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일본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산업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일본언론의 비판이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17일 사설을 통해 “반도체업계의 경쟁은 치열하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금만 퍼붓는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일본언론 "일본정부 주도의 반도체 기업 설립해도 성공 가능성 희박"

▲ 일본정부의 국책 반도체사업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판이 일본언론으로부터 나왔다. 사진은 일본 경제산업성 건물 < 도쿄신문 >


일본에서는 최근 ‘라피다스(Rapidus)’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라틴어로 ‘빠르다’는 뜻이다. 첨단 생산역량을 갖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로 발돋움해 2027년부터 일본에서 2나노 공정 반도체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기에 토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미츠비시UFJ은행 등 8개 거대기업이 지원한다.

현재 통용되는 최첨단 반도체는 3나노 공정에서 제작된다. 1나노는 10억 분의 1미터를 뜻하며 숫자가 작아질수록 회로가 미세해져 성능이 좋아진다. 반면 일본의 반도체 생산 기술력은 현재 40나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정부는 줄곧 반도체산업을 경제안보적 관점에서 바라봐 왔다. 대부분의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부품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1년 6월 국가차원의 반도체전략을 수립하고 먼저 첨단 생산기반을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대만 TSMC가 일본 쿠마모토현에 공장을 건설하는 데 4760억 엔의 보조금을 투입하기로 2022년 6월 결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022년 7월에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 경제부처가 협의해 첨단생산기술을 공동 연구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미국 IBM과 도쿄대학교 등이 연구협력할 거점을 일본정부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라피다스에도 일본정부가 깊이 관여돼 있다. 일본정부는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된 최첨단 반도체를 라피다스를 통해 양산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라피다스에 700억 엔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에선 이런 일본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정책을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TSMC는 올해만 5조 엔 규모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는데 토요타 등 8개 회사가 라피다스에 초기 투자하는 금액은 73억 엔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이마저도 기업들의 ‘눈치보기’였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라피다스의 사업전망이 그리 밝지 못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부의 부푼 꿈에 미미한 수준으로 투자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라피다스가 생산할 반도체는 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탑재된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들의 생산기반은 이미 일본에서 거의 종적을 감췄다.

또 일본정부의 반도체프로젝트는 이미 실패한 전력이 있다. 1999년 일본정부 주도 아래 여러 메모리반도체 회사가 모여 설립한 엘피다메모리는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현재 미국기업이 인수했다.

2010년에 미츠비시전기 등 3사가 세운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도 2012년에 경영난에 빠져 일본정부가 세금을 들여 구제한 적이 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기술력은 길게는 20년 정도 뒤처져 있으므로 정부 주도의 단발성 프로젝트로는 최첨단기술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며 “차라리 민간기업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게다가 라피다스가 새 공장을 짓는 데만 5조 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신문은 국민들이 물가상승으로 고통 받고 고령화로 인해 국고가 메마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