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

김디모데 기자
2018-10-2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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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애

    원희룡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다.

    2018년 6·14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며 보수진영이 구심점을 잃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범보수 대선주자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1964년 2월14일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태어났다. 제주제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활동하다가 변호사를 개업한 뒤 정치권에 입문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쇄신특별위원장, 사무총장,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과 함께 ‘남원정 트리오’로 묶여 소장 개혁파로서 활동했다.

    광역단체장인 제주도지사로 재선까지 성공했다. 초선 때 새누리당 소속이었으나 현재 무소속이다.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과 사법시험 수석합격 경력이 있어 ‘노력하는 천재’로도 알려져 있다.

    정치 입문 후 소신 있는 말과 행동으로 진영을 가리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도지사 재선과정에서 탈당과 더불어민주당 입당 논란이 일면서 행보가 다소 불투명해졌다.

    ◆ 활동의 공과

    △새누리당 이탈과 도지사 재선
    원희룡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정계 진출 후 계속 몸담아 왔던 새누리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에 재선했다.

    원희룡은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새누리당은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며 보수 개편을 주장했다. 12월21일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혔고 2017년 1월4일 탈당해 새누리당 비박계가 구성한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2017년 1월3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이후 바른정당에 계속 몸을 담고 있었으나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이 출범하자 2018년 4월10일 “개혁정치를 현재 정당구조에서 실현하기 어렵다”며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2018년 4월17일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6·13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이 부상하기도 했다. 원희룡은 언론 인터뷰에서 “도민들이 명령한다면 민주당에도 입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무소속으로 지방선거를 완주하면서 광역단체장 중 유일하게 무소속 당선인이 됐다.

    원희룡은 별도의 취임식을 하지 않고 7월2일 도청 기자실에서 취임사를 발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그는 “이념과 정당을 뛰어넘어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며 “공직 개방의 폭을 넓혀 도정과 도민이 함께 일할 수 있게 하고 형식을 가리지 않고 실질적 소통에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리얼미터의 민선7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8~9월은 17개 지자체 중 2위에 올랐다. 그러나 10월8일에는 4위로 순위가 다소 하락했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18년 7월2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선6기 제주도지사
    새누리당의 중진 차출론에 따라 2014년 제주도지사에 출마에 당선됐다.

    시민사회, 의회와 협치를 내세워 당선됐으나 예산, 인사 등의 문제로 초기에는 도의회와 적잖이 갈등을 빚으면서 도정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의회와 관계가 개선되면서 도정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시도지사 공약 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SA) 등급을 받았으며 법률소비자연맹의 민선6기 전국시도지사 공약 이행률 평가에서도 76.27점으로 17개 광역단체 중 1위에 올랐다.

    전기차 보급 확대, 난개발 방지 조례 개정안 통과, 부동산 투기대책본부 운영, 우도 외부차량 운행 제한  등 부분별한 제주도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들을 주로 펼쳤다.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활동
    한나라당 의원 시절 남경필·정병국 의원과 함께 남원정 트리오로 불리며 소장 개혁파 운동을 펼쳤다.

    2000년 1월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를 발족하면서 한나라당에 개혁 바람을 일으켰고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당시 남원정은 물론 오세훈 심재철 정두언 김부겸 김영춘 박종희 임태희 의원 등이 미래연대에서 활동하며 한나라당 정풍운동과 정치권 개혁을 이끌었다. 미래연대는 부패정당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최병렬 대표의 사퇴를 이끌어 냈고 선거법 등 개혁입법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불어 한나라당 의석이 줄어들었지만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은 남경필 정병국 의원과 함께 당내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는 2004년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한나라당 최연소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지도부에 올랐다.

    이후 국가보안법 소폭 개정, 수도 이전 반대, 이해찬 총리 무시 전략, 당직 개편과 당명 개정 등 박근혜 대표와 당의 행보에 반발하면서 “당을 떠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원희룡은 2005년 11월 홍준표 혁신위원장의 혁신안 역시 “대선 필패의 전주곡”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에 이어 3위로 경선을 완주했다.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로 했기에 한나라당의 미래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3선 의원 시절에는 재보선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조기 전대와 개각, 국민공천배심원단제 등의 쇄신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에게 밀려 서울시장 도전의 꿈을 접었다. 이후에는 한나라당 사무총장,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차례로 지냈다. 하지만 2011년 당대표 선거에서 4위로 낙선하고 약속대로 19대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원내 활동을 종료했다.

    △ 선거 이력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두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을 뿐 아니라 모두 과반 이상을 득표했다. 

    2000년 첫 국회의원 출마였던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로 민주자유당에서 재선 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박범진 의원(37.3%)을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17대 총선 때는 같은 지역구에서 56.58%의 득표율로 김희갑 열린우리당 후보(37.86%)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18대 총선 때도 같은 지역구에서 52.11%를 득표하며 이제학 통합민주당 후보(26.82%), 강삼재 자유선진당 후보(20.17%)를 누르고 무난히 3선에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는 불출마 했으며 2년 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주도지사에 출마했다. 60.0%의 득표율로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꺾고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때는 이전까지 몸담고 있던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51.7%를 얻어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40.0%)에게 승리했다.

    △초기 생애
    원희룡은 학력고사 전국 수석과 사법시험 수석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학창 시설 내내 전국 수석을 지켰고 1982년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고 졸업 후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서 제주 출신으로 첫 수석 합격 기록을 세운다. 사법연수원은 24기 5등으로 수료하고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검사 시절에는 재개발조합 사기사건, 딱지어음 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범죄 등 경제사범 소탕에 열중했다. 부산지검 강력부 시절에는 지역 내 조직폭력배 및 마약사범 검거에도 힘썼다. 서울지검에 근무할 때는 배우 신은경씨의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8년 변호사를 개업한 후에는 당시에 생소한 분야였던 지식재산권과 정보통신(IT)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 고문 변호사와 전국PC방연합회 고문 변호사 등을 지냈다. 사이버 무료법률사무소 오세오월드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국내 인터넷 법률 상담의 시초 격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1999년 이회창 총재의 ‘젊은피 수혈’ 결과로 “합리적이고 개혁적 보수를 이루겠다”며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제주 공천을, 한나라당은 서울 공천을 보장하며 양쪽 모두 원희룡에게 구애를 펼쳤으나 결국 보수노선을 선택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같은 시기 입당한 인사다.

    ◆ 비전과 과제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18년 10월5일 제주 서귀포시 황우지해안 입구에서 태풍 콩레이 북상 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원희룡은 민선 7기 도정 목표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로 제시했다. 그는 제주도 난개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는데 이에 맞서 자연의 가치와 제주의 전통 문화를 보존해 나가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만큼 제주도 의회와 협치를 통해 원만하게 도정을 운영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원희룡은 취임사에서 “이념과 정당을 뛰어넘어 폭넓게 통합하겠다”며 협치에 의지를 나타났다.

    도의회는 더불어민주당 29명,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각 2명, 정의당 1명, 무소속 4명, 교육의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원희룡은 7월 도의회와 상설정책협의회 운영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협치 제도화의 첫 발을 뗐다.

    장기적으로 보수진영에서 대선 도전이 가능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려면 중앙정치에서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벗어나 있어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도전의 발판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이미 탈당한 바른미래당으로 복당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유한국당,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최근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러브콜이 꾸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제주도지사 당선 직후 “제가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끝까지 ‘제주도민당’ 소속을 고수할 것”이라면서 “저는 권력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도민에 의지하고 도민만 바라보며 도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10월17일에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면담을 앞두고 “무소속 도지사로 도민에게 이미 약속했듯이 중앙정치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오로지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며 입당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18일 김 위원장이 “정식으로 입당 요청은 하지 않겠지만 당의 혁신을 위해 고민을 같이 해 달라”고 하자 원희룡은 “도정에 전념하고 충실해야 할 입장으로 지금 제주의 여건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대답했다.

    당면한 과제로는 경찰의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조사가 있다. 재선 임기 초반부터 도정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로 조기에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도정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혐의가 드러난다면 도정은 물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던 비교적 깔끔한 이미지에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 평가

    비교적 소신있는 정치행보로 진영을 넘어서 좋은 평가를 듣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운동권에서 전향해 기성 정치에 뛰어든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일하며 박근혜 당시 대표를 지지했던 경력이 있고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 입당과 바른미래당 탈당 후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열어놓는 등 좌우를 오가는 행보로 기회주의 성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86세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서울법대 82학번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 등이 동기다. 의원 시절인 2011년 동기인 조국 서울대 교수와 SBS 스페셜 보수 진보 논쟁에 참여해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와 부산 한진중공업 등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공감대와 이견을 확인한 일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올 정도로 가난한 형편이었다고 한다. 부친이 과자가게, 배추장사, 농약 판매, 신발가게, 책방 등 여러 사업을 했으나 잘 안 돼 이사만 10번 넘게 다녔다. 다만 부친이 책방을 하다 망해 원희룡은 집안에 쌓인 재고서적을 원없이 읽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1등을 놓쳐본 일이 없어 제주 지역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인근 여고에서 그의 이름이 ‘원일용’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했다. 

    1982년 치러진 대입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32점을 얻어 전국 수석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다만 당시 문과의 세계사 인문지리보다 이과의 수2와 물리 화학이 어렵게 출제돼 328점을 받은 이과수석이 진정한 수석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원희룡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입학하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에는 군부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에 참여했고 학교에서 유기정학을 받기도 하고 경찰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정학 기간에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시작해 3년 동안 활동했다. 본격적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공단에 위치한 경동산업(현 키친아트)에 일단 2900원의 미숙련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하기도 했으나 신분이 들통날 위기에 처해 7개월만에 그만뒀다.

    1989년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이후 사법시험 공부를 하며 2년 동안 잠적 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에 고향 제주에서는 원희룡이 자살했다거나 신학대학에 들어갔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4기)은 5등으로 수료했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고 그도 개신교인이다. 예장통합교단에 속해 있는 제주중문교회에서 협동안수집사를 맡고 있다. 부친은 제주중문교회를 50년간 섬긴 원로장로고 형은 예장통합 교단의 목사다. 원희룡은 종교적 이유로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라산신제 등의 집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라톤, 축구 등의 운동을 즐긴다. 여덟 차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적이 있으며 최고 기록은 2006년 세운 3시간59분43초다.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서브쓰리는 3시간 이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으로 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선망하는 목표다.

    IT·디지털기술 등에 익숙한 정치인 중 하나다. 변호사 시절부터 온라인 상담 사이트를 운영했고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등 게임을 즐겨했다.

    일찍부터 블로그를 잘 활용해 블로거 원희룡이라는 책도 냈다. 6·13 지방선거에서 e스포츠협회 제주지회 창설 등 e스포츠 활성화 공약을 냈고 제주도 블록체인 특구지정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8월30일 시도지사 간담회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특구지정을 직접 건의했다.

    2005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해 차세대 지도자(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됐다.

    영국 노예무역을 폐지시킨 윌리엄 윌버포스와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주도한 에이브러엄 링컨을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다. 국내 위인 중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

    좌우명은 진인사(盡人事)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 사건사고

    ▲ 원희룡 제주도지사.

    △선거법 위반 및 뇌물수수 혐의
    6·13 지방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직 제주도지사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2010년 우근민 전 지사 이후 8년만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은 2018년 9월27~28일 원희룡을 피의자신분으로 불러 공직선거법 위반 4건, 뇌물수수 1건 등 혐의를 조사했다.

    선거 때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희룡이 2014년 8월1일 제주도지사 취임 직후 서귀포시 모 골프장 특별회원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원희룡은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며 "도지사 취임 후 골프를 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검찰 고발을 진행했다. 경찰은 특별회원권에 뇌물수수 혐의, 반박 기자회견에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했다.

    또 원희룡은 2018년 5월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주도 난개발과 중국자본 투자에 문 후보와 우근민 전 지사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여기에도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았다. 5월24일 제주관광대학교에서 청년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것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받았다.

    원희룡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9월29일 귀가하면서 “앞으로 절차는 남아있지만 도민 여러분은 지나친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며 무혐의를 입증하는 데 자신감을 나타냈다.

    △비자림로 훼손
    2018년 8월2일부터 제주시 조천읍 대천동 사거리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비자림로 2.9㎞ 구간에서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삼나무숲길에 있는 삼나무 900여 그루를 베어내 경관 훼손 논란이 일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오는 등 여론을 달구는 이슈로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제주도는 8월10일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원희룡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8월13일 복귀해 첫 일성으로 “아름다운 길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도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도민과 더 소통하고 더 지혜를 모아 비자림로를 아름다룬 생태도로로 만들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림로 확장은 원희룡의 공약인 제2공항 추진과 연계돼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다만 제주도는 제2공항이 거론되기 전인 2009년 비자림로 확장이 논의돼 2014년 예산이 편성됐다며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원희룡은 9월5일 도정질의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변명은 아닌데, 공사하면서 예산까지는 신경쓰지만 삼나무 베어내는것 까지 도지사가 도장 찍는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훼손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생태적으로도 가치를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도시건설국장에게 주문했다”며 “경관.산림.도로 등등 해서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해법이 뭔지 자문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제주도는 우회도로 건설과 한쪽방향만 확장하는 등의 대안을 놓고 검토중이며 10월 말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중 피습
    2018년 5월14일 제주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난입한 도민으로부터 계란 투척과 얼굴 가격을 당했다.

    김경배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 부위원장은 제주2공항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회가 끝나갈 무렵 단상으로 뛰어올라 원희룡에게 계란을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 등을 때렸다.

    원희룡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굳은 채 앉아 있었으며 옆자리에 있던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이 가해자를 제지했다. 가해자는 이 과정에서 준비한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다가 119구급대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김 부위원장은 2017년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42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등 원희룡의 제2공항정책에 반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이후 SNS를 통해 “다행히 저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걱정하실 만큼은 아니다”라며 “이런 극단적 방법을 써야했던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 그 분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서 쾌유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의 딸이 SNS에 “아빠가 이렇게까지 해서 욕을 먹고 정치를 해야하는지 정말 모르겠고 솔직한 마음으로 정계를 은퇴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실컷 욕을 하고 반대표를 던지고 비방하고 무슨 짓을 하셔도 좋지만 제발 몸만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원희룡은 5월16일 딸의 SNS 발언을 사과하고 병원에 있는 김 부위원장을 문병했다.

    ▲ 2006년 1월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해 큰절을 하고 있다.

    △전두환 세배 논란
    2007년 1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 큰절로 세배를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희룡은 전 전 대통령을 포함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방문해 세배를 했다. 하지만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원희룡이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 사실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1월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이 있지만 대한민국 근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반복되는 역사를 치유하고 통합하자는 측면에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월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가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분노들을 자극한 점에 대해 정말 사과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원희룡은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 재직시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재자, 부정 축재자로서 민간인 학살 당사자로서 가졌던 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거나 찬양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폭행 사건
    사법연수생 시절 주취 폭행을 저질러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1993년 9월15일 동료 연수생들과 술을 마시고 길가에 방뇨를 하다가 이를 나무라는 주민을 집단폭행해 서울성북경찰서에서 입건 조사를 받았다. 원희룡 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정릉1동 파출소에 연행됐는데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며 전화와 책상 등 기물을 부수며 소란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이와 관련해 "노상 방뇨한 사실이 없는데 가게 주인이 오해를 했고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며 “나는 말싸움이나 몸싸움에는 가담을 하지 못했고 그냥 옆에 둘러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건 조사를 마치고 곧바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합의를 했다”며 “부끄러운 상처자국으로 생각하며 그때부터 내내 항상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고 해명했다.

    ◆ 경력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해 수원지검, 여주지청, 부산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1998년 원희룡법률사무소를 개업해 지적재산권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1999년 법무법인 춘추에 합류했고 연말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 지역구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5년 한국지식정보산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를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14년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8년 제38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로 재선했다.

    ◆ 학력

    ▲ 세 살 때 원희룡 제주도지사.

    1976년 중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중문중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제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뉴미디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14대째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집안에서 원응두, 김춘년씨 사이 2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우자는 강윤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다.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82학번 동기로 제주향우회에서 만났다. 원희룡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강 교수가 서울대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1993년 결혼했다.

    딸이 둘 있으며 이름은 서정과 소영이다.

    ◆ 상훈

    2014년 자랑스런 한양 언론인상을 받았다.

    2015년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최고대상을 수상했다.

    2015~2017년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

    ◆ 기타

    2018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르면 17억6400만 원을 신고했다. 5억여 원 상당의 모친 소유 과수원 등이 포함돼 있다. 2006년 초선 의원 때 처음 공개한 재산 5억5345만 원보다 12억 원 가량 증가했다.

    어릴 적 리어카에 발가락이 끼는 사고를 당했는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후천적 기형이 됐다. 이 때문에 1985년 징병검사에서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

    우리들의 세기(2000),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2005), 블로거 원희룡(2010), 사랑의 정치(2010),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2014) 등의 책을 썼다. 주관식헌법(1998), 객관식헌법(1998),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2005), 수석합격 나도 할 수 있다(2010)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 어록

    ▲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학생시절.

    “제1야당 대표의 제주방문과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할 까닭이 없다. 제주를 찾아오는 손님을 일부러 회피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래야할 이유도 없다. “정치인이 아닌 도지사 입장에서 제주의 산적한 현안을 풀기 위해선 여야 모두로부터 초당적 협력을 반드시 받아야할 상황이다. 찾아오는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제주의 현안해결을 위해 국회와 야당의 도움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다.” (2018/10/17,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면담을 앞두고)

    “남북 두 정상이 지난 20일 북쪽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올랐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남쪽 '민족의 영산' 한라산에서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한민족 공동번영을 위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를 고대한다.” (2018/09/21, 평양 정상회담 관련 메시지)

    “제주도민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서 일을 함에 있어서 제주도민을 중심으로 삼겠다. 어떠한 권력과 이념도,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도 도민 위에 있지 않다. 도민 모두의 공통의 가치와 요구를 최우선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도지사로서의 본분이다. 소속정당도 손잡은 정치세력도 없지만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가겠다.” (2018/07/02, 제주도지사 취임사)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대놓고 배척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제주도가 난민 부담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최소한의 난민규약에 따라 중앙정부와 협력해서 가급적 원만하게 대처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후유증 없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8/06/22, 뉴시스 인터뷰에서 예맨 난민신청자 관련)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으로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모두의 정치를 하셨던 그 정신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올린다. 비록 당은 달리했지만 동시대에 정치를 한 사람으로서 노무현의 정신을 실현하는 길에 저도 뜻을 함께 한다. 정치를 하는 동안 가장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하나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때 당론주의에 매몰돼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정치 초년병으로서 사려 깊지 못했던 일에 되돌아보며 반성의 마음을 다진다.” (2018/05/23,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를 맞아)

    “2018년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도민과 함께 하는 행복특별자치도 제주를 만들어 나가겠다. 화해와 상생의 공존 공동체를 만들겠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 (2017/12/29, 2018년 신년사)

    “힘든 농사일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했다. 저는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에 가깝다. 한 분야에서 산맥을 이루려면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시간과 관심을 집중한다면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2017/05/31, 제12회 제주포럼 중앙일보세션)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을 당했다. 국민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간판을 내리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오물을 쓴 모습이 국민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또 하나의 구태정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2016/11/13, 새누리당 비박계 비상시국회의)

    “저에게 국가 권력구조를 짤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 총장을 모시고 문 전 대표로 대변되는 야3당의 구체적인 고민을 취합해서 갈 수 있다. ‘원희룡 세대’가 나서 대연정, 권력분점,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 정치문화를 만들겠다. 젊은 세대인 안희정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과도 같이 가야 한다.” (2016/10/19,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최고 통치권자는 칸막이를 뛰어넘어 민심을 읽으면서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된다. 결국 장관과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2015/06/23,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메르스 관련)

    “제주 신라호텔이 영업 정지라는 어려운 조치를 과감하게 결단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공익에 대한 책임과 고객 안전을 중시한다는 자세를 실천으로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신라호텔과 같은 대기업이 청정제주를 유지하고 지역경제를 회복하는데 적극 앞장서 달라.” (2015/06/22,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만나 메르스 대처에 사의를 표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부당한 폭력으로 군림할때, 변호인같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시대로 넘어설수 있었다. 국민의 압도적 동의로 건너온 민주화의 강을 거꾸로 돌릴수는 없다. 영화 변호인에서 지금의 분위기를 느끼는 관객이 많을수록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신호다.” (2013/12/26, 영화 변호인을 본 후 트위터에 올린 글)

    “대통령선거는 후보 중 한 사람을 당선시키는 것 뿐 만 아니라 나라를 이끌 방향과 그것을 책임질 세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크고 사회적인 대립과 갈등이 큰 지금 우리는 책임감 있게 변화를 주도할 정권이 필요하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한 말은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정치쇄신안을 확실히 추진할 것이라 믿는다.” (2012/11/26,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원을 선언하며)

    “계파의 차이를 녹여버리고 미래의 정권창출을 위한 대화합과 발전적 경쟁의 장을 열어가겠다. 내년 총선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총선 불출마를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지역구는 참신한 인재에게 양보하고 우리 당이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선주자들과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누비겠다.” (2011/06/20,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이 달라져야 한다. 서울시정이 확 바뀌어야 한다. 시정의 제1목표는 시민의 행복이어야 한다. 저 원희룡, 현장으로 가겠다. 갈등이 있는 곳, 위험이 있는 곳, 시민들의 어려움이 있는 곳에 가겠다.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문제의 해법을 찾겠다. 시정의 우선순위를 일자리, 교육, 집 문제 해결에 두겠다. 일.교.집 시장이 되겠다.” (2010/03/07,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문)

    “특정 세력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최대한 걸러내는 데 나의 존재이유가 있다. 당내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지거나 불신의 틀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계파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프로그램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겠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자들도 가급적 빨리 뵙고 의견을 받아서 쇄신위를 출범하겠다.” (2009/05/11, 한나라당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은 후 기자간담회에서)

    “X파일 사건의 본질은 음모론이 아닌 정경언 유착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X파일 내용의 전면 공개가 불가피하다.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 공익적 내용, 국민적 의혹이 형성돼 있는 내용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진실을 직시하는데 고통이 따르지만 어두움은 빛으로 비춰야만 한다.” (2005/08/10,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보수의 가치와 그 출발점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다. 하지만 이 땅의 보수라고 자처하는 가짜 보수들은 멸공, 숭미와 같은 가짜 보수의 가치와 사상이 보수의 전부인 양 주장한다. 가짜 보수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이 땅의 보수들은 모두 도매급으로 넘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또 욕을 먹는다. 이 땅의 가짜 보수주의자들과 토론해 많은 이들이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 드려야 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땅의 부모님들께 보수라고 손가락질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도록 해야 한다.” (2005/03/13,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에게 보수 토론회를 제안하며)

    “386은 불행한 세대였다. 나도 80년대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국제법 전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민족, 삶의 문제를 호흡하면서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 에너지는 항상 가슴 속에 남아 있고, 앞으로 제 직무 수행의 중심을 이룰 것이다.” (1999/03/01, 조선일보 인터뷰)

    “학생운동을 하느라 마음고생을 시켜드린 부모님께 작으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현 법조계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판검사 중 어느쪽에서 일하게 되든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1992/10/24, 동아일보 인터뷰)

    “우선 남이 앉아야 할 자리에 대신 앉은 염치없는 기분이 듭니다만 수험생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시 합격의 목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신 수험생 각자의 그 의지와 분투에 경의와 공감을 느낍니다. 

    저는 행운이 따라서 합격했지만, 그 행운이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는 돌아갈 수 없게끔 돼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꼭 이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만간 행운의 차례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행운이 여러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랍니다.“ (1992년 사법시험 수석합격 수기)
  • ◆ 활동의 공과

    △새누리당 이탈과 도지사 재선
    원희룡은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정계 진출 후 계속 몸담아 왔던 새누리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에 재선했다.

    원희룡은 2016년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새누리당은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며 보수 개편을 주장했다. 12월21일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혔고 2017년 1월4일 탈당해 새누리당 비박계가 구성한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2017년 1월3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이후 바른정당에 계속 몸을 담고 있었으나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이 출범하자 2018년 4월10일 “개혁정치를 현재 정당구조에서 실현하기 어렵다”며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2018년 4월17일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6·13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이 부상하기도 했다. 원희룡은 언론 인터뷰에서 “도민들이 명령한다면 민주당에도 입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무소속으로 지방선거를 완주하면서 광역단체장 중 유일하게 무소속 당선인이 됐다.

    원희룡은 별도의 취임식을 하지 않고 7월2일 도청 기자실에서 취임사를 발표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그는 “이념과 정당을 뛰어넘어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며 “공직 개방의 폭을 넓혀 도정과 도민이 함께 일할 수 있게 하고 형식을 가리지 않고 실질적 소통에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리얼미터의 민선7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8~9월은 17개 지자체 중 2위에 올랐다. 그러나 10월8일에는 4위로 순위가 다소 하락했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18년 7월2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선6기 제주도지사
    새누리당의 중진 차출론에 따라 2014년 제주도지사에 출마에 당선됐다.

    시민사회, 의회와 협치를 내세워 당선됐으나 예산, 인사 등의 문제로 초기에는 도의회와 적잖이 갈등을 빚으면서 도정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의회와 관계가 개선되면서 도정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시도지사 공약 평가에서 4년 연속 최우수(SA) 등급을 받았으며 법률소비자연맹의 민선6기 전국시도지사 공약 이행률 평가에서도 76.27점으로 17개 광역단체 중 1위에 올랐다.

    전기차 보급 확대, 난개발 방지 조례 개정안 통과, 부동산 투기대책본부 운영, 우도 외부차량 운행 제한  등 부분별한 제주도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들을 주로 펼쳤다.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활동
    한나라당 의원 시절 남경필·정병국 의원과 함께 남원정 트리오로 불리며 소장 개혁파 운동을 펼쳤다.

    2000년 1월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를 발족하면서 한나라당에 개혁 바람을 일으켰고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당시 남원정은 물론 오세훈 심재철 정두언 김부겸 김영춘 박종희 임태희 의원 등이 미래연대에서 활동하며 한나라당 정풍운동과 정치권 개혁을 이끌었다. 미래연대는 부패정당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최병렬 대표의 사퇴를 이끌어 냈고 선거법 등 개혁입법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이 불어 한나라당 의석이 줄어들었지만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은 남경필 정병국 의원과 함께 당내에서 더 많은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는 2004년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한나라당 최연소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지도부에 올랐다.

    이후 국가보안법 소폭 개정, 수도 이전 반대, 이해찬 총리 무시 전략, 당직 개편과 당명 개정 등 박근혜 대표와 당의 행보에 반발하면서 “당을 떠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원희룡은 2005년 11월 홍준표 혁신위원장의 혁신안 역시 “대선 필패의 전주곡”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는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에 이어 3위로 경선을 완주했다.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로 했기에 한나라당의 미래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3선 의원 시절에는 재보선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조기 전대와 개각, 국민공천배심원단제 등의 쇄신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에게 밀려 서울시장 도전의 꿈을 접었다. 이후에는 한나라당 사무총장, 공천심사위원장, 최고위원 등을 차례로 지냈다. 하지만 2011년 당대표 선거에서 4위로 낙선하고 약속대로 19대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원내 활동을 종료했다.

    △ 선거 이력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두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을 뿐 아니라 모두 과반 이상을 득표했다. 

    2000년 첫 국회의원 출마였던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로 민주자유당에서 재선 후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박범진 의원(37.3%)을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17대 총선 때는 같은 지역구에서 56.58%의 득표율로 김희갑 열린우리당 후보(37.86%)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18대 총선 때도 같은 지역구에서 52.11%를 득표하며 이제학 통합민주당 후보(26.82%), 강삼재 자유선진당 후보(20.17%)를 누르고 무난히 3선에 당선됐다.

    2012년 19대 총선에는 불출마 했으며 2년 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주도지사에 출마했다. 60.0%의 득표율로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꺾고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때는 이전까지 몸담고 있던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51.7%를 얻어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40.0%)에게 승리했다.

    △초기 생애
    원희룡은 학력고사 전국 수석과 사법시험 수석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학창 시설 내내 전국 수석을 지켰고 1982년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고 졸업 후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서 제주 출신으로 첫 수석 합격 기록을 세운다. 사법연수원은 24기 5등으로 수료하고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검사 시절에는 재개발조합 사기사건, 딱지어음 사건, 다단계 피라미드 범죄 등 경제사범 소탕에 열중했다. 부산지검 강력부 시절에는 지역 내 조직폭력배 및 마약사범 검거에도 힘썼다. 서울지검에 근무할 때는 배우 신은경씨의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8년 변호사를 개업한 후에는 당시에 생소한 분야였던 지식재산권과 정보통신(IT)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소프트웨어재산권보호위원회 고문 변호사와 전국PC방연합회 고문 변호사 등을 지냈다. 사이버 무료법률사무소 오세오월드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국내 인터넷 법률 상담의 시초 격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1999년 이회창 총재의 ‘젊은피 수혈’ 결과로 “합리적이고 개혁적 보수를 이루겠다”며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제주 공천을, 한나라당은 서울 공천을 보장하며 양쪽 모두 원희룡에게 구애를 펼쳤으나 결국 보수노선을 선택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같은 시기 입당한 인사다.

  • ◆ 비전과 과제

    ▲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18년 10월5일 제주 서귀포시 황우지해안 입구에서 태풍 콩레이 북상 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원희룡은 민선 7기 도정 목표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로 제시했다. 그는 제주도 난개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는데 이에 맞서 자연의 가치와 제주의 전통 문화를 보존해 나가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만큼 제주도 의회와 협치를 통해 원만하게 도정을 운영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원희룡은 취임사에서 “이념과 정당을 뛰어넘어 폭넓게 통합하겠다”며 협치에 의지를 나타났다.

    도의회는 더불어민주당 29명,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각 2명, 정의당 1명, 무소속 4명, 교육의원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원희룡은 7월 도의회와 상설정책협의회 운영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협치 제도화의 첫 발을 뗐다.

    장기적으로 보수진영에서 대선 도전이 가능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려면 중앙정치에서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여의도에서 벗어나 있어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도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도전의 발판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이미 탈당한 바른미래당으로 복당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유한국당,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최근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러브콜이 꾸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제주도지사 당선 직후 “제가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끝까지 ‘제주도민당’ 소속을 고수할 것”이라면서 “저는 권력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도민에 의지하고 도민만 바라보며 도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10월17일에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면담을 앞두고 “무소속 도지사로 도민에게 이미 약속했듯이 중앙정치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오로지 도정에만 전념할 것”이라며 입당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18일 김 위원장이 “정식으로 입당 요청은 하지 않겠지만 당의 혁신을 위해 고민을 같이 해 달라”고 하자 원희룡은 “도정에 전념하고 충실해야 할 입장으로 지금 제주의 여건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대답했다.

    당면한 과제로는 경찰의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조사가 있다. 재선 임기 초반부터 도정에 부담을 안기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로 조기에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도정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혐의가 드러난다면 도정은 물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던 비교적 깔끔한 이미지에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 ◆ 평가

    비교적 소신있는 정치행보로 진영을 넘어서 좋은 평가를 듣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운동권에서 전향해 기성 정치에 뛰어든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일하며 박근혜 당시 대표를 지지했던 경력이 있고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 입당과 바른미래당 탈당 후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열어놓는 등 좌우를 오가는 행보로 기회주의 성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86세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서울법대 82학번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 등이 동기다. 의원 시절인 2011년 동기인 조국 서울대 교수와 SBS 스페셜 보수 진보 논쟁에 참여해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와 부산 한진중공업 등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공감대와 이견을 확인한 일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올 정도로 가난한 형편이었다고 한다. 부친이 과자가게, 배추장사, 농약 판매, 신발가게, 책방 등 여러 사업을 했으나 잘 안 돼 이사만 10번 넘게 다녔다. 다만 부친이 책방을 하다 망해 원희룡은 집안에 쌓인 재고서적을 원없이 읽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1등을 놓쳐본 일이 없어 제주 지역에서 이미 유명인사였다. 인근 여고에서 그의 이름이 ‘원일용’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했다. 

    1982년 치러진 대입 학력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32점을 얻어 전국 수석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다만 당시 문과의 세계사 인문지리보다 이과의 수2와 물리 화학이 어렵게 출제돼 328점을 받은 이과수석이 진정한 수석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원희룡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입학하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막스 베버와 같은 법사회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에는 군부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에 참여했고 학교에서 유기정학을 받기도 하고 경찰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정학 기간에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시작해 3년 동안 활동했다. 본격적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공단에 위치한 경동산업(현 키친아트)에 일단 2900원의 미숙련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하기도 했으나 신분이 들통날 위기에 처해 7개월만에 그만뒀다.

    1989년 동구권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이후 사법시험 공부를 하며 2년 동안 잠적 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에 고향 제주에서는 원희룡이 자살했다거나 신학대학에 들어갔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4기)은 5등으로 수료했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고 그도 개신교인이다. 예장통합교단에 속해 있는 제주중문교회에서 협동안수집사를 맡고 있다. 부친은 제주중문교회를 50년간 섬긴 원로장로고 형은 예장통합 교단의 목사다. 원희룡은 종교적 이유로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라산신제 등의 집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라톤, 축구 등의 운동을 즐긴다. 여덟 차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적이 있으며 최고 기록은 2006년 세운 3시간59분43초다.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서브쓰리는 3시간 이내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으로 많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선망하는 목표다.

    IT·디지털기술 등에 익숙한 정치인 중 하나다. 변호사 시절부터 온라인 상담 사이트를 운영했고 스타크래프트, 카트라이더 등 게임을 즐겨했다.

    일찍부터 블로그를 잘 활용해 블로거 원희룡이라는 책도 냈다. 6·13 지방선거에서 e스포츠협회 제주지회 창설 등 e스포츠 활성화 공약을 냈고 제주도 블록체인 특구지정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8월30일 시도지사 간담회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특구지정을 직접 건의했다.

    2005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해 차세대 지도자(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됐다.

    영국 노예무역을 폐지시킨 윌리엄 윌버포스와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주도한 에이브러엄 링컨을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다. 국내 위인 중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

    좌우명은 진인사(盡人事)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 사건사고

    ▲ 원희룡 제주도지사.

    △선거법 위반 및 뇌물수수 혐의
    6·13 지방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직 제주도지사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2010년 우근민 전 지사 이후 8년만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은 2018년 9월27~28일 원희룡을 피의자신분으로 불러 공직선거법 위반 4건, 뇌물수수 1건 등 혐의를 조사했다.

    선거 때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희룡이 2014년 8월1일 제주도지사 취임 직후 서귀포시 모 골프장 특별회원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원희룡은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며 "도지사 취임 후 골프를 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검찰 고발을 진행했다. 경찰은 특별회원권에 뇌물수수 혐의, 반박 기자회견에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적용했다.

    또 원희룡은 2018년 5월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주도 난개발과 중국자본 투자에 문 후보와 우근민 전 지사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여기에도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았다. 5월24일 제주관광대학교에서 청년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것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를 받았다.

    원희룡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9월29일 귀가하면서 “앞으로 절차는 남아있지만 도민 여러분은 지나친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며 무혐의를 입증하는 데 자신감을 나타냈다.

    △비자림로 훼손
    2018년 8월2일부터 제주시 조천읍 대천동 사거리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비자림로 2.9㎞ 구간에서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삼나무숲길에 있는 삼나무 900여 그루를 베어내 경관 훼손 논란이 일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사 중단을 촉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오는 등 여론을 달구는 이슈로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제주도는 8월10일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원희룡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8월13일 복귀해 첫 일성으로 “아름다운 길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도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도민과 더 소통하고 더 지혜를 모아 비자림로를 아름다룬 생태도로로 만들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림로 확장은 원희룡의 공약인 제2공항 추진과 연계돼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다만 제주도는 제2공항이 거론되기 전인 2009년 비자림로 확장이 논의돼 2014년 예산이 편성됐다며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원희룡은 9월5일 도정질의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변명은 아닌데, 공사하면서 예산까지는 신경쓰지만 삼나무 베어내는것 까지 도지사가 도장 찍는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훼손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생태적으로도 가치를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도시건설국장에게 주문했다”며 “경관.산림.도로 등등 해서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해법이 뭔지 자문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제주도는 우회도로 건설과 한쪽방향만 확장하는 등의 대안을 놓고 검토중이며 10월 말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중 피습
    2018년 5월14일 제주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난입한 도민으로부터 계란 투척과 얼굴 가격을 당했다.

    김경배 제2공항 성산읍반대대책위 부위원장은 제주2공항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회가 끝나갈 무렵 단상으로 뛰어올라 원희룡에게 계란을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 등을 때렸다.

    원희룡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굳은 채 앉아 있었으며 옆자리에 있던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이 가해자를 제지했다. 가해자는 이 과정에서 준비한 흉기로 자해를 시도하다가 119구급대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김 부위원장은 2017년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42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등 원희룡의 제2공항정책에 반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이후 SNS를 통해 “다행히 저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걱정하실 만큼은 아니다”라며 “이런 극단적 방법을 써야했던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 그 분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서 쾌유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의 딸이 SNS에 “아빠가 이렇게까지 해서 욕을 먹고 정치를 해야하는지 정말 모르겠고 솔직한 마음으로 정계를 은퇴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실컷 욕을 하고 반대표를 던지고 비방하고 무슨 짓을 하셔도 좋지만 제발 몸만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원희룡은 5월16일 딸의 SNS 발언을 사과하고 병원에 있는 김 부위원장을 문병했다.

    ▲ 2006년 1월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해 큰절을 하고 있다.

    △전두환 세배 논란
    2007년 1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 큰절로 세배를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원희룡은 전 전 대통령을 포함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방문해 세배를 했다. 하지만 군부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던 원희룡이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한 사실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1월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이 있지만 대한민국 근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반복되는 역사를 치유하고 통합하자는 측면에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월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가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분노들을 자극한 점에 대해 정말 사과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원희룡은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 재직시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재자, 부정 축재자로서 민간인 학살 당사자로서 가졌던 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거나 찬양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폭행 사건
    사법연수생 시절 주취 폭행을 저질러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1993년 9월15일 동료 연수생들과 술을 마시고 길가에 방뇨를 하다가 이를 나무라는 주민을 집단폭행해 서울성북경찰서에서 입건 조사를 받았다. 원희룡 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정릉1동 파출소에 연행됐는데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며 전화와 책상 등 기물을 부수며 소란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은 이와 관련해 "노상 방뇨한 사실이 없는데 가게 주인이 오해를 했고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며 “나는 말싸움이나 몸싸움에는 가담을 하지 못했고 그냥 옆에 둘러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건 조사를 마치고 곧바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합의를 했다”며 “부끄러운 상처자국으로 생각하며 그때부터 내내 항상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고 해명했다.

  • ◆ 경력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해 수원지검, 여주지청, 부산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1998년 원희룡법률사무소를 개업해 지적재산권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1999년 법무법인 춘추에 합류했고 연말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 지역구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5년 한국지식정보산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8년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를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2009년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1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2014년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에 당선됐다.

    2018년 제38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로 재선했다.

    ◆ 학력

    ▲ 세 살 때 원희룡 제주도지사.

    1976년 중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중문중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제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뉴미디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14대째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집안에서 원응두, 김춘년씨 사이 2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배우자는 강윤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다.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82학번 동기로 제주향우회에서 만났다. 원희룡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강 교수가 서울대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1993년 결혼했다.

    딸이 둘 있으며 이름은 서정과 소영이다.

    ◆ 상훈

    2014년 자랑스런 한양 언론인상을 받았다.

    2015년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최고대상을 수상했다.

    2015~2017년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을 받았다.

    ◆ 기타

    2018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르면 17억6400만 원을 신고했다. 5억여 원 상당의 모친 소유 과수원 등이 포함돼 있다. 2006년 초선 의원 때 처음 공개한 재산 5억5345만 원보다 12억 원 가량 증가했다.

    어릴 적 리어카에 발가락이 끼는 사고를 당했는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후천적 기형이 됐다. 이 때문에 1985년 징병검사에서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

    우리들의 세기(2000),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2005), 블로거 원희룡(2010), 사랑의 정치(2010),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2014) 등의 책을 썼다. 주관식헌법(1998), 객관식헌법(1998),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2005), 수석합격 나도 할 수 있다(2010)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 ◆ 어록

    ▲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학생시절.

    “제1야당 대표의 제주방문과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할 까닭이 없다. 제주를 찾아오는 손님을 일부러 회피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래야할 이유도 없다. “정치인이 아닌 도지사 입장에서 제주의 산적한 현안을 풀기 위해선 여야 모두로부터 초당적 협력을 반드시 받아야할 상황이다. 찾아오는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제주의 현안해결을 위해 국회와 야당의 도움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다.” (2018/10/17,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면담을 앞두고)

    “남북 두 정상이 지난 20일 북쪽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올랐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남쪽 '민족의 영산' 한라산에서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한민족 공동번영을 위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를 고대한다.” (2018/09/21, 평양 정상회담 관련 메시지)

    “제주도민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서 일을 함에 있어서 제주도민을 중심으로 삼겠다. 어떠한 권력과 이념도,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도 도민 위에 있지 않다. 도민 모두의 공통의 가치와 요구를 최우선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도지사로서의 본분이다. 소속정당도 손잡은 정치세력도 없지만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가겠다.” (2018/07/02, 제주도지사 취임사)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대놓고 배척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제주도가 난민 부담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최소한의 난민규약에 따라 중앙정부와 협력해서 가급적 원만하게 대처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후유증 없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8/06/22, 뉴시스 인터뷰에서 예맨 난민신청자 관련)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으로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모두의 정치를 하셨던 그 정신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올린다. 비록 당은 달리했지만 동시대에 정치를 한 사람으로서 노무현의 정신을 실현하는 길에 저도 뜻을 함께 한다. 정치를 하는 동안 가장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하나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때 당론주의에 매몰돼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정치 초년병으로서 사려 깊지 못했던 일에 되돌아보며 반성의 마음을 다진다.” (2018/05/23,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를 맞아)

    “2018년은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도민과 함께 하는 행복특별자치도 제주를 만들어 나가겠다. 화해와 상생의 공존 공동체를 만들겠다.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 (2017/12/29, 2018년 신년사)

    “힘든 농사일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했다. 저는 천재라기보다는 노력형에 가깝다. 한 분야에서 산맥을 이루려면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시간과 관심을 집중한다면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2017/05/31, 제12회 제주포럼 중앙일보세션)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을 당했다. 국민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간판을 내리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오물을 쓴 모습이 국민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또 하나의 구태정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2016/11/13, 새누리당 비박계 비상시국회의)

    “저에게 국가 권력구조를 짤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 총장을 모시고 문 전 대표로 대변되는 야3당의 구체적인 고민을 취합해서 갈 수 있다. ‘원희룡 세대’가 나서 대연정, 권력분점,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 정치문화를 만들겠다. 젊은 세대인 안희정 충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과도 같이 가야 한다.” (2016/10/19,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최고 통치권자는 칸막이를 뛰어넘어 민심을 읽으면서 국민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된다. 결국 장관과 대통령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2015/06/23,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서 메르스 관련)

    “제주 신라호텔이 영업 정지라는 어려운 조치를 과감하게 결단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공익에 대한 책임과 고객 안전을 중시한다는 자세를 실천으로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신라호텔과 같은 대기업이 청정제주를 유지하고 지역경제를 회복하는데 적극 앞장서 달라.” (2015/06/22,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만나 메르스 대처에 사의를 표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부당한 폭력으로 군림할때, 변호인같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시대로 넘어설수 있었다. 국민의 압도적 동의로 건너온 민주화의 강을 거꾸로 돌릴수는 없다. 영화 변호인에서 지금의 분위기를 느끼는 관객이 많을수록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신호다.” (2013/12/26, 영화 변호인을 본 후 트위터에 올린 글)

    “대통령선거는 후보 중 한 사람을 당선시키는 것 뿐 만 아니라 나라를 이끌 방향과 그것을 책임질 세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크고 사회적인 대립과 갈등이 큰 지금 우리는 책임감 있게 변화를 주도할 정권이 필요하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한 말은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정치쇄신안을 확실히 추진할 것이라 믿는다.” (2012/11/26,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원을 선언하며)

    “계파의 차이를 녹여버리고 미래의 정권창출을 위한 대화합과 발전적 경쟁의 장을 열어가겠다. 내년 총선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총선 불출마를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지역구는 참신한 인재에게 양보하고 우리 당이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대선주자들과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누비겠다.” (2011/06/20,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이 달라져야 한다. 서울시정이 확 바뀌어야 한다. 시정의 제1목표는 시민의 행복이어야 한다. 저 원희룡, 현장으로 가겠다. 갈등이 있는 곳, 위험이 있는 곳, 시민들의 어려움이 있는 곳에 가겠다.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문제의 해법을 찾겠다. 시정의 우선순위를 일자리, 교육, 집 문제 해결에 두겠다. 일.교.집 시장이 되겠다.” (2010/03/07,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문)

    “특정 세력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최대한 걸러내는 데 나의 존재이유가 있다. 당내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지거나 불신의 틀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계파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프로그램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겠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자들도 가급적 빨리 뵙고 의견을 받아서 쇄신위를 출범하겠다.” (2009/05/11, 한나라당 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은 후 기자간담회에서)

    “X파일 사건의 본질은 음모론이 아닌 정경언 유착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X파일 내용의 전면 공개가 불가피하다.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해 공익적 내용, 국민적 의혹이 형성돼 있는 내용은 모두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진실을 직시하는데 고통이 따르지만 어두움은 빛으로 비춰야만 한다.” (2005/08/10,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보수의 가치와 그 출발점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다. 하지만 이 땅의 보수라고 자처하는 가짜 보수들은 멸공, 숭미와 같은 가짜 보수의 가치와 사상이 보수의 전부인 양 주장한다. 가짜 보수주의자들의 터무니 없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이 땅의 보수들은 모두 도매급으로 넘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또 욕을 먹는다. 이 땅의 가짜 보수주의자들과 토론해 많은 이들이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 드려야 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땅의 부모님들께 보수라고 손가락질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도록 해야 한다.” (2005/03/13,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에게 보수 토론회를 제안하며)

    “386은 불행한 세대였다. 나도 80년대 시대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국제법 전문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민족, 삶의 문제를 호흡하면서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 에너지는 항상 가슴 속에 남아 있고, 앞으로 제 직무 수행의 중심을 이룰 것이다.” (1999/03/01, 조선일보 인터뷰)

    “학생운동을 하느라 마음고생을 시켜드린 부모님께 작으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현 법조계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판검사 중 어느쪽에서 일하게 되든 양심과 정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1992/10/24, 동아일보 인터뷰)

    “우선 남이 앉아야 할 자리에 대신 앉은 염치없는 기분이 듭니다만 수험생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시 합격의 목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계신 수험생 각자의 그 의지와 분투에 경의와 공감을 느낍니다. 

    저는 행운이 따라서 합격했지만, 그 행운이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는 돌아갈 수 없게끔 돼있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꼭 이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만간 행운의 차례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행운이 여러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것을 맞아들일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랍니다.“ (1992년 사법시험 수석합격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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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댓글 1개

고지희  | (14.49.178.3)   2018-11-17 00:46:08
저에꿈은
지사님 이대통령이 대는겁니다
꿈은 이루고자 하는자에게는
어누구도막을수없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