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현 기자 hsmyk@businesspost.co.kr2025-08-21 11: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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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비디아 측이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최고경영진과 회동하면서 5세대 HBM3E 12단보다 6세대 HBM4 생산에 집중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다아가 최근 SK하이닉스와 HBM4 공급가격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를 또다른 HBM4 공급사로 참여시켜 구입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 측이 이달 중순 미국 본사에서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회동하면서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제품보다는 6세대 HBM4 (생산)에 집중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늘어나는 AI 칩 수요를 맞추기 위해 내년 상반기 HBM4를 탑재한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루빈'을 서둘러 양산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SK하이닉스와 HBM4 공급가격 협상 중인 가운데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HBM4 제품을 서둘러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측에 HBM4 가격을 이전 세대 제품에 비해 크게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가 HBM4 구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삼성전자를 또다른 공급사로 적극 끌어들이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HBM4의 초기 엔지니어링 샘플을 엔비디아에 공급했고, 최근 기본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제품 양산을 위한 인증은 아니다.
삼성전자 소식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최종 HBM4 샘플을 오는 8월 말에서 9월 중 엔비디아에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이미 최종 샘플을 엔비디아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초기 HBM4 샘플이 엔비디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지만, 최종 샘플 공급과 인증에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HBM4 최종 엔비디아 인증은 빨라야 올해 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예정대로 연말 HBM4 엔비디아 인증 테스트를 통과하면, 회사는 내년 초부터 엔비디아에 본격적으로 HBM4 대량 공급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엔비디아는 HBM4를 탑재하는 차기 인공지능(AI) 반도체 ‘루빈’ 출시를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양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으며, 삼성전자에도 이에 발맞춰 HBM4 인증과 양산 속도를 높여줄 것을 요청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최고경영진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래라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차기 AI 칩과 HBM 사업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측은 삼성전자 측에 HBM4를 탑재한 차기 AI 칩 ‘루빈’은 전례없는 속도로 램프업이 될 것이며, 삼성전자의 HBM4 공급도 이같은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엔비디아 측은 또 아직 인증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5세대 HBM3E 12단보다는 HBM4 인증과 양산에 집중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램프업(Ramp-up)은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초기 생산 단계에서 수율(완성품 비율)을 높이며 생산량을 늘려가는 것을 말한다. 엔비디아는 당초 내년 상반기 루빈 양산에 들어가 하반기부터 본격 판매에 나설 계획이었는데, 이같은 계획을 더 앞당기는 것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HBM4 최종 샘플을 경쟁사에 비해 늦게 엔비디아에 보내게 된 것은 회사가 HBM4에 적용한 6세대 '1c D램' 공정이 기술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5세대 1b D램 공정으로 HBM4를 제작하고 있다. D램 공정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선폭이 미세해져 성능과 전력 소비 효율이 높아진다.
최종 샘플 공급은 늦어지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HBM4는 엔비디아 내부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전 HBM3E는 발열과 전력효율 문제로 엔비디아 인증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HBM4는 다르다는 관측이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HBM4는 현재 초기 테스트가 진행 중이지만, 엔비디아 측이 전력효율 측면에서 만족스러워 하고 있고, 과거 HBM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 홍보 이미지. <삼성전자>
엔비디아의 HBM 인증 절차는 3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구체적으론 브링-업(Bring-up) 단계 3주, 메모리 퀄리피케이션(Memory Qualification) 6주, 웨이퍼 수용 테스트(WAT) 7주 등 16주로 구성된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은 현재 메모리 퀄리피케이션 테스트 단계에 있으며, 올해 4분기에 최종 인증을 획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미 경쟁사보다 늦은 HBM3E 12단 인증보다는 HBM4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공급은 회사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있지 않다”며 “내년 HBM4에서 엔비디아를 포함해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인정받고, 공급을 늘려가는 게 최우선 순위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HBM4 엔비디아 인증이 내년 2월까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미국 증권사 JP모간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SK하이닉스는 곧 고객 샘플링을 시작하며 올해 11월쯤 인증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은 11월에 인증을 시작할 것이며, 결과는 빨라도 2026년 2월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모간스탠리는 삼성전자의 HBM4 엔비디아 공급과 함께 내년 엔비디아 HBM 공급망이 요동칠 것으로 내다봤다.
조셉 무어 모간스탠리 연구원은 “2025년 85~90%의 엔비디아 HBM 공급 점유율을 기록했던 SK하이닉스는 그 점유율이 2026년 50%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며 “이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과의 치열해지는 경쟁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어 연구원은 2026년 마이크론이 HBM 시장에서 20~25%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크론의 HBM 공급의 대부분이 엔비디아인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25%에서 최대 30%의 엔비디아 HBM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