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오너의 민낯과 국적항공사의 품격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은 날개가 있으면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다는 반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날개에 상처를 입고 추락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항공사로서 고공비상해왔던 만큼 낙차가 유독 커 보인다. 

시작은 달랐지만 두 항공사가 이미지 추락을 겪고 있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양대 국적항공사로서 품격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민낯이, 그것도 다름 아닌 내부 직원들에 의해 폭로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채팅방에는 기내식 대란 사태 관련 전말은 물론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업무 강요, 비리, 추문에 이르기까지 비난과 고발, 폭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박삼구 회장에게 아시아항공 승무원들이 안기거나 사랑한다고 고백하도록 강요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런 제보는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에도 터져 나왔다가 아시아나항공 측의 발 빠른 사과로 수그러들었다 채팅방 개설을 계기로 다시 재점화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주말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연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회장님에게 과잉 충성’을 요구당했다는 고발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9일 한 라디오쇼에 출연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은 교육생들이 박 회장의 교육현장 때마다 ‘찬양가’를 불러야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그게 매달 반복되었다. 회장님의 입맛에 맞게 저희가 노래를 개사를 하고 ‘너는 울고, 너는 안기고, 너희는 달려가서 팔짱끼어라’ 지시를 들으면서 정상적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에서 물벼락 갑횡포로 시작해 총수 일가의 폭언과 폭행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온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이다. 서비스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항공사 내부의 낯뜨겁고 민망하기까지 한 비정상적 실태가 차마 이 지경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사실이라면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버젓이 기업 내부에서 자행돼왔단 얘기다. 21세기 글로벌기업의 혁신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적항공사로서 높은 위상을 유지해왔던 것을 살피면 최근 몇 달 사이 일련의 비리 의혹과 추문은 충격 이상의 배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총수가 있는 국내 재벌기업 내부도 갑질에 관한 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적항공사는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 ‘KOREAN AIR’를 달고 매일 수백 편의 항공기가 세계 곳곳을 날고 있다. 날아다니며 국위 선양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당시에도 외신이 대서특필했던 것도 대한민국 국적항공사란 점이 컸다. 이번 갑횡포 논란에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대한’이란 두 글자를 떼고 ‘한진’으로 개명하란 요구가 빗발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서 국적항공사 총수는 대기업 서열과 무관하게 높은 대접을 받곤 한다. 국내는 물론 VIP급 외빈 방문에 제일선에서 의전을 도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조양호 회장도 ‘민간 외교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에서 최고 등급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수상했을 정도다. 

박삼구 회장은 재계에서 둘째라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마당발’로 유명하다. 박 회장의 정관계 인맥은 대기업 총수들 가운데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주석 등 중국 내 최고 지도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다 국적항공사 총수로 국내 정재계는 물론 글로벌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공업은 대표적 정부 허가산업이다. 국토교통부가 전권을 쥐고 아무에게나 사업권을 내주지 않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총수 일가는 ‘그들만의 왕국’을 짓고 통제받지 않은 권력을 맘껏 휘둘러왔던 셈인데 이번에 드러난 두 항공사의 민낯은 추하다 못해 ‘급’이 너무 떨어져 보인다.  

이번 사태가 경영진 퇴진으로 귀결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지만 분명한 점은 국적항공사 오너로서 품격을 되찾는 데 뼈아픈 자성은 물론 확고한 외부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물의에 책임’ 운운으로 끝난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추락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얘야, 하늘을 나는 일은 쉽게 보이지만 어려운 일이란다. 무엇보다도 적당한 높이를 유지해야 해. 왜냐하면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습기 때문에 날개가 무거워져서 날 수가 없고, 또 너무 높이 날면 해의 열기에 밀랍이 녹을 거야.“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지만 태양에 밀랍으로 된 날개가 녹아내려 죽을 수도 있다며 오만과 탐욕을 버리라고 했다. 물론 이카로스는 이런 경고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스 신화가 주는 교훈은 언제나 옳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