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계열사들의 글로벌 사업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연달아 나서고 있다.
이 회장은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비교해 조용한 경영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만 투자에서만큼은 남다른 과단성을 보여왔다. 현재 CJ그룹이 구축한 해외 사업기반도 과감한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계열사들의 글로벌 사업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 회장이 기존에 구축한 해외 사업기반의 토대 위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또다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할 것이란 시선이 나온다.
22일 CJ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CJ 주요 계열사들은 최근 해외 시장을 겨냥한 사업 확대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식품 계열사 CJ제일제당은 유럽과 미국에서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생산시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부다페스트 근교 두나버르사니에 공장 부지를 확정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축구장 16개 크기의 부지(11만5천㎡)에 건설되는 이 공장은 2026년 하반기부터 ‘비비고 만두’를 생산해 유럽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후 비비고 치킨 생산라인도 추가 증설한다는 계획도 마련돼 있다.
미국에서는 냉동식품 자회사인 슈완스가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Sioux Falls)'에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북미 아시안 푸드 신공장' 건설에 돌입했다.
이 공장은 축구장 80개 규모(57만5천 ㎡)의 부지에 건설되며 찐만두·에그롤 생산라인과 폐수처리 시설, 물류센터 등을 갖추게 된다. 현재로서는 북미 최대 규모의 아시아 식품 제조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헝가리와 미국 새 공장에 투입되는 금액은 각각 1천억 원, 7천억 원 규모다.
물류 계열사 CJ대한통운도 해외 물류 역량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 사업 국가인 미국에서 조지아주 게인즈빌의 약 2만5천㎡ 규모의 콜드체인 물류센터를 최근 본격 가동한 데 이어 켄자스주 뉴센추리에서도 약 2만7천㎡ 규모 콜드체인 물류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 외에도 인도, 동남아시아, 증동 등지로도 사업 확대에 서두르고 있다.
국내 화장품 유통 강자인 CJ올리브영도 해외 소비자 외연을 확장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22일 개점한 ‘올리브영N 성수’는 내수 시장의 절대 강자를 넘어 글로벌 화장품 유통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CJ올리브영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상품 판매보다는 체험에 초점을 둔 공간 구성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방문지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여러 나라 언어로 매장 안내를 하는 것은 물론 외국어 가능 직원을 배치했다. 영어로 상품명이 병기되는 전자라벨도 적용했다.
올리브영N 성수는 5개 층, 면적 약 4628㎡(1400평)으로 기존 특화매장으로 꾸민 올리브영 타운매장들의 평균 면적보다 9배나 크다. 직원 수도 240명에 이른다.
상당한 자원과 역량을 투입한 매장 신설임에도 당장에 영업실적보다 체험에 초점을 맞춘 배경에는 고객 경험의 확장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CJ올리브영은 외국인들의 오프라인 매장 경험이 온라인몰을 통한 재구매로 연결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연계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CJ그룹 계열사들의 글로벌 사업확장 기조는 이재현 회장의 경영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이 회장은 CJ그룹의 장기비전으로 ‘2030 월드베스트’를 제시했다. 이는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게 1등이 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담은 비전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경영 행적을 더듬어 봤을 때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공격적 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J그룹이 신사업에 진출하며 지금의 수준으로 사세를 불린 배경에는 이 회장의 과감한 베팅이 있었다.
CJ그룹의 성장 역사에서 이 회장의 투자 행보는 성격별로 두 가지 국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된 뒤 2010년 전후까지는 지금의 사업구조를 확립하는 단계였다면 2017년 이 회장의 경영 복귀 뒤부터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단계의 투자라는 것이다.
첫 번째 국면에서 이 회장은 식품 중심의 사업구조를 문화, 물류 쪽으로 다변화했다.
1997년에는 CJ엔터테인먼트(CJENM 영화사업본부의 전신)를 설립해 영화배급사업을 시작한 이래 영화관, 홈쇼핑,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을 넓히기 위해 새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물류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을 인수한 것은 당시로서는 과감한 승부수였다. 이때 포스코그룹과 롯데그룹이 대한통운 인수 의지를 보였는데 이 회장은 대한통운 인수에 1주당 20만 원 넘는 인수희망가액을 제시했는데 이는 경쟁 상대였던 포스코-삼성SDS컨소시엄보다 1주당 10만 원 많은 금액이었다. 투입한 금액은 1조8천억 원에 이른다.
현재 CJ대한통운이 국내 물류시장에서 1위 사업자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이 회장의 승부수는 CJ그룹사에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장이 2017년 경영에 복귀한 뒤부터는 투자가 글로벌 사업 확대에 집중되고 있다. 슈완스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2019년에 CJ제일제당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슈완스의 인수 대금은 약 18억4천만 달러(2조881억 원)로 CJ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슈완스가 당시 미국 냉동피자시장에서 네슬레에 이어 점유율 2위였던 데다 미국 전역에 물류센터와 배송망을 갖추고 있어 CJ제일제당이 식품사업을 북미에서 확장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될 것이란 경영판단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 슈완스가 미국 캔자스주 살리나에 구축하고 있는 물류센터.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물류센터는 슈완스의 제품 뿐 아니라 CJ제일제당 비비고의 제품의 유통기지로도 활용된다. < CJ제일제당 미국법인 >
슈완스는 현재 미국 냉동피자시장에서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슈완스의 생산시설과 배송망을 통해 비비고 제품의 판매량도 확대되고 있다.
이밖에도 CJ그룹은 세계 곳곳의 식품기업, 물류기업, 콘텐츠기업을 인수하거나 해외 거점을 구축하며 글로벌 사업확장의 기반을 구축해왔다.
글로벌 사업확장 기반이 마련된 만큼 이 회장은 CJ그룹을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일구겠다는 자신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CJ그룹이 사업 리밸런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할 채비를 하고 있는 만큼 투자 규모도 ‘역대급’이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데 투자금융업계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는 6조 원 안팎이다. 슈완스 인수가액 이상의 투자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더구나 CJ제일제당은 식품소재 자회사 셀렉타, 축산·사료 자회사 CJ피드앤케어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CJ제일제당은 셀렉타 매각 추진을 공식화했고 CJ피드앤케어 매각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다소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회사 매각 여부에 따라 투자 여력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식품사업의 성장세가 가파른 유럽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투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CJ그룹이 바이오사업부문을 매각하게 되면 매각 대금은 유럽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에 씅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영토 확장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유럽시장이 부상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2020년 CJ제일제당의 인수합병 전략이 사업다각화였다면 2020년 이후에는 핵심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