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승,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사업 톱2 향해 달려간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정은승 삼성전자 사장이 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를 맡은 지도 5월12일이면 만 1년이 된다. 

성적표는 조금 아쉽다. 취임 초기부터 점유율을 3배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우고 달렸지만 대만 TSMC의 물량공세에 밀려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 사장은 업계 2위에 올라서겠다는 각오로 기술력 차별화에 힘을 쏟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는 4월 말부터 설계와 공정개발, 품질, 통계·빅데이터 모든 전 분야에 걸쳐 경력직을 대규모로 채용하고 있다. 

정 사장이 올해 매출을 지난해 46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늘리고 업계 2위로 자리잡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놓은 만큼 인재 확보에 바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1분기에만 반도체사업에서 11조5500억 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인텔을 밀어내고 반도체업계 왕좌를 차지하기도 했다. 

메모리반도체사업은 점유율 40%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비메모리반도체사업은 선두에서 한참 물러나 있다. 반도체사업은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에서 비중 74%를 차지하는 대들보인데 여기서 안정적 사업구조를 확보하려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반도체사업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 사장은 이런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DS(부품)사업부문에서 위탁생산사업팀을 떼어내 독립사업부로 격상하면서 사업부장으로 선임됐다. 그 전에는 반도체연구소장으로 5년을 일했다. 

30년 동안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시스템반도체사업 초기부터 기술 개발에 참여한 '산 증인'으로 꼽힌다. 2016년 '반도체의 날'에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D램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유율 확대는 말처럼 간단치 않다.

반도체 위탁생산시장에서 지난해말 매출 기준으로 대만 TSMC는 점유율 50.41%로 압도적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 뒤로 글로벌파운드리(9.90%), UMC(8.16%), 삼성전자(6.72%), SMIC(4.98%) 순이다. 삼성전자는 4위에 그친다.

지난해에 업계 2위인 글로벌파운드리 매출은 전년보다 10%, 3위 UMC는 7% 늘어났지만 삼성전자 위탁생산사업부는 4% 증가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최대 고객사인 퀄컴의 물량을 TSMC에 뺏기면서 성장세가 더뎌졌다.

퀄컴의 ‘서버용 칩 사업 철수설’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점은 정 사장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외신들은 퀄컴이 비용 절감을 위해 서버칩 사업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서버용 칩 사업부의 연구개발 인력을 줄였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퀄컴이 최근 싱가포르의 경쟁사인 브로드컴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기 위해 연간 비용에서 10억 달러를 절감하겠다고 발표한 점을 감안하면 이 사업을 실제로 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퀄컴은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제조를 맡은 서버용 칩 '센트릭2400'을 출시했는데 삼성전자는 이 수주를 놓칠 수도 있다. 서버용 칩 위탁생산은 수익성이 좋고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일감이다.

정 사장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전용 설비에 기대가 크다. 삼성전자는 하반기에 7나노 공정 제품의 시험 양산을 시작하는데 여기에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적용한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미세한 파장을 광원으로 사용해 초미세 회로를 한 번에 그릴 수 있다. TSMC는 이미 상반기에 7나노 공정을 활용한 양산을 시작했지만 극자외선 노광장비의 적용은 삼성전자가 한 발 빠르다.

더욱이 업계 2위인 글로벌파운드리 등 경쟁회사들은 내년 이후에나 7나노 공정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위탁생산시장에서 고부가 제품들은 삼성전자와 TSMC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가상화폐(암호화폐) 열풍도 정 사장에게 반가운 일이다. 

최근 세계 최대의 가상화폐 채굴업체 비트메인은 이더리움 채굴을 위한 주문자 특화 반도체(ASIC)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비트메인은 자체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기 때문에 위탁생산업체에 맡겨야 한다. 가상화폐 채굴용 주문자 특화 반도체는 10나노 이하의 높은 미세화 공정이 필요한데 이런 설비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만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7나노 EUV 공정은 10나노 2세대 공정보다 전력효율은 10% 향상되고 면적은 10% 축소돼 가상화폐 채굴 등에 필요한 고성능 프로세서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