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시간 부자가 되니 '진짜 어른'이 되더라

▲ 자연경관이 좋고 인구 밀도가 낮은 캐나다는 곳곳에 사색하고 명상하기 좋은 장소가 많다. <캐나다홍작가>

[비즈니스포스트]  미세먼지 때문에 마흔에 갑자기 은퇴하고 소박한 파이어족으로 사는 중이다. 이번 네 번째 칼럼에서는 돈 부자는 못 됐어도 시간 부자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조기은퇴자의 심정적, 성격적 변화를 말해보려고 한다.
 
마흔에 은퇴하기 전에는 내가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발전하는 성장형 인간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은퇴 후 천천히 되짚어 보니 그것은 외적인 성장일 뿐이었다.

일 능력, 일머리가 발전하는 것과 내면이, 인품이, 어른다운 포용력과 자존감이 성장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일 능력이 성장하는 것은 바쁘게 몰아치는 일상에서도 가능하지만 인품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한가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워커홀릭 양산형 사회인 한국에서는 ‘일 분도 허투루 쓰지 마라, 더 노력하라’는 식의 셀프 채찍질 교훈들이 넘쳐난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일하고 성과 내고 승진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성장하는 나’란 무엇일까? 

보통 저 노력은 ‘더 많은 능력을 갖춘 나’,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나’, 자격증이나 연봉처럼 눈에 보이는 면에서 발전하는 데에 초첨이 맞춰진다. 영어 성적을 올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더 비싼 곳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직장에서 멋지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그러다 보면 외면의 성장을 이루었어도 마음은 너그러워지지 못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성공한 꼰대, 오만한 자수성가자 또는 승진은 빠르지만 불안증이 가시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승진은 빠르지만 불안증이 가시지 않는 사람의 예가 은퇴 전의 내 모습이다. 이십 년 입시강사로 일하는 동안 매해 더 노력하고 더 발전하며 성과는 좋았다.

하지만 실적을 계속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과노동을 하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지친 속을 보듬는 데에 신경 쓸 여력 없이 ‘할 수 있다, 도전!’만 외치느라 긴장을 놓지 못하고 살았다.

역량 대단한 누군가는 바쁘고 지친 와중에도 내면을 평화롭고 여유롭게 가꿀지 모르겠지만, 필자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에겐 이렇게 바쁜데도 여유롭기가 꽤 버거운 일이다.

여유롭지 못한 마음은 옹졸한 순간을 낳는다. 대외적으로 매너 좋다는 평을 받아도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에게는 무례할 때도 있고, 세상의 다양성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별스럽게 보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언뜻언뜻 이런 모습들을 보이며 살았었다. 바쁜 내 시간에 맞춰 가족이나 연인이 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나, 효율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본심으로는 이해 못 하던 나,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옹졸하던 모습들이 있었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 외적 성과에 집중하면서 내적 성찰은 부족했던 것이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시간 부자가 되니 '진짜 어른'이 되더라

▲ 캐나다의 겨울 눈밭에서 무료 명상·요가 수업을 하고 있다. <캐나다홍작가>

은퇴하고 시간 부자가 되고 나서야 내면을 꼼꼼히 성찰해 볼 여력이 생겼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을 생각할 때 연봉, 경력, 성과란 단어를 빼고 나니 성격, 인품, 자아, 인간관계 등 그간 덜 살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하고 심심한 와중에 창의력이 나온다는 말처럼, 자기 이해력과 성찰력도 한가하고 심심할 때 더 발휘되기 쉽다. 빡빡하고 옹졸했던 마음도 해실해실 풀어질 여력이 생긴다. 이해, 배려, 관용을 품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남의 실수에 ‘왜 저런담’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다른 생각, 다른 차림새, 다른 사상을 존중하고 교류하는 여유도 늘었다. 내적으로 성장하는 스스로에게 더 만족하며 자존감도 높아졌다. 속사포 같던 말투는 느려지고 날카롭던 인상은 온화해졌다.

갑자기 한 조기은퇴 덕에 이렇게 사색하면서 반성하고 보듬기도 하면서 내적 성장 중이다. 십대 때는 한창 몸이 자랐고 이십대 삽십대에는 한창 일머리가 커졌다면, 마흔이 넘어서는 이렇게 속을 키우고 있다. 아직도 이리 성장할 면이 많다는 사실에 다시금 인생에 겸손해진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다수가 비슷한 긴장감, 비슷한 옹졸함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여유로움에 박한 문화, 다름을 이해 못 하고 비난하는 문화, 1등을 하면 성격이 좀 못나도 다 괜찮다는 식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이상한 나라,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면서 자살률은 항상 1위인 나라, 사회적 약자가 상대적으로 너무 불행한 나라, 이런 사회문화 속에서 불안증, 독단, 혐오와 배타가 양산되기 쉽다. 

학교가 이렇고 일터가 이렇고 거기서 비선택적으로 만난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다면 영향받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니 여기서 멀찍이 떨어져 나올 수 있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성찰도 쉬워진다. 은퇴가 주는 장점 중 하나이다.

드디어 이런 회사를 떠나서 원하는 일을 하고, 드디어 이런 사람들과 억지로 부대끼는 삶에서 멀어져서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한국보다 여유로움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곳으로 필자처럼 이민을 떠날 수도 있다. 스스로 택한 삶을 여유롭게 살면서 내면을 성장시킬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속이 풍요롭고 따스한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은퇴는 일로 성장할 시간을 줄이는 대신 내면을 키울 시간을 늘리는 즐거운 변화가 될 수 있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