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02-05 14: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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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웰푸드를 향해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신 회장(가운데)가 지난해 9월 벨기에 신트니클라스에 있는 식품회사 길리안 생산공장을 점검하는 모습. <롯데지주>
[비즈니스포스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가장 애정하는 계열사로 롯데웰푸드가 부상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로 여겨지지만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장성이 낮은 제과기업이라는 평가 탓에 그룹 차원의 주목도가 낮았던 기업이었다. 그렇지만 롯데그룹이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신사업 차질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롯데웰푸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5일 롯데그룹 안팎의 평가를 종합하면 롯데웰푸드가 롯데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매출로만 보면 롯데웰푸드는 롯데그룹의 주력이라고 보기 힘들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매출 4조600억 원가량을 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롯데케미칼(20조7531억 원), 롯데쇼핑(14조1061억 원)에 한참을 못 미친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증가 추세로 보면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영업이익 2천억 원 시대를 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만 하더라도 영업이익이 갓 1천억 원을 넘겼는데 불과 3년 만에 2배 넘게 수직 상승한 것이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를 살펴봤을 때 롯데웰푸드처럼 가파른 영업이익 상승곡선을 탄 기업은 찾기 힘들다. 롯데웰푸드가 2022년 롯데제과와 롯데푸드의 합병 덕분에 몸집이 커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성과의 의미를 축소하기는 어렵다.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2021년에 낸 영업이익은 각각 1085억 원, 385억 원이었다. 단순 합산해도 1500억 원이 되지 않는 셈인데 합병 덕분에 시너지가 났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중복 사업을 정리하는 등 사업 효율화에 기울인 노력이 영업이익 상승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웰푸드가 20년 전부터 공들여온 인도사업에서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도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웰푸드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으로 해석된다. 신 회장은 3일 올해 첫 해외 출장지로 인도를 선택해 출국했다. 이영구 롯데그룹 식품군HQ(헤드쿼터) 총괄대표 겸 롯데웰푸드 대표이사 부회장과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등이 신 회장과 함께 인도로 향했다.
롯데웰푸드가 인도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일정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인도에서 롯데웰푸드의 주요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 총수의 단독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한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최근 수년 동안 롯데그룹이 글로벌 영토 확장에 힘을 주고 있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나라 위주로 해외 현장경영을 다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행보로 읽힌다.
그만큼 롯데웰푸드가 신 회장에게 많은 의미를 차지하는 계열사로 거듭나고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에도 롯데웰푸드를 비롯한 한일 식품 계열사를 향해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원롯데 식품사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한일 롯데가 긴밀히 협력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성장 가능한 기업이 되어 달라”며 “해외 매출 1조 원이 넘는 다양한 메가 브랜드 육성에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이영구 부회장과 이창엽 롯데웰푸드 대표, 신유열 미래성장실장, 다마쓰카 겐이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등 한일 롯데 지주회사 및 식품계열사 경영진이 참석했다.
롯데웰푸드가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신 회장으로서도 더 이상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계열사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웰푸드는 2023년 3월 회사 이름을 기존 롯데제과에서 롯데웰푸드로 바꿨다. 롯데제과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회사 창립 5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사 이름에서 제과를 빼는 것은 롯데그룹의 모태기업이라는 뿌리를 지우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단순한 제과기업에서 벗어나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의지를 담기 위해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롯데웰푸드가 헬스&웰니스 흐름을 노린 여러 제품군을 갖추기 시작했고 글로벌 확장성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가 증권가에서 꾸준히 나온다.
신 회장이 롯데웰푸드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배경에는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의 실적 부진도 자리잡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롯데그룹의 주요 캐시카우(현금창출원)라는 평가를 받았던 롯데케미칼은 매우 고난한 시기를 겪고 있다. 중국 석유화학기업의 저가 공세에 손발이 묶이면서 롯데케미칼은 최근 3년 동안 누적 영업손실 1조9천억 원가량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 탓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사진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모습.
롯데케미칼의 지속된 적자는 지난해 말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정도로 그룹을 위기로 밀어 넣었다. 더구나 롯데그룹이 새 성장 동력으로 힘을 실었던 신사업도 삐거덕거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바이오와 헬스케어 등에 손을 뻗었지만 롯데헬스케어는 설립 2년 반 만에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해외사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롯데웰푸드에 시선을 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롯데웰푸드는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로 여겨지는 기업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한국에 최초로 만든 회사는 1996년 설립한 알루미늄 관련 제조기업인 ‘롯데알미늄’이다. 하지만 이보다 한 해 늦게 만들어진 롯데제과를 한국 롯데그룹의 뿌리로 평가하는 시선이 우세하다.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키웠던 신격호 창업주는 애초 정유와 제철 같은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으로 한국 투자를 결심했지만 당시 1960년대 당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간산업 투자 기회를 놓쳤다.
신격호 창업주가 롯데웰푸드의 전신인 롯데제과를 1967년 4월 창업했다.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한 뒤 약 2년 만의 일이다. 신 창업주는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서 “그동안 ‘모국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다 보니 ‘국가경제’라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면 제과업을 떠올린 후에는 ‘국민의 삶’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됐다”며 ‘한국 소비자에게 양질의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목표로 제과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돌아봤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