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07-01 15: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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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사장이 ‘서울 영등포점 운영권 자진 조기 반납’을 결정한 것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준호 사장은 영등포점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운영권을 가능한 길게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영등포점의 운영 기간만으로는 매장 재단장(리뉴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사장이 ‘서울 영등포점 운영권 조기 반납’을 결정한 것을 놓고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세계백화점의 재입찰 참가가 변수로 꼽힌다.
재입찰이 나오면 기존보다 나은 조건으로 사업권을 다시 따낸다는 것이 롯데백화점의 전략으로 보이는데 관건은 경쟁사들의 행보다.
과거 영등포점을 놓고 한 차례 경쟁했던 신세계백화점이 재입찰에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정 사장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1일 백화점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준호 사장이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의 운영권을 조기에 자진 반납하기로 한 것을 놓고 사실상 승부수를 띄웠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현재 롯데백화점은 영등포점을 2029년까지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2019년 6월 실시된 영등포역 민자역사 신규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사업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사장은 최근 이를 포기하기로 했다. 2019년 입찰 당시 경쟁사보다 많은 금액을 써내면서 영등포점 수성에 공을 들였는데 돌연 스스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 시점에 나온 이런 판단은 다소 뜻밖의 결정으로 여겨진다.
롯데백화점은 과거 한국철도시설공단과 5년+5년 방식의 계약을 맺었다. 사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중단할지 결정할 수 있는 첫 기회가 2024년에 있었던 것인데 당시 계약을 연장해놓고 불과 1년 만에 운영권 사용 취소를 신청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사용권을 반납하는 것은 자칫 정부에 밉보일 수 있는 일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현재도 매장 재단장 타이밍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이를 만회하려면 우선 운영권을 반납했다가 재입찰을 통해 긴 운영기간을 확보한 뒤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의 위상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아졌다.
영등포점은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연매출 4천억~5천억 원가량을 낸 지점으로 롯데백화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소위 잘 나가는 매출 상위 점포였다. 하지만 2020년 매출이 24% 넘게 빠지면서 인근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에 지역 대표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넘겨줬다.
이후에도 영등포점은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 개장 등에 따라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2024년 기준으로 영등포점의 매출은 롯데백화점 전체 매장 가운데 12위에 머문다. 매출은 3천여억 원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등포점의 전면적 재단장 없이는 매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이 기대를 걸고 있는 부분은 과거와 현재 상황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2019년 영등포역 민자역사 신규사업자 선정 입찰 당시만 하더라도 국유재산의 임대 기간은 최장 10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관련 법 개정에 따라 10년+10년, 즉 최장 20년까지 운영할 수 있다. 매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일각에서는 롯데백화점이 영등포점 운영과 관련해 기존보다 나은 조건을 염두에 두고 사업권 포기라는 강수를 던진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2019년 6월 입찰에서 영등포점을 따낼 때 제시했던 조건은 연간 임대료 252억 원 수준이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제시한 연간 최저 임대료 216억7300만 원보다 약 16% 많았다.
신세계백화점은 롯데백화점보다 낮은 220억~240억 원가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롯데백화점이 영등포점을 수성하기 위해 다소 높은 금액을 써낸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백화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이 영등포점을 뺏기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입찰하면서 현재 발목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며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먼저 사업권을 포기한 뒤 정부에서 나은 조건을 제시하면 재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전략을 쓰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롯데백화점 서울 영등포점(사진)은 과거 롯데백화점의 매출 톱5 점포에 꼽혔지만 12위까지 떨어졌다.
롯데백화점이 이제 막 사업 포기 신청을 한 상태라 재입찰 조건이 어떻게 나올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백화점업계의 업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임대료를 인상해 공고를 낼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사장이 사업권을 포기했다가 자칫 영등포점을 영영 뺏길 수 있는 리스크를 선뜻 짊어지려는 데는 경쟁사들의 사정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6년 전 입찰에서 영등포점 입찰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AK플라자는 현재 백화점사업 확대에 신경을 쓰기 힘든 상태다. 애경그룹은 계열사인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 사태 수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경쟁상대로 보기 힘들다. 이미 영등포점에서 직선거리로 2.4k㎞가량 떨어진 곳에 더현대서울이라는 핵심 점포를 보유하고 있어 중복 투자에 대한 수요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한화갤러리아 역시 현재 백화점사업이라는 본업보다는 식음료 사업 등 신사업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변수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힘들다. 바로 신세계백화점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1984년부터 타임스퀘어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과 불과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점포가 사실상 붙어 있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라 자칫하면 중복 투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붙어 있는 매장을 이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타임스퀘어점은 패션 전문관으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리빙 전문관으로 이용하는 식으로 시너지를 낼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이 6년 전 영등포역 민자역사 신규사업자 선정 과정에 중도 포기하지 않고 입찰까지 끝까지 참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