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재용 TSMC 추격 위해 일본기업과 협력, 패키징 기술 격차 줄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 등과 함께 2023년 2월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일본 요코하마에 반도체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반도체패키징 시설을 구축할 계획을 세우는 등 일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의 지정학적인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삼성전자도 일본기업과 협력할 필요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서 한국, 대만에 완전히 밀렸지만 여전히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에서는 높은 경쟁력 갖춰 반도체 패키징 거점으로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2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일본에 반도체패키징 시설을 구축함에 따라 다양한 사업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이토 다쓰로 미쓰비시연구소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일본 언론 재팬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일본 투자를 두고 “한일 관계 개선의 결과라기보다는 삼성전자가 일본 업체와의 기술 협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본다”며 “일본의 반도체 소재 및 장비 제조업체들은 삼성전자가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일본 내 반도체 연구개발 거점인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저팬(DSJR)’을 요코하마에 설립했다. 또 시설 안에 약 300억 엔을 들여 반도체패키징 시설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징 시설은 올해 건설을 시작해 2025년부터 가동될 것으로 전망되며 투자금액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일본 정부로부터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강국이었다.

하지만 점차 반도체생산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에 완전히 밀려났고 현재는 5나노 이하의 첨단반도체를 직접 생산할 능력조차 없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반도체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해외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은 글로벌 반도체기업에게 매력적인 투자 지역이다. 

반도체 생산 경쟁력은 없어진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쪽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패키지 기판, 감광재, 접착제와 같은 반도체 소재분야에 있어서는 미국보다도 경쟁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만 TSMC가 오래전부터 일본에 연구개발거점을 설치하고 제조공장을 확대하는 것도 소부장 업체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동혁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TSMC-일본 반도체산업 제휴의 산업적 의미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TSMC이 주요 고객사도 없는 일본에서 반도체 연구개발에 나서는 것은 후공정(패키징)에서 재료나 가공 방법의 정교성이 뛰어난 일본의 기술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일본은 반도체에 필요한 고도의 요소기술력(패키지 기판, 절단, 조립, 봉지재, 감광재, 배선, 방열, 연마 등)을 갖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반도체 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각광받는 패키징 분야에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패키징은 반도체를 전자기기에 맞는 형태로 제작하는 공정으로 전기 신호가 흐르는 통로를 만들고 외형을 가공해 제품화하는 필수 단계다. 그동안 반도체 성능은 설계와 생산 기술력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에 패키징은 단순히 제품을 출하하기 위한 포장 작업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고성능·저전력 특성을 갖춘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MARC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 시장 규모는 2021년 297억 달러(약 38조 원)에서 2027년 479억2천만 달러(약 62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이재용 TSMC 추격 위해 일본기업과 협력, 패키징 기술 격차 줄인다

▲ 삼성전자 요코하마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게다가 미중 반도체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요한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이 오랜 기간 ‘세계의 공장’으로 활용했던 중국에서 벗어나 일본을 반도체 생산기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자본은 이미 중국(홍콩 포함)에서 급격히 빠져나가 일본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이 자존심을 되찾고 있다”며 “일본은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들이 일본 투자를 통해 탈중국을 표방하면서도 중국 시장에 간접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쑤저우에 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다.

하지만 장비반입 등에 제한이 생기면서 중국에서 첨단패키징 공정을 진행하기는 어려워졌다. 이를 고려하면 향후 첨단패키징 작업은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2월 삼성전자 천안·온양캠퍼스를 찾아 고대역폭메모리(HBM), 웨이퍼 레벨 패키지(WLP)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등 패키징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행보를 보여줬다.

또 반도체부문 어드밴스드패키징(AVP)사업팀 부사장으로 TSMC 출신의 린징청을 영입하기도 했다. 린징청 부사장은 TSMC에서 3차원 패키징 기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에 더해 이 회장이 일본 반도체 소부장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면 삼성전자가 TSMC와 패키징 기술격차를 좁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광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장은 2월에 열린 ‘초격차 반도체 포스트 팹 발전전략 포럼’ 출범식에서 “팹리스부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후공정 기업까지 강력한 생태계를 앞세운 대만 패키징 기술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있다”라며 “파운드리와 패키징 기업 사이의 기술 개발 협업을 촉진켜야 한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