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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 2022-11-08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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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는 정의당 대표다.

정의당은 낮은 지지율을 보이며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정미는 당을 재건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퇴행을 막고 거대 양당 체제를 바꾸는 정치제도 개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966년 2월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성공회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NGO대학원에서 정치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를 2년 다니고 중퇴해 노동운동에 입문했다. 민족해방(NL)계열 노동운동에 매진하다 민주노동당 창당과 함께 정계에 발을 디뎠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으로 시작해 통합진보당 최고위원,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환경노동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위원, 탄핵소추 위원을 맡았고, 노동자와 소수자의 대변인 역할에 주력해왔다.

제19대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전략본부장으로 활약하며 심 후보가 역대 진보정당 대선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6.17%)을 얻도록 이끌었다.

2017년 '여성, 청년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바꾸는 정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했다.

당대표 임기를 마친 뒤 3년여 만에 ‘재창당’이라는 과제를 안고 2022년 다시 한 번 당대표를 맡게 됐다. 

별명은 이솝찐빵이다. 이솝찐빵은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찐빵인데 미소와 뺨이 그 캐릭터와 닮아 붙은 별명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정의당 대표 선출
이정미는 2022년 10월28일 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정미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 선거 결선투표에서 전체 8842표 가운데 5426표(63.05%)를 얻어 경쟁자 김윤기 후보를 누르고 당대표에 당선됐다.

앞서 2022년 10월19일 투표에서는 이정미가 과반에 미달하는 49.91%의 득표율에 그쳐 결선투표가 실시됐다.

이정미는 대표 당선 소감에서 “어렵고 고된 일에 언제나 제가 제일 앞줄에 서 있겠다”며 "2년 동안 정의당을 일으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는 소외되고 배제된 시민의 곁을 지키며 싸우는 것이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했다.

당 대표로서 첫 행보로 10월29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과 공장사고로 목숨을 잃은 SPC 본사 앞 파리바게뜨 노동조합 농성장을 잇달아 방문했다.

이정미는 신당역에서 스토킹 살인 재발 방지를 강조하며 “우리의 진정한 애도는 고인을 살려내지 못한 근무환경과 근무형태를 고쳐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노조 농성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파리바게뜨 불매 운동은 노동자의 삶을 단순한 기계로 여기는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노로 표출된 것”이라며 “파리바게뜨 노조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는 2017년 7월부터 2년간 대표직을 수행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정의당 대표를 맡게 됐다.

이정미는 2017년 7월11일 전국동시 당직선거에서 56.0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박원석 후보(43.95%)를 제치고 당대표를 맡은 바 있다.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22년 10월28일 당선이 확정된 뒤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시장에 출마했으나 존재감 보이지 못하고 낙선
이정미는 2022년 6월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인천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정미는 2022년 4월19일 인천시의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대개조의 역사를 인천에서부터 새롭게 써가겠다”며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인천 최초의 여성 시장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이정미는 핵심 공약으로 △위기에 강한 도시 인천 △돌봄특별도시 인천 △녹색문화도시 인천 등을 제시했다.

이정미는 박남춘 인천시장이 재원 마련이 어려워 포기한 제2인천의료원 설립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만 경실련은 이정미의 공약에 대해 구체적 실행계획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선거 과정에서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가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정미는 정의당만의 비전과 가치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며 단일화에 선을 그었다.

개표 결과 이정미는 3.17% 득표율을 보이며 유정복, 박남춘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이정미의 특표율은 2020년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출마해 얻었던 득표율(18.35%)에 훨씬 못 미쳤다.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탈락
이정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에게 밀려 최종후보가 되지 못했다.

이정미는 2021년 8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제 폐지와 의원내각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양당 중심 ‘낡은 공화국’의 반복은 대통령 제도라는 사생결단식 낡은 권력체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도입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밝혔다.

이정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에 경험한 우리 여성들의 배신감을 잘 알고 있다”며 “사회적 혐오와 차별, 폭력에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차별금지법 없는 세상은 막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정미는 2021년 10월12일 열린 정의당 대선 후보 결선투표에서 48.88%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쳐 51.12%를 득표한 심상정 의원에게 밀려 탈락했다.

이정미는 경선에서 패배한 뒤 “오늘 낙선했지만 진보정치의 지문을 새로 새기겠다는 의지를 가져가겠다”며 “집권 정의당 심상정정부를 만드는 데 똘똘 뭉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미는 비록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으나 진보정치의 대표 인물인 심상정과의 대결에서 결선투표까지 간 데 이어 결선투표에서도 크지 않은 득표율 차이를 보여 정의당의 미래를 이끌 인물로 각인됐다.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018년 12월1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제 개혁 합의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단식농성
이정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끌어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로 지지율에 비해 의석이 많지 않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에 유리하다.

이정미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함께 2018년 12월7일부터 15일까지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초 정의당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 함께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 개편을 연계해 처리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나머지 정당들을 배제한 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에 반발해 이정미는 손학규 대표와 함께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러자 여야 5당 원내대표는 12월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2019년 1월 임시국회에서 선거제도 관련법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정미는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자 12월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식이 해제되자마자 다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정의당과 바른정당 등의 투쟁 끝에 국회는 2019년 12월27일 본회의를 열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영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자유한국당이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여야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제출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개정안에는 기존 국회의원 의석 수(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를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됐다.

문재인 정부에 협력과 비판
이정미는 정의당 대표를 맡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협력을 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체로 대북 평화 프로세스에는 협조하면서 고용노동 정책에는 비판을 가했다.

이정미는 2018년 12월24일 상무위원회에서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사용자 의견을 일방적으로 듣고 (개정안을) 수정하려는 것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넘어 최저임금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같은 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던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여러 가지 노동개혁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의당이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정미는 “정의당은 촛불정부인 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며 “촛불시민의 요구들이 제대로 해결 안 되고 머뭇거릴 때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제대로 잘 갈 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일관된 태도가 바뀐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 이정미문재인 정부 초기에 인사와 사드 배치 등을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월15일 '기업인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마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기업인들을 만난 것도 비판했다.

이정미는 기업인과의 대화에 관해 "시점과 형식에서 오해의 소지가 큰 만남"이라며 "국정농단 핵심 피의자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초대됐는데 이런 식의 스킨십이 계속되면 기업에 '범죄를 저질러도 투자만 많이 하면 괜찮다'는 잘못된 확신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2019년 5월9일에는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노동제도 개악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비판했다.

당 대표 임기를 끝내기 직전인 2019년 7월10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이 확대되고 있다"며 "지금의 민주당은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당내 일부 진보 인사들을 ‘알리바이’ 삼아 진보를 과잉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정미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실패를 짚으며 다주택자 임대소득 과세 강화와 선분양제 폐지를 주장했다. 또 확장재정을 그린뉴딜과 복지정책에 투입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정미는 2018년 9월 18~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함께 동행했다. 2005년 민주노동당이 북한 조선사회민주당과의 정당 사이 교류 차원에서 방북한 지 13년 만이었다.

이정미는 방북 후 10월1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남북 의회의 판문점 선언 동시 비준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회 연설 등을 제안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아쉬운 성과
이정미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이정미는 2017년 9월 지방선거 기획단을 출범시키며 지방선거 승리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촛불정국 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아진 만큼 적지 않은 기대감이 있었다.

선거 결과 정의당에서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26명이 당선됐다. 이 가운데 비례대표는 광역의원 10명, 기초의원 9명이었다. 광역 비례선거구 가운데 정의당이 10% 이상 지지율을 얻은 곳이 많았고, 지지율이 20%대에 도달한 곳도 나왔다. 광역 비례선거 합산 득표율은 8.97%였다.

하지만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에는 정의당이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해 진보정당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의당 후보는 어느 지역에서도 경합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 크게 밀렸고,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원외 정당인 녹색당 후보에게도 뒤졌다.

다만 정의당은 지방선거 선전을 바탕으로 지방선거 이후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 지지율이 6월 말 10.1%를 기록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가 됐고, 8월 초에는 14%까지 올랐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국당을 제치고 지지율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2022년 6월1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두었다.

정의당은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정당 득표율이 4%에 그쳤다. 191명의 출마자 가운데 기초의원 7명, 광역의원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쳤다.

△소수자 대변인
이정미는 여성, 청년,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왔다.

이정미는 2018년 9월7일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노회찬 전 의원 추모 문화제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더 따뜻하게 보듬는 진보 정치가 되어달라는 뜻, 더 크고 강한 정당이 되어달라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7년 6월15일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정의당이 여성, 청년 등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을 바꾸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국 정치의 주류를 교체하겠다”며 “여성, 청년, 비정규직의 노동을 대변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당 안의 정당 ‘청년정의당’을 건설하겠다. 청년정치에 더 이상 ‘나중에’는 없다”며 “당으로부터 준독립된 청년정의당에 과감히 자리와 재정을 내주겠다”고 했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정미는 2017년 7월15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퀴어문화축제는 국내에 살고 있는 내·외국인 성소수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행사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며 “태어날 때부터 성 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 찍히고 범죄국민으로 낙인 찍히는 이런 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첫발”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당대표라고 규정했다.

그는 당대표에 선출된 뒤 2017년 7월24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의당이 여성주의 가치를 포기했다는 비판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페미니스트 당 대표가 되겠다"며 "성평등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더 강화되어야 할 가치"라고 답했다.

다만 이정미는 자신이 말한 '페미니스트 당 대표'라는 것은 "대중화된 방식으로 여성주의와 여성의 지지를 얻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대중들 사이에 성차별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한 만큼 정의당이 그런 인식을 제대로 대변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심상정 대선캠프 전략기획본부장
이정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정미는 심 후보가 사용할 메시지 작성, 여론조사 분석, 타깃 설정, 유세 동선 짜기 등을 맡았다. 심 후보가 기성 정치인과 달리 소신과 일관성 있는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힘썼다.

이정미는 정치공학에 급급하기보다 정책과 비전을 내세워 진보 지지층을 공략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에는 비슷한 정책 성향을 보인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정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문재인 후보의 2중대가 아니다”며 대선 완주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심 후보는 5월9일 대선 결과 6.17%를 득표해 5위에 올랐다. 4위인 유승민 후보(6.76%)와는 19만여 표 차이였다. 광주, 인천, 울산, 대전, 세종, 경기, 충남, 충북, 전남, 전북, 제주 등의 지역에서는 유 후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심 후보가 역대 진보정당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얻는 데 이정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3전4기로 국회 진출과 의정활동
이정미는 2번의 낙선과 1번의 중도사퇴 끝에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하지만 비례 순번 15번이라는 낮은 순서에 배정받아 낙선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13.3%를 득표해 8명의 비례 당선자를 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서울 영등포갑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4.17%의 저조한 득표율로 전여옥 한나라당 후보(43.75%), 김영주 통합민주당 후보(42.53%)는 물론 한경남 친박연대 후보(8.80%)에게도 뒤진 4위에 그쳤다.

2014년 7월 열린 19대 재보궐 선거 때 수원병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중도사퇴했다. 하지만 손학규 후보는 2위로 낙선해 단일화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정의당은 7.23%를 득표해 4명의 비례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정미는 20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주로 활동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랜드그룹의 외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애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강요한 열정페이,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이 만연한 게임업계 노동환경, 대기업 SPC 계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 및 임금꺾기 등을 폭로하며 노동환경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정미는 2018년 후반기 국회 원구성 과정에서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되고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로 배치됐다.

이정미는 “애초에 정의당을 더 이상 법안소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라며 “이번 과정의 불합리성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시 생각해달라고 말했으나 소위 구성은 변경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
대학생 시절 학교 선배에게서 들은 전태일 노동자의 생애가 이정미를 노동운동가의 길로 인도했다.

1988년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영원통신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사용자 측과의 단체교섭 과정에서 해고된 후 앞에 나서서 운동을 이끌기보다는 노조 결성을 위한 교육과 지원에 힘쓰는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주로 민족해방(NL)계열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조직국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 몸담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 가입해 최고위원, 대변인 등으로 활동했다. 2012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에도 합류해 대변인과 최고위원 등을 맡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로 분열하자 천호선 최고위원과 함께 탈당했다. 이어 탈당한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정미는 1기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맡았다.

비전과 과제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 2022년 10월10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 후보(가장 왼쪽)가 정의당 당직선거 수도권 전국순회합동유세에서 김윤기, 조성주, 이동영. 정호진 등 다른 대표 후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재창당’이다. 정의당은 2022년 9월17일 ‘재창당 결의안’을 발표하고 당명과 당헌·당규 개정에 나서기로 한 바 있다. 

이정미는 ‘민주당 2중대’ 등으로 불리는 정의당의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정미는 당 대표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당과의 차별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의당이 뭘 하는 정당인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며 “양당의 진영논리를 좇아가는 정의당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의 노선이 젠더 이슈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정의당은 노동자를 위한 정당’임을 강조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미는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당직 선거를 하는 와중에도 일터에서는 사람들이 죽었고 해고 노동자는 평생 감당할 수 없는 손배소에 시달렸다”며 “어떤 노동자는 천막에서 끼니를 굶어가며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는데 그들의 곁에 서서 싸우는 것이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정의당이 교섭단체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을 설득해 선거제도 개편을 이뤄내야 한다.

이정미는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배분하고 지역구 당선인 숫자가 배분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의석을 채우는 연동형 비례제의 강화와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설립 방지를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정미는 당 대표 임기 동안 활발한 활동으로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 등 스타 진보 정치인들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고 후배 정치인을 양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평가/사건사고
◆ 평가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 2017년 10월15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 앞마당 개헌자유발언대에서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 주최로 열린 세계 동물권 선언의 날 행사 '오늘은 내가 동물 대변인, 나의 목소리를 들어줘!'에 오리 분장을 하고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미는 정의당의 역동적이고 젊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상정 전 대표는 그의 뒤를 이어 이정미가 정의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저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남기기 바란다. 저는 당의 생존을 위해 온몸으로 이리저리 뛸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누구도 정의당의 존망을 걱정하지 않는다. 담대한 포부를 가지고 거침없는 실천을 할 때”라고 당부했다.

이정미심상정 전 대표와 노회찬 전 의원 등 정의당 ‘간판스타’와 비교해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휘 세명대학교 교수는 “이정미 의원은, 높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심상정 의원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내 최대 계파인 인천연합에 속해 있다. 인천연합은 민족해방계열인 NLPDR계이지만 여타 NL계와 다르게 북한의 3대 세습과 독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정미는 온건한 진보 좌파로 알려졌다. 학생운동을 할 때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했다는 말도 있지만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북한을 추종하는 극단적 형태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반미 친북 성향을 뚜렷하게 나타냈으나 정의당 창당 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핵실험과 군사행동을 비판하는 등 다소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이정미는 2017년 4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무한도전에서 가상의 회사 ‘무한상사’가 근로기준법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포괄임금제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보수세력 통합을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 표현하는 등 보수정치 세력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동안의 귀여운 외모와 미소로 이솝찐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키가 170cm로 여성 정치인 가운데 손꼽히는 장신이다. 프로필상 키가 같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보다 커보인다는 말도 있다.

종교는 천주교이며 세례명은 오틸리아다.

2008년부터 길고양이 새끼인 나비를 3년 동안 키운 고양이 반려인이다.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 ‘아리’에서 고문으로 활동했고, 20대 국회에서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7년 7월1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당 대표 오찬 때 문 대통령의 반려견 토리를 위한 방석을 선물하기도 했다.

2016년 환경부 국정감사 때 사육곰 관리 문제를 제기해 전수조사를 이끌어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동물보호단체(WAP)와 녹색연합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8년 대구에서 태극기를 들고 자신의 강연에 반대하는 노인들 앞에서 쉬운 단어와 진심 어린 말들로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난 뒤 노인들이 맞는 말만 했다며 정의당에 대한 태도를 호의적으로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YTN 시사 안드로메다 415호에서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증발달장애를 앓는 조카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언니로부터 자신이 죽거든 보험금으로 조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10년 뒤 장애인들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4월6일 YTN 시사 안드로메다 415호에 출연해 절대 국회에 입성하면 안 되는 사람 4명을 적고 1명은 말로 표현했다. 자신이 적은 네 사람이 모두 당선이 안 되면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겠다고 했다. 선거가 끝난 뒤 이정미가 적은 4명이 모두 당선되지 못했다. 그 4명은 이니셜이 H, N, S, M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황교안, 나경원, 심재철, 민경욱이 아니냐고 추측했다.   

◆ 사건사고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2022년 10월30일 파리바게트 농성장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 <이정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노회찬 전 의원의 드루킹 사건 연루 및 자살
정의당은 노회찬 전 의원이 드루킹 사건에 연루돼 목숨을 끊으면서 타격을 입었다.

노회찬 전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드루킹 수사를 맡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 김모씨로부터 노 전 의원에게 2천만 원을 직접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이정미는 2018년 7월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노회찬 의원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드루킹 쪽에서 나오고 있는 여러 가지 말들이 터무니없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며 “정의당은 노 의원의 말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의원은 2018년 7월23일 유서를 남긴 채 아파트 현관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금전을 받은 사실이 있지만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글이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드루킹 김동원은 2018년 11월29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노 전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것이 아니라 느릅차를 줬다고 증언하며 진술을 번복했다.

노 전 의원의 사망으로 정의당은 국회 의석을 잃었고, 정의당이 민주평화당과 함께 구성한 '평화와 정의의 모임'은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이정미는 2018년 10월21일 창당 6주년 기념 행사에서 “뜻깊은 자리에 노회찬의 부재가 몹시 서럽다”며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 정의당을 목숨 바쳐 지키고 일궈왔던 그분의 크나큰 헌신을 다시금 되새긴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공산주의자로 지목돼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이종화 국민의당 예비후보가 이정미를 공산주의자로 지목해 당 차원의 싸움으로 번질 위기를 맞았다.

이 예비후보는 2016년 3월12일 페이스북에 “정의당은 공산주의자를 비례대표 1번에 공천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공산주의자를 비례대표 1번에 공천한 당과 연대하려는 당"이라고 비난했다.

이정미는 입장표명문을 통해 "북한은 보편적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국가라는 것이 저의 판단이며 정의당의 판단”이라며 “이른바 북한의 3대 세습도 보편적 상식에서 볼 때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북한의 이런 상황을 개선하자는 데에는 보수도 진보도 큰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의당은 “국민의당 이종화 예비후보가 우리 당 비례대표 1번인 이정미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며 “이 후보의 발언은 이름을 알리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연대에 색깔론을 덧씌우려는 야비한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당은 이 예비후보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예비후보는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저의 상식보다 당의 판단을 신뢰한다”며 “이정미 정의당 후보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 2020년 3월9일 21대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출마한 이정미 정의당 후보가 인천시 송도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8년 영원통신에 입사했다.

1989년 영원통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해고당했다.

1995년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조직국장,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직국장을 맡았다.

2000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여성국장을 맡았다.

2001년 반미여성회 조직위원장, 2003년 같은 단체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통일연대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쳤다.

2003년 민주노동당 서울용산지구당 부위원장이 됐다.

2004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에 선임됐다.

2007년 민주노동당 당대회 부의장이 됐다.

2008년부터 2014년 8월까지 민주노동당·진보정의당·정의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3년 정의당 부대표, 2016년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2016년 5월 제20대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단에서 일했다.

2017년 7월 정의당 대표에 선출됐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연수구 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2년 10월 정의당 대표에 뽑혔다.

◆ 학력

1984년 인천 인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방송통신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다 2년 만에 학교를 중퇴했다.

성공회대학교 정치정책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비혼으로 알려졌다.

◆ 상훈

◆ 기타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출마하면서 9억62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현장과 일꾼’(1995)과 ‘진보의 합창’(2012) 출간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정치 산문집 ‘정치의 의무’(2019)와 ‘정치하는 마음’(2021)을 저술했다.

어록
[Who Is ?] 이정미 정의당 대표

▲ 2022년 10월11일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가 정의당 전국동시당직선거 대구경북 합동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정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고 수습에 협력하자고 했지 사고 원인을 덮자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임을 철저히 가려내고 제대로 처벌하지 않게 된다면 오히려 피해자들이 ‘거기에 간 내가 잘못인가’ 하는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2022/11/01,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을 강조하며)

“위기를 핑계로 온갖 퇴행적 정책을 내놓는 윤석열 정부는 민주화 이래 역대 최악의 정부다.” (2022/10/28, 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중요한 건 당의 자강이다. 당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즉 자기 방향성이 뚜렷해야 하고 그 방향성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체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2022/10/12, 대구지역 언론 뉴스민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과의 차별성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며) 

“뭘 입던 무슨 상관인가. 21세기에 원피스를 입었다고 이런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한다니 정말 이럴 때 기분 더럽다고 하는 것이다.” (2020/08/05,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을 두고 온라인에서 성희롱적 글이 넘쳐나는 것을 비판하며)

“주민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고 선거 기간 거대 양당의 박빙 속에서도 저를 지켜주시려 소신껏 밀어주셨다. 이제 조금, 아주 조금만 쉬고 주민들 곁에서 다시 일어서겠다.” (2020/04/17,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도로에서 상대방이 과속하고 신호를 위반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같이 그런다고 하면 대형 사고가 나는 것이다. 정의당마저 그런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 (2020/03/13, 더불어민주당이 정의당에 비례연합 정당 참여를 제안하자 반대 의사를 밝히며)

“24년간 계속된 자유한국당의 연수을 1당 독점을 끝내고 완전한 세력교체를 최초로 달성해 인천 최초의 제3당 진보정당 의원, 최초의 지역구 여성 의원이 될 것이다.” (2020/01/07,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연수을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며)

“밤을 새워서라도 납품하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는 원청 대기업의 갑질을 그대로 놔두고 왜 이제 와서 주 52시간제를 후퇴시키자는 것이냐.” (2019/11/19,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의 주52시간제 안착 대책을 비판하며)

“지금 3년 동안 집이 냉방인데 윗목 몇 사람만 온기를 느끼고 창고에는 연료를 비축하고 있다. 불 좀 때자는데 안 때고 계속 연료를 비축하면 보일러가 터진다.” 

“경제가 어려울 때 확장재정을 하면 안 되는지도 반문하고 싶다.” (2019/10/28, 국회 예산정책처 주최 2020년도 예산안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문재인 정부의 2020년도 예산안을 초슈퍼 예산이라고 비판하자)

“청년들이 불평등과 불공정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들이 아닌가. 학벌 대물림 관행들을 다 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하고 있다. ”(2019/08/22,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일본의 무역보복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안전규제의 빗장을 풀고 노동존중 사회에서 뒷걸음치려는 결정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2019/08/07,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해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을 비판하며)

“견학 좀 오시라고 하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사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0/08/02,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고발된 뒤 경찰에 출석하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경찰 출석을 ‘경찰 견학’이라고 표현한 것을 꼬집으며)

“2주에 150시간을 일하고 1주를 쉬는 방식으로 1년을 일해도 불법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이것은 야만의 상황으로 노동자를 몰아넣는 것이다.” (2019/07/18, 국회 정론관에서 청년유니온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정치권의 '유연근무제 확대' 논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어정쩡한 50대 초반의 나이와 초선에 그것도 비례대표이면서 당 대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못내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2019/07/11, 정의당 대표 고별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 활동을 회고하며)

“더불어민주당 2중대 프레임을 떨쳐내기 위한 2년이었다. 민주당이 하는 일에 대해 무작정 박수치고 밀어준 일이 머릿속에 하나도 없으며 국민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판단했다. (2019/07/11, 정의당 대표 고별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 활동의 의미를 설명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국회 연설을 추진하자.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하게 된다면 무엇보다 강력한 비핵화 선언이자 한반도 평화의 중대한 걸음이 될 것이다." (2018/10/01,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최저임금만 골라 때리면서 국민에게는 혼란을, 자유한국당에는 기쁨을 주고 있다. 정의당은 김 부총리의 정부 흔들기가 계속된다면 거취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다." (2018/09/13,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최저임금 속도 조절 발언을 두고)

"누구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는 없다. 어떤 이도 노회찬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정의당 모두가 노회찬이 돼야 한다." (2018/07/26, 노회찬 추도식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1년 넘게 수사했지만 결과는 말 그대로 삼성 면죄부 보고서였다. 이건희, 이부진, 김봉영 등 삼성그룹 관계자의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깨끗이 세탁해준 보고서였다." (2018/04/19, 삼성그룹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무혐의로 결론 내린 수사보고서를 공개하며)

“정부가 잘할 땐 손뼉 치고 좀 부족하거나 노동자의 삶을 외면할 땐 강력한 비판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목소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강력한 동맹군이 돼 주실 것을 믿는다.” (2017/07/20, 당 대표 취임 후 한국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께서 청와대 문건들이 쏟아져나오자 이것을 '정치보복쇼'라고 했다. 진짜 보여주기 쇼는 누가 하고 있나. 정국에 책임감을 가지고 소통과 협치에 나서야 할 때 그것을 거부하고 수해 현장으로 간다면 피해 주민들조차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7/07/19, SNS를 통해 청와대 회동에 불참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판하며)

"2015년 이후 3년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은 고령의 대상자들을 생각할 때 인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다. 향후 남북관계 전반을 위해서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상봉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7/07/18, 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사회를 극복하고 인권국가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가는 첫발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하는 동반자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고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를 만들겠다." (2017/07/15,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임금소득의 격차와 불평등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정확한 답은 최저임금이다. 대한민국 20대 국회는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 국회가 과감한 선택을 하면 노동자 342만 명과 그들의 가족 900만 명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2016/07/06, 국회 본회의에서)

"더 큰 진보, 강한 야당을 기조로 당 조직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진보 재편에 기반한 진보정치의 지평을 확장하겠다.” (2015/07/02, 정의당 제3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국 동시당직선거’ 제주유세에서)

"우리는 폐업하는 진주의료원처럼 홍준표 도지사와 그와 뜻을 같이했던 지역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명 역시 폐업시킬 것을 다짐한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한 사람의 욕심이 공공의 이익과 국가의 장기적 과제를 어떤 식으로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2013/07/01, 홍준표 경남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 공포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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