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DB하이텍이 팹리스(반도체설계) 사업의 분할을 추진하며 주주총회에 이를 위한 물적분할 안건을 올렸지만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맞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김남호 DB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그룹 지배구조 안정화를 위해 물적분할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DB하이텍 기업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하이텍 팹리스 물적분할 재도전도 불투명, 김남호 소액주주 반발 직면

김남호 DB그룹 회장(사진)이 물적분할을 통한 DB하이텍의 팹리스 사업 분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을 맞고 있다.


김 회장 측이 소액주주들의 반대를 뚫고 안건을 가결시킬 만큼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만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하는 물적분할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1일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에 따르면 29일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저지하기 위해 소액주주 지분 확대는 물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조지슨’을 선임하기도 했다. 

조지슨은 외국인 주주들로 하여금 물적분할 반대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소액주주연대는 조지슨이 외국인 주주를 설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영문자료와 유튜브 영상 등을 만들고 있다.   

소액주주연대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를 설득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적분할 반대 설명자료를 국민연금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상목 주주연대 대표는 “조지슨을 통해 미지의 영역이었던 외국인 주주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회사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고 국내기관과 개인투자자들에게도 각종 자료와 영상을 제공해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가겠다”며 “국내 기관과 외국인들이 물적분할에 관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을 정중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이 DB하이텍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것은 팹리스 부문이 물적분할을 통해 분사하게 되면 그 사업 가치가 DB하이텍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아 기업가치가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통상 물적분할을 추진하면 신설 자회사 지분을 갖게 되는 모회사의 주가는 할인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물적분할은 최근 주주들의 저항을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DB하이텍은 지난해 물적분할을 추진했지만 주주들이 반발하자 포기한 바 있다.  

DB하이텍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신설되는 자회사 DB팹리스(가칭)을 상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만약 분할한 지 5년 내 상장하는 경우 상장 진행 여부를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승인을 얻도록 하는 조건도 달아뒀다. 

여기에 주당 배당금을 지난해의 3배 가량인 1300원으로 늘리고 1천억 원 규모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는 등 주주이익 제고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소액주주들은 이런 회사의 조치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5년 이내 상장을 까다롭게 한 회사 측 조건이 오히려 5년 이후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목 대표는 “DB하이텍 측에 물적분할 뒤 5년이 지나도 상장을 하지 않을 것이란 조건을 분명히 못박을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는 5년 뒤 상장을 하겠다는 확실한 신호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더구나 소액주주들은 DB하이텍의 물적분할 추진하는 데는 DB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이 얽혀 있다고 보고 있다.

DB하이텍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DB(DB inc)는 자회사인 DB하이텍의 가치가 상승하면 법적으로 지주사 전환 요건을 갖춰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별도기준 자산 총액이 5천억 원을 넘고 자회사 지분가액의 합계가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지주사로 전환되고 요건을 갖춰야 한다.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DB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12.4%에 불과하다. 

DB하이텍 시가총액이 2조 원을 뛰어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DB가 지주사 전환 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30%까지 늘리려면 대략 3500억 원 정도 현금이 들어간다. 현재로선 DB가 이 재원을 마련할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배구조 측면만 놓고 볼 때 DB하이텍 주가가 오르면 DB그룹이 여러모로 까다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DB하이텍 주가가 낮게 유지되면 지주사로서 법적 의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설령 지주사 전환에 따른 요건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추가 지분 확보가 한결 수월해진다.

DB는 2022년 6월까지만 해도 지주사 요건에 해당됐으나 DB하이텍 주가 하락으로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 기준으로 지주사 요건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이 때문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DB그룹이 의도적으로 DB하이텍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한다고 의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DB하이텍 주식소유 현황을 보면 지주사 격인 DB가 12.4%를 보유하며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여기에 김남호 회장의 아버지 김준기 전 회장(3.6%)를 비롯해 DB그룹 관계사와 임직원 지분을 합친 우호지분이 모두 17.8%에 머문다.

주주연대에 따르면 현재 사전 전자투표를 통해 부결 의사를 확실히 표시한 소액주주 지분율은 3% 정도로 집계된다. 

이상목 주주연대 대표는 “주주총회 당일 직접 부결 의사를 표시할 지분율까지 더하면 소액주주 5~10%가 부결 의사에 동참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여기에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는 작업을 하는 만큼 물적분할이 부결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적분할은 상법상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특별결의 사안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2분의 1 이상과 발해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는 보통결의보다 더 까다로운 표결 조건을 지닌다.  

이 때문에 주주연대의 외국인·기관 설득이 성과를 거둔다면 물적분할이 저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로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도 안건 통과를 가를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DB하이텍 지분 8.3% 가량을 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DB하이텍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주장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곤란하다”며 “당사는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