠시 중단한 뒤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왼쪽),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앞줄 가운데)과 함께 자리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현과 '관료 말 안 들어' 논란
    이인영이 2019년 5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가 시작되기 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했던 이야기가 논란에 올랐다. 당시 두 사람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사담을 나눴다.

    당시 이인영이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 것은 내가 다 해야..."라고 말하자 김수현 실장은 "정부가 (출범)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다"고 대답하면서 구체적 사례로 버스 파업사태를 들기도 했다. 이때 이인영은 "단적으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개월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많이 했다"며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노동조합은 버스 파업사태의 책임이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에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에서도 '레임덕'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며 공세를 펼쳤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인영과 김수현 실장의 대화 내용이 사실에 맞지 않다고 본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김현미 장관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당신들을 믿는다"며 국토부를 추슬렀다. 

    △‘586 세대’ 놓고 이동학과 공개 논쟁
    이인영은 ‘586 세대(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이 때문에 2015년 7월15일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586 세대를 비판하는 글인 ‘586 전상서’에서도 이인영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당시 이동학 혁신위원은 586세대가 후배그룹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의제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인영에게 다음 총선에서 약세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인영은 2015년 7월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역구를 바꿔도 혁신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이동학 혁신위원에게 혁신위원회의 방향을 노동문제와 같은 가치 추구로 바꿔야 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고발
    2012년 12월1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선대본부장을 맡은 이인영을 서울 남부지방검찰청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문재인 후보 측이 12월15일 서울 광화문 유세에서 불법 행사용 소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줬다는 혐의를 주장했다.

    △이보은씨 가족 공안기록 조회 논란
    2009년 10월 당시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이 2008년 6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이인영의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인영의 공안기록도 조회했다.

    당시 이인영의 부인 이보은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고시 철회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던 여성 환경단체의 간부로서 검거됐다. 

    경찰은 이보은씨의 신상을 ‘시위사범 전산입력 카드’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이인영과 아버지인 이해학 목사 등의 공안사범 처벌 기록을 함께 조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최규식 의원은 “헌법이 금지한 ‘연좌제’에 해당되는 위헌이자 반인권적 행태”라며 “경찰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체포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자 2월7일 국민추도대회와 3월3일 평화대행진 등에 적극 참여했다. 그해 5월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서대협)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7년 5월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창립에 참여했다가 그해 6월1일 구속됐다. 민주화 항쟁 시위가 크게 열렸던 그해 6월10일에는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 있었다. 6월17일에 구속이 취소되면서 감옥에서 풀려났다.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뒤에 집회시위법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한 차례 더 구속돼 1988년 6월30일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형을 받았다가 1988년 12월21일 특별사면됐다. 

  • ◆ 경력

    ▲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제2소위원장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헌법개정특위 제2소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1987년 제20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그 뒤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1987년 제1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1988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간사를 맡았다.

    1993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지냈다.

    1999년 한국청년연합회(KYC) 지도위원을 맡았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한반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했다.

    2004년 5월 제17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12년 5월 제19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2년에 제18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2016년 5월 제20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구갑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현재까지 20대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제20대 국회 남북경제협력 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9년 5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 학력

    ▲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이 2015년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의 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새민련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북도 충주에서 성남초등학교과 충주중학교를 나왔다.

    1983년 충청북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년 재수해 1984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8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정보통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학교 ‘희망의 인문학과정’ 1기를 수료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기수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1988년에 별세했다. 2남2녀 가운데 막내다. 

    장인은 경기도 성남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해학 성남주민교회 목사다. 이해학 목사의 어머니인 한맹순 권사도 여러 민주화 집회에 참여했고 ‘맹순할매 억척 기도일기’를 펴냈다. 

    아내 이보은씨와 사이에서 아들 이규찬씨를 뒀다. 이보은씨는 농부들이 직거래로 다품종 소량생산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시장 '마르쉐'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상훈

    2003년 제1회 박종철인권상을 받았다.

    2007년 제9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 기타

    2019년 3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정기재산변동 신고내역에 따르면 본인과 배우자, 모친 명의로 모두 9억375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속돼 옥살이를 했다. 이 때문에 수형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나의 꿈 나의 노래’(2007), ‘산티아고 일기-사람의 길’(2011), ‘진보 보수 마주보기-젊은 한국을 위한 뉴코리아 플랜’(2011), ‘2017 통일 걷기, 민통선을 걷다-12박13일의 기록’(2017) 등 저서 4권을 썼다. 

  • ◆ 어록

    ▲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5년 2월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경선 후보자로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인 선수에 대한 조명이 한창이다. 그의 패스는 속도와 거리, 타이밍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이 이강인 선수와 같은 모습을 갖춰야 한다. 산불과 지진으로 고단한 재해 주민, 미세먼지 없는 내년 봄을 기다리는 시민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 여파로 예고된 수출전선의 먹구름, 경제 침체에 직면한 위기의 자영업, 중소기업, 청년실업 등 어려운 한국경제에 이강인 선수의 자로 잰 듯한 패스처럼, 또 신 내린 퍼팅과 같은 패스처럼 적재적소에 정확한 규모로 타이밍을 맞춰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하는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 (2019/06/13,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여당 원내대표로서 야당 원내대표에게 동생 취급을 받으면서도 낮은 자세로 국회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가 진짜 누나를 먼저 두 명이나 낳아줬다. 누나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노력했다. 그 정도로 정성을 다해 예의를 갖춰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점도 한편에서 알아줬으면 좋겠다.” (2019/06/04,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우선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 내가 고집이 세다는 평가가 많은데 원내대표를 하면서 불식해 나가겠다.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많이 달라졌고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 인생 최고의 칭찬이었고 기뻤다. 까칠한 이인영이 아닌 선후배의 중간에서 심부름 잘 하는 이인영이 되겠다.” (2019/05/08,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로 당선된 뒤 소감에서)

    “내가 이념적으로는 가장 선명하지만 일을 풀어가는 방법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유연하다. 더불어민주당 안의 주류와 비주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2019/05/01,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미래정당으로 거듭나겠다. 세대혁신을 촉진하겠다. 진보는 꼰대, 보수는 꼴통이라는 낡은 이미지에서 먼저 벗어나겠다. 다양성, 포용성, 역동성에 기반하는 더욱 강력한 여당을 만들겠다. 빼기와 나누기가 아니라 더하기와 곱셈의 용광로 감성을 다시 일깨워 내겠다.” (2019/04/21,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간베스트’ 수준의 잡스런 얘기가 국회 본회의장에 난무할 수 없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2019/03/12,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말한 점을 비판하면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는 가치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1차 진보의 길로 당을 혁신해 집권할 수 있었다. 이제 2차 진보의 길을 열어야 한다.” “2차 진보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살리는 경제진보의 길이다. 재벌중심 이윤독점의 불평등 경제를 중소기업·자영업과 이윤공유의 상생경제로 바꿔내는 게 핵심이다. 2차 진보의 또 다른 축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다. 노동과 복지가 낭비 아닌 포용적 성장의 핵심이라는 인식과 정책의 대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2018/07/21,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페이스북 글에서)

    “(개헌은)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고자 하는 일이다. 일부는 개헌을 통해서 (민주당이) 장기집권하려고 한다는데 그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군사 독재자들이 하는 짓이다. 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2018/02/04,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개헌행 열차는 종착역 없이 달리는 설국열차가 아니다.” (2017/12/25,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시행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놓고)

    “북한은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즉각 중단해야 하고 핵으로는 북한의 운명을 지킬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한반도 밖의 미군 전력을 이용해 ‘외과의사 수술식’으로 도려내는 서지컬 스트라이크도 한국민의 의지와 맞지 않는다.” “우리 정부도 당면한 위기를 풀어헤칠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제안했으면 좋겠다. 감 떨어질 때를 기다리지 말고 우수천석(雨垂穿石·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의 심정으로 정상회담 및 특사교환을 실천해야 한다.” (2017/08/15, ‘2017 통일 걷기’ 민통선 횡단을 마친 뒤)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혁명이고 2017년 촛불혁명은 6월 항쟁의 2017년판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 측면에서 본질은 하나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은 더욱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의 결과다. 그에 반해 촛불 혁명은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들이 아주 많이 광장에서 모여 이뤄낸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2017/06/09,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전화 인터뷰에서)

    “우선 왜 이런 불신의 상황이 초래되었는가.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키운 일이다. 우선 (최순실씨로부터) 연설문 자문 정도를 받았다고 했는데 요컨대 부정, 비리, 농단 이런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나왔다. 시중에서 양파는 껍질을 벗길수록 작아지기라도 하는데 이건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더 커진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해놓고 결과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이런 불신을 키워온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2016/11/30, YTN 뉴스에 출연해)

    “서울 구로구갑에서 지역구를 옮기라는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의 주장) 이면에 내 지역구가 서울에서 좋은 지역구라는 편견이 있다면 솔직히 불편하다. (구로구갑은)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운동권 시절의 이상이 숨 쉬던 구로라서 찾아갔던 지역구였다. 구로구을에 비해 구로구갑인 내 지역구는 참 많은 지역 편차가 있었고 지지기반도 약했다.” (2015/07/16, 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2015년 7월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인영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해야 한다고 요청한 점을 놓고)

    “나는 변화와 혁신이고 문재인 후보는 현실이고 안주다. 이인영은 커다란 가능성이고 문재인은 작은 안락함이다.” (2015/01/13,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에서 맞붙게 된 문재인 후보를 평가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은 창업자인데 그 후예들은 그렇지 못하다. 김 전 대통령은 반독재 민주화의 길을 컴컴한 군부독재 시절에도 내어 정권 교체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장벽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창업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정작 그 후예들은 유산 상속자처럼 패권, 계파, 지역에 안주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2015/01/0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중도화로 보수를 막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문제다. 진보는 삶의 진보, 유연한 진보, 점진적 진보, 생활의 진보로 걸어왔었고 이를 고수했어야 했다.” “중도화 경쟁은 우리에게 불리할 수 있다. 중도화 경향은 우리 스스로의 혼란만 자초한 꼴이다. ‘이 바보야, 문제는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제대로 못해서야’라는 지적을 따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4/02/20, ‘야(野)! 민주당! 민주당의 혁신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야권의 통합은 정방향인데 야권의 분열이나 분립은 그에 반하는 방향이다. 야권의 분열은 어떤 경우에도 피했으면 좋겠다. 특히 정당의 모습으로 나눠져서 나타나는 일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3/11/20,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후보 단일화는) 새누리당에게 참 나쁜 선거전략이겠지만 국민에게는 참 좋은 선거전략이다.” (2012/11.02,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대선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는 점을 놓고 새누리당에서 ‘나쁜 선거전략’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과반수로 총선 승리할 수 있었던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놓쳤다. 분하고 또 분하다. 그러나 조속히 당을 수습하고 대선승리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내고야 말겠다.” (2012/04/12, 제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둔 점을 놓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  이인영 민주통합당 공동선대본부장(민주통합당 의원)이 2012년 12월12일 대전 대덕구 중리시장 입구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름다운 별이 졌다. 김근태의 깃발은 내려졌지만 수천만 수백만 가슴 속에 해방 횃불로 타오른다. 그의 이름을 민주주의 역사의 성장에 새기겠다.” (2011/12/30,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별세하자 애도를 나타내면서)

    “젊은 대표가 출현하면 야당이 바뀌고 그러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20∼40대가 호응하는 젊은 민주당이 되면 50대 이상의 국민까지도 우리를 다시 신뢰할 수 있다.” (2011/12/21, 민주통합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원래 책을 쓰려고 걸었던 길은 아니다. 더군다나 일기 형식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번쯤은 어느 운동권 정치인의 고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보가 트렌드로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시대정신이고, 시대의 선택이다. 진보를 위해 끊임없이 그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 신념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2011/11/10,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일기’를 쓴 이유를 질문받자)

    “나는 지금부터 통일의 길을 걷고자 한다.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20년 안에 통일을 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길도 20년쯤이면 도달할 수 있다. 꿈같은 얘기지만 아득한 800km의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니까 끝이 보였듯 나는 반드시 통일과 복지의 종착점에 도달하겠다.” (2011/11, ‘산티아고 일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서울시장이 이번 주민투표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일을 고백했다. 아이들의 먹는 것으로 불장난하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2011/05/17,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강행할 의사를 밝히자)

    “내 판단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이다. 옳다는 것은 신념이 걸리는 문제다. 대신 한 번 결정하면 바꾸지 않는다.” (2011/05/16,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진보는 시장과 돈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자 범람하는 상품의 논리로부터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일하는 사람들의 보람을 지켜내는 것이다.” (2011/05/13, 한겨레 인터뷰에서)

    “삼국지의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결정한 뒤 (같은 편인) 제갈량을 제거하고자 했다. 우리는 주유의 이런 용렬함을 넘어야 한다. 연대와 연합에서 누가 승자가 되느냐는 작은 문제다.” (2011/04/13, 4.2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를 통한 단일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자 지지를 호소하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억지로 딴청을 부린다고 생각한다. 고통 분담은 못할망정 초과이익과 기대 이상의 이익도 최소한 나누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로서 너무 인색한 모습이다. 중소기업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동반성장을 모색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공감한다면 억지로 딴청부릴 일은 아니다.” (2011/03/11,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전날 ‘이익공유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점을 비판하면서)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마 북한의 무력 사용은 준엄하게 규탄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확전에 반대했을 것이다. 평화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무력 사용 중단을 촉구했을 것이다.” (2010/11/24, 북한의 연평도 해안포 사격 사건이 일어나자)

    “민주당은 변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공과를 떠나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당심의 결과다. 민주당이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는 반성이 나온다.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저변에 국민 마음과 고단한 서민 삶이 있다. 그 삶을 개선하는 진보와 복지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정치혐오를 하는데 정치는 서민들에게 복이 됐으면 좋겠다. 복의 정치가 복지의 길이다.” (2010/10/04, 민주당 경선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힌 다음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민주당의 현재고 나와 젊은 정치인들은 민주당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질진 몰라도 진보개혁의 일관성과 진보민주 대통합의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신뢰를 놓고 보면 나에게도 상당히 큰 힘이 잠재적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적극 역할을 맡겠다.” (2010/09/15, CBS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민주당 경선에 함께 출마한 손학규·정세균 전 대표와 정동영 의원과 경쟁을 질문받자) 

    ▲ 이인영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가운데)이 2011년 12월29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입원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단지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 당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마음가짐, 소통과 혁신, 그리고 진보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새로운 지도부가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0/09/06, BBS라디오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86 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가 민주당 지도부에 올라야 하는 이유를 질문받자)

    “당시에는 사람들 가슴 속에 사회 정의가 짓밟히고 유린되는 점을 향한 분노,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학살자를 향한 분노가 있었고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정서적·정신적 공유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화나 토론이 아니었다. 왜 나가야 하는지 설득하기보다 용기를 내도록 선동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목청이 높아지고 손짓이 강렬해졌다. 내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일과 사람들 가슴속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일치된 과정이었지 사람들에게 없는 분노를 심는 게 아니었다. 의식을 세뇌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용기를 터뜨리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그게 필요했을 뿐이고 나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아니다.” (2007/06/25, 신동아 인터뷰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죽음이다. 보편적 가치가 왜곡될 때 국민의 폭발력이 어떠했는지 경험하지 않았나.” (2007/01/13, 서울신문 기사에서 박종철 열사의 서거 20주기를 하루 앞둔 소감을 질문받자)

    “무조건 모이자는 차원을 넘어 정책과 이념적 정풍운동을 분명히 하면서 통합과 재편의 순서를 밟아야 한다.” “여권은 전략적으로 불분명하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6월 항쟁 당시의 프레임(개념구도)이 ‘반독재 민주대연합’이었는데 지금은 ‘반보수우경화 중도개혁대연합’과 ‘비신자유주의 신중도연합’으로 지향되고 승화돼야 한다.” (2006/12/12, 열린우리당 ‘한국적 제3의길 연구회’에서 개최한 ‘6월 항쟁 20주년 회고와 전망’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통합을 위한 진정성이나 절박성에 공감하지만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진보를 위한 개혁 연정이 더욱 바람직하다. 지역 구도를 넘어 통합하기 위한 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파트너로서 필요하지만 개혁을 위한 연합이나 연정이 필요할 때 (한나라당은) 대단히 미흡할 수 있다.” (2005/07/30,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평생을 법과 상관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여러 사람들이 권하기도 했고 의원 활동은 입법행위를 통해 구체화된다는 걸 알았다. 또 입법이 헌법 정신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강한 만큼 새삼스럽지만 (헌법을) 공부하게 됐다.” (2004/09/20,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최근 헌법학 개론서를 사들여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은 폐지 수순에 가 있다. 반드시 폐지될 것이고 폐지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만 적절한 타이밍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2004/07/09, 내일신문 기사에서)

    “지역주의가 되살아나 선거 의미가 훼손된 일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헌법을 유린한 부패 정치 세력을 심판했다. 국민이 강한 나라, 국민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 (2004/04/15, 제17대 총선에서 당선한 뒤 연합뉴스의 당선자 인터뷰에서)

    “‘386(3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세대 특성상 문제 제기를 하려면 정면으로 하지 왜 음모를 꾸미겠느냐.” (2003/07/28,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당시 불거졌던 ‘386 음모론’을 반박하면서)
v

이 기사는 꼭!

  1. 윤석열, 국감에서 “조국 수사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신속하게 마무리"
  2. [오늘Who] 윤석열, 국감에서 검찰총장의 기자 고소 '무게'를 질문받다
  3. 감정원 공시가격 이의신청 5년간 50배 급증, 황희 "전문성 갖춰야"
  4. 철도공사 계열사의 사업 포기로 손실만 100억, 박재호 "관리 필요"
  5. 문재인 지지율 45.5%로 대폭 반등, 조국 사퇴에 지지층 결집
  6. 여야 3당 원내대표, 검찰개혁 놓고 의견차이만 확인하고 빈손
  7. 조국 법무부 장관 전격 사퇴, "검찰개혁 불쏘시개 역할 여기까지”
  8. [Who Is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9. [오늘Who] 윤석열의 선택, 검찰 지키기 항명인가 검찰개혁 수습인가
  10. [Who Is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TOP

인기기사

  1. 1 권봉석, LG디스플레이 덕에 LG전자 올레드TV 가격경쟁력 갖춘다
  2. 2 산업부, 서울과 광주에 '지능형 전력망' 체험단지 4년간 운영
  3. 3 정용진, 이마트 실적부진 해결 적임자로 외부인사 영입에 무게
  4. 4 쌀 직불제 개편과 엉켜 쌀 목표가격 국회 결정 난항으로 농민 불만
  5. 5 현대차 미국법인 마케팅 총괄한 딘 에반스 4년 만에 현대차 떠나

임원 전문직 경력직 채용정보

AD

이 기사의 댓글 1개

 | (175.113.117.194)   2019-06-19 12:08:03
스포츠에 정치 끼얹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