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과거 부회장 재임 시기는 경영성과로 보면 사실상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이 회장은 2012년 말 부회장에 오른 뒤부터 사실상 삼성전자를 이끌었다. 하지만 2016년 자동차 전장(전자장비)기업 하만을 인수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이 없었다.
 
[데스크리포트 11월] 삼성전자 회장 된 이재용, 이건희 넘어설 수 있을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2019년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2030년까지 1등을 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모바일칩(AP) 점유율은 후퇴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은 정체한 상태다.

스마트폰은 아직 출하량 기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애플에 매출과 이익, 브랜드 파워에서 크게 뒤져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사업만 봐도 이 회장은 지금껏 자기 능력을 사회에 제대로 증명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메모리와 스마트폰 세계 1등기업'을 만든 선친 이건희 전 회장을 넘어서려면 가야 할 길이 한참 멀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에게는 기대해 볼 만한 부분이 많다. 그가 과거 우리 사회의 재벌들의 일그러진 관행을 따라 수월하게 회장 자리를 물려 받았다면 결코 겪지 못했을 '값진' 경험을 갖고 있어서다.

이 회장이 과거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수감생활을 했던 것도, 현재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것도 원인은 하나다. 

두 사건 모두 최소의 비용만 들여 그룹을 물려받으려다 생긴 일이다. 회사의 이익보다 오너의 이익을 앞세우는 과정에서 이 회장은 영어의 몸까지 됐다.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던 2020년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자녀에게 경영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을 어기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며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올리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가지 핵심발언은 모두 지금껏 우리나라 재벌들에게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이 회장은 사회에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회에 공언했다. 

사실 산업화 시대에 한국을 이끈 재벌 중심의 오너경영 체제는 장점이 많다. 장기적 안목에서 일관된 경영을 펼치고 과감한 결정과 투자를 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환경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 고조 등으로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너경영 체제의 장점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다만 오너경영 체제는 의사결정의 불투명성, 사익 추구, 독단경영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회장은 그런 어두운 측면의 오너경영을 앞으로 하지 않겠다고 우리 사회에 스스로 약속했다. 

오너경영의 장점은 살리면서 부작용은 줄인다면 시스템반도체 1등 달성이나 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인수합병, 이런 과제를 해내기 위한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 등에도 속도가 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회장이 삼성전자 부회장에서 '부'라는 한 글자를 떼기까지 기간은 잃어버린 10년이 결코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
 
[데스크리포트 11월] 삼성전자 회장 된 이재용, 이건희 넘어설 수 있을까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1등기업으로 키웠지만 사랑받는 기업으로는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일을 꿈꾸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2021년 초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 최후변론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 삼성을 만들겠다. 이것이 기업인 이재용의 일관된 꿈"이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이겨 회사를 성장시키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을 넘어 촘촘한 준법시스템을 갖추고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과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이는 괄목상대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미래에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이유다. 이재용 회장은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한 여정을 막 시작했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