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다급해진 문재인, 대기업과 혁신성장 동행으로 궤도 수정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름은 같은데 내용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정책이 1년여 만에 급격히 변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혁신성장에서 대기업 중심이 주도하는 혁신성장으로 성격이 바뀌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혁신성장정책의 중심에 플랫폼 경제를 놓고 있어 대기업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플랫폼은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여러 산업에서 필요한 인프라, 기술, 생태계를 의미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기차를 탈 때 오르내리는 플랫폼처럼 모든 경제와 산업분야에서 필요한 것이 플랫폼 경제”라며 “지금 투자를 하지 않으면 뒤처지나 한발 앞서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13일 열린 혁신성장 관계 장관회의에서 플랫폼 경제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해 플랫폼 경제 육성의 의지를 구체화했다.

플랫폼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실패했을 때 위험도 크다. 정부는 개별기업 차원의 투자는 어렵고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바꿔 말하면 플랫폼 조성에 참여하는 기업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에 동행할 수 있을 정도의 대기업이 아니면 어렵다. 플랫폼 경제가 대기업 중심의 혁신성장 전략이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번에 발표된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에는 플랫폼 경제 외에도 대기업을 향한 적극적 지원 의지가 담겨있다.

정부는 2019년에만 플랫폼 경제 구현을 위한 전략투자분야에 1조5천억 원, 혁신성장 8대 선도사업에 3조5천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대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대거 포함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수소차·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분야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9년 미래 자동차분야에 760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수소차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전략투자분야의 수소경제 투자계획을 합하면 8700억 원에 이른다.

삼성그룹이 힘을 쏟고 있는 바이오·헬스분야는 새로이 8대 선도사업에 포함됐는데 2019년 3500억 원의 투자가 예고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6일 김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확대 지원을 약속한 스마트공장분야 투자액은 1조300억 원이다. 8대 선도사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대기업을 향한 정부의 구애는 명확하다. 김동연 부총리는 13일 혁신성장 관계 장관회의를 마친 뒤 “혁신성장의 길에 대기업도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LG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삼성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혁신성장 관계 장관회의에서 “재벌대기업이 혁신을 추진할 때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되며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한다. 김 부총리와 만난 기업들은 물론 12일 한화그룹이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기업들이 내놓은 투자계획 규모는 모두 330조, 고용 계획 규모는 19만 명에 이른다.

다만 혁신성장 정책이 대기업 위주로 추진되면서 마찬가지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이었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유사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혁신성장을 내세웠으나 당초 방점은 중소기업과 창업·벤처기업에 찍혀 있었다. 그러면서 이전 정부의 창조경제와 분명하게 차별화를 꾀했다.

2017년 7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중소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혁신성장 정책을 제시했다. 11월에는 혁신성장정책의 구체적 실행방안으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마련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혁신성장정책이 중소·벤처기업에만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김 부총리가 “혁신성장에서 대기업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고용·분배 지표 등이 악화하고 소득주도성장정책에도 한계가 나타나면서 혁신성장정책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가계소득 동향 점검회의에서 “소득 분배 악화는 매우 아픈 지점”이라며 경제정책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재정 전략회의에서도 “혁신성장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 분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