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순 Global Watch] 트럼프가 '털린다', 당신의 상식은 안녕한가

▲ 앨런 바이셀버그 전 트럼프재단 최고재무책임자가 2022년 8월12일(현지시각) 뉴욕에서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욕시 검찰은 바이셀버그의 두 아들은 물론이고 이미 이혼한 며느리까지 샅샅이 '털었다'. 하지만 수사는 완전히 실패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나이 먹으면 세상에 대해 훨씬 많이 알게 되고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더니 나날이 의문부호만 늘어간다.

미국에서 전 대통령을 '터는' 일이 생길 줄이야. "아 이 사람들이 이제 갈 데까지 갔구나"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지난 16일 뉴욕에서 생긴 '사법적 사건'은 필자가 알고 있던 지식들이 고작해야 '편견'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트럼프에 대한 공격은 이미 당선 전부터이기는 했지만, 정말 심장부를 노린 저격은 지난 2021년 7월 트럼프 재단의 책임자였던 알란 바이셀버그를 체포한 사건이었다(정확히 말해서 체포는 아니고 제 발로 검찰에 출두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뉴욕시 검찰은 바이셀버그의 두 아들은 물론이고 이미 이혼한 며느리까지 샅샅이 '털었다'.

바이셀버그는 트럼프의 심복 중 심복이었기 때문에 과연 뭐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16일 그 결과가 나왔다. 그의 죄목은 세금 포탈을 비롯한 15개의 중범죄였는데, 뉴욕 검찰은 바이셀버그와의 '형량거래'(plea deal)을 통해서 '몇 주간 수감'되는 대신, 트럼프에 대한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무슨 이런 괴상한 plea bargaining이 있나?

애초부터 뉴욕 검찰은 바이셀버그가 트럼프 관련 수사에 '증언'과 '협조'를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거래는 수사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없다.

즉, 죽어라고 털었는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검찰은 '어쨌든 유죄는 인정했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 상징적인 수감을 요구하고 피의자는 지리한 법정공방과 비용을 고려해 '그 정도라면' 하고 받아들인다.

수사 개시부터(트럼프 임기 중이던 2020년부터 시작됐다) 바이셀버그의 출두에 이르기까지의 언론의 어마어마한 관심과 검찰이 제기한 무시무시한 혐의 내용(검찰 주장대로라면 종신형도 가능하다)을 생각하면, 이 결과는 문자 그대로 어질어질하다.

물론 처음부터 이 수사가 '기획'된 것이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거야 당연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건 '수사 실패'가 아니라, 아예 '억지'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미국에서 법이 첨예하게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연히도 법은 애초부터 '정치적'이다. 그러나 법이 힘을 갖는 것은 법의 기술(테크닉) 안에 그 '정치성'을 숨길 줄 아는, 그래서 '공평무사'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일련의 과정 때문이다.

문제는 이 허물이 벗겨지고 있다는, 실은 스스로 벗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법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무너진다.

트럼프에 대한 압수수색도 마찬가지인데, 선왕의 목을 치는 것은 당연히 다음 왕의 목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전 왕의 목을 친 세력은 자신이 단두대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차기 왕도 자신들 내부에서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순간부터는 정치는 예전의 우아한 사교의 기술로서의 포장이 뜯겨나가고 대놓고 총과 칼이 난무하는 세계가 되어 버린다. 전쟁으로서의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일은 알고 보면 우스울 정도로 어처구니없기도 하다.

지난 2004년에 미국 국방정보센터 소장이던 브루스 블레어(대륙간 탄도미사일인 Minuteman 발사기지 장교로 근무한 바 있다)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1960~80년대까지 20여 년간 해외 배치 미군 핵폭탄의 승인코드(permissive action links; PALs)는, 놀라지 마시라, '00000000'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관할 하에 있지도 않았다. 군부가 관장했다. 그리고 어지간한 부대원들은 다 발사 코드를 알고 있었다. 이러고도 세상이 안 망했다는게 신기하기는 하다.

하기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썽 많은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계정 비밀 번호는 'password'였다. password가 password였던 것이다.

핵무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트럼프 집권기에 미국 정보 공동체에서 몇몇 인사들이 핵폭탄 발사 권한이 대통령에게 없었다는(과거형으로 말했다) 언급을 슬쩍슬쩍 흘리곤 했다(거의 대부분 친트럼프 계열 인사였다).

대충 눈치로 감잡아 말하면, 트럼프는(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 대통령들도) '독자적인' 핵무기 발사 권한이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도널드 레이건은 집권 말년에는(최소한 1986년부터 1988년까지는) 치매였다(딸의 회고록에 따르면 1986년에 아버지가 치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매 환자의 특성상 일상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가족이 알아차릴 정도면 상당히 치매가 진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치매 노인한테 핵폭탄 발사권을 맡기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 군부가 갖는 것이 옳은가? 군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아니다. 시민의 운명을 군부에 맡기는 것은 군국주의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럼 누가 가져야 하나?
 
[이공순 Global Watch] 트럼프가 '털린다', 당신의 상식은 안녕한가

▲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2022년 8월12일(현지시각) 호이처 전차에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 호위쳐 자주포가 한도를 넘어서는 규격 외 포탄을 발사해서 작동불능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군은 호위쳐 자주포로 국제적으로 금지된 발목지뢰를 민간인 지역에 대량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무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제네바협약에서 금지된 지뢰를 공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인지뢰다.

프랑스는 1995년에야 제네바협약에 가입했다. 그리고 제네바협약에서는 대인지뢰의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는 지뢰가 1995년 이전 생산된 재고품인지 그 후 생산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대인지뢰를 미친 듯이 뿌려대고 있다(그리고 러시아가 살포하고 있다고 역선전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장하는 러시아군의 '반인도적' 행위들은 실은 그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최근에 나온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은 자신들이 테러를 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약을 치는 프로파갠더라고 보면 맞다. 우크라이나군의 9월 공세의 요체는 '테러'일 것이다).

지난 달 말에 독일 언론에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호위쳐 자주포가 한도를 넘어서는 사용 및 규격 외 포탄을 발사해서 전선에 보내자마자 작동불능이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한도를 넘어서는 사용(원래 1일 100발 이하로 설계되었는데, 우크라이나군은 그 이상을 쏘아댔다)은 이해가 가는데, 도대체 '규격외 포탄'이 무엇인지 갸우뚱했다.

러시아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군은 호위쳐 발사 포탄에 대인지뢰(흔히 발목지뢰라고 불리는 것이다)를 탑재해 전투지역이 아닌 도네츠크 시내 한복판 민간인 거주 구역에 쐈다. 수천 개의 지뢰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지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얼마 전 미국은 대인지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단서가 붙는다; 한반도를 제외하고. 즉,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대인지뢰를 쓰겠다는 얘기다. 제네바협정 위반 아닌가?

미국은 제네바협정에 가입한 적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를 볼 때마다 거의 기괴할 정도로 전쟁 범죄에 대한 규탄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그토록 전쟁 범죄를 규탄하는 미국은 제네바협정 미가입국이다.

러시아도 가입하지 않았다.

헤게모니 국가들은 그런 시시한 협약에 가입하지 않는다. 제네바협정을 준수하면, 전투력에 제한이 생긴다.

따라서 약자들에게는 유리한 조약이지만, 강자들에게는 불편한 조약이다. 그러니 힘 있는 국가는 가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푸틴을 비난하면서 전범으로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넘겨야 한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를 비준하지 않았다. 비준은 커녕,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철군 문제로 설왕설래하던 지난 2011년에 직접 '미군이 타국에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미군 범죄에 대해서 이라크 정부가 재판관할권을 갖겠다고 한 것이 미국의 이라크 철군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트럼프도 동일한 발언을 했었다. 미국이 사법재판소에 가입하면, 역대 대통령과 정부 주요 장관들, 군부 인사들, 정보기관 책임자들은 모두 전범 재판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전범(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의 민간인 학살 혐의)으로 고발된 상태다.

키신저가 사법재판소 조약에 가입한 나라에 갔다가는 체포당해 재판에 넘겨질 수도 있다(칠레의 피노체트가 반인도적 범죄로 기소된 전례가 있다).

영국은 한걸음 더 나갔다. 영국 의회는 지난달에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해외에서 전쟁에 참여하여 한 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즉, 용병으로 해외의 전투에 참여하여 전쟁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영국에서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거기야 원래 해적의 국가였으니 그러려니 한다.

그러면 도대체 염불처럼 외고 있는 'rule based order'(룰에 기초한 질서)란 무엇인가? 그건 '법'(국제법)을 안 지키겠다는 뜻이다.

법치는 두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rule by law'이고 다른 하나는 'abide by law'다.

rule by law는 우리말로 하면, '법치'다. 즉,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법에 의거해 통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rule by law는 위정자에게 해당한다.

반면에 'abide by law'는 '준법'이다. 이는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들, 즉 피통치자들이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rule based order는 'law'가 아니다. law는 관련자들 사이에 합의된, 구속력이 있는 (문서화된) '약속'인데 반해, 'rule'은 근거를 갖지 않는다. 즉, 구속력을 갖는 합의된 '약속'이 아니다.

rule은 정하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며, 기껏해야 '관행'이다.

왜 서구에서 '국제법 준수'라고 하지 않고 rule based order라고 하는가? 왜냐면, 그 '룰'은 국제법상 근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최고의 국제법은 유엔 헌장이며(개별 국가로 따지면 헌법에 해당한다), 그 틀 내에서 다양한 국제법들(그리고 조약들)이 존재하고 그 법은 각국의 내부적 동의 절차를 거쳐, 구속력을 갖는다.

미국이 말하는 '질서'는 유엔 헌장 어디에도 없다. 유엔 헌장은 안보이사회와 총회에서 그 같은 질서를 '결정'(결의)하라고 말하지, 어느 특정 국가가 '이것이 질서다'라고 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헌장은 안보리에서 5개국이 합의한 것을, 그리고 총회에서 결의된 것을 '질서'라고 인정할 뿐이다.

이게 국제법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미국은 국제법을 말하지 못하고, '룰'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국제법 위반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러시아는 기묘할 정도로 '국제법'을 준수하려는 태도를 보인다(이 때문에 군사작전이 지장을 받을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전쟁 하루 전인 2월23일 러시아는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편입하겠다는 청원을 승인한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는 러시아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2월16일부터 대규모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기방어'(self-defence)를 행사할 권리가 생긴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형식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법적인 관점에서는 러시아는 국제법을 따르고 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에 편입 신청을 한 것부터가 '위법' 아닌가? 그것 역시 아니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모든 인민은 분리 독립할 권리를 가진다. 그 과정이 평화적이고 자주적이면 된다.

그리고 나토의 감시 기구인 OSCE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공화국의 분리 독립 운동과 주민 투표(러시아 연방으로의 가입 청원)는 자주적으로(즉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고) 이루어졌다.

예컨대, 영국의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이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독립 운동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주민들은 스스로 국가를 택할 권리가 있다. 그들이 독립을 하든, 아니면 다른 나라에 귀속되기를 원하든 그것은 그들의 권리다.

'평화적'이지 않지 않았는가? 그렇다. 내전을 거쳤다.

그러나 그 내전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민병대가 먼저 공격한데 따른 '자기 방어'였기 때문에 정당화된다(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015년에 돈바스 지역 주민들을 향해 "너희들이 감옥에서 굶주릴 동안 우리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학교에서 공부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스코틀랜드나 바르셀로나가 분리독립을 원한다고 해서 포탄 세례를 퍼부으면 국제법 위반이며, '반인도적' 행위가 된다.

마찬가지로 돈바스 지역 주민들이 분리 독립을 원하고 러시아에 편입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포탄을 퍼부을 권리는 없다(2014년 이후 8년 동안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민병대의 공격으로 1만3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면 러시아가 점령한 상태에서 주민 투표를 했던 크림반도는 국제법 위반 아닌가? 역시 아니다. 역사부터 봐야 한다.

서구 언론에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크림반도는 지난 1991년 구 소련 해체 당시 독립국가연합에 남기를 주민투표로 결정했었고, 소련 해체 혼란 속에서 이것이 불가능해지자, 1992년 독립 공화국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1995년 우크라이나군이 무력으로 정부를 해산하고 우크라이나에 편입시켰다. 즉, 우크라이나가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력으로 정복한 땅이다.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크림반도는 빼앗긴 땅을 수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제법을 준수한다고 해서 더 도덕적인 것도 아니며, 도덕적 가치(자유)에 기초한 룰을 주장한다고 해서 더 우월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그렇게 선전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들 중에서 어디에 더 가치를 매기는 것은 똑같이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러시아는 법은 준수하지만, 국제적 정치 정세 판단에는 자기 과시가 지나치게 물들어 있다.

푸틴은 지난 7월의 세인트페테르부르크 경제 포럼이나 17일 개막된 모스크바국제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 주도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 다극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다극(multi-polar) 시대는 1970년대 데땅트 시기에 흔히 일컬어지던 문구였으며, 1982년 이후의 본격화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기 이후 최초의 다극화 시도는 2016년의 brexit, 또는 좀 더 확대해서 본다면, 비록 좌절되기는 했지만, 2015년의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추진이었다.

그리고 그 밑자락을 깔아놓은 것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미국이었다.

미국은 2007~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의 원인이 금융의 globalization(정확하게는 달러화의 globalization)에 있다고 보고(당시 재무장관이던 티모시 가이트너의 회고록을 보면, 미국은 '다른 나라들 때문에 원치 않는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었다. 이것이 유로달러 시장, 또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표현을 빌자면, global saving glut이다), 달러화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것이 프랭크-도드 금융 개혁법안의 핵심이며, 그 후 10여년의 과정을 거쳐 미국은 달러화를 '국내화'(nationalization)했다(이 과정에서 리보금리 시장이 소멸됐다).

즉 globalization에 최초의 균열을 낸 것은 미국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고 했다.

이것이 american exceptionalism, 혹은 america first를 둘러싼 온갖 소음의 원인이다.

미국은 더 이상의 globalization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globalization은 미국만이 아닌 수많은 국가들의 공동의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 해체와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의 이해를 보장받고 싶어했다. 이것이 post-globalization 시기의 국제적 대립의 진정한 원인이다.

미국의 달러 국유화에 대해 유럽은 역내의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맞서려했고, 이것이 영국의 EU 탈퇴의 진정한 원인이었다(정치적 독자성 따위는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 대륙 국가들이 추진하던 금융 규제 강화에 자국의 금융 시스템이 종속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brexit는 미국이 단극화(일방주의)를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미국은 영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서 영국을 유럽을 통제할 수 있는 레버리지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globalization에 대한 최초의 정치적 균열은 brexit이며, brexit 협상 과정에서 유럽은 약화되었고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사실상 미국에 종속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미국은 자신들의 일방주의를 관철시킬 수 있는 더 강한 기반을 얻고 있다(과거에는 상호의존적인 동맹 관계-물론 그 중에서 가장 큰 몫을 미국이 챙기기는 하지만-였다면, 지금은 미국은 최소한의 양보만으로도 자신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동맹국들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푸틴의 '미국 일방주의 독주를 깨는 러시아'라는 평가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미국은 바보가 아니며, 헛손질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계기로 자신들만의 동맹을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미국 역시 과거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상대적인 의미에서).

실은, globalization의 전성기의 미국은 지금보다도 훨씬 취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대립은 앞으로 한 세대에 걸쳐 지속될 긴 장기전의 막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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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8월16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아파트 공사 현장. 미국 주택건설회사들의 주가는 지난 5월 말에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하여 저점 대비 20% 가량 상승했다. 하지만 주택경기 심리지수는 계속 하락 중이라 지금의 주가 반등은 '경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시선이 나온다. <연합뉴스>

이 모든 일들이 시장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체제가 시장을 재구성할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이란 구자유주의(19세기 후반) 시기에도 신자유주의(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에도 없었다.

시장이란 기껏해야 국가들이 설정해 놓은 울타리 안에서, 마치 어항 속의 금붕어가 어항이 대해의 전부인 것으로 알 듯이, 그저 이쪽 유리 끝에서 저쪽 유리 끝까지 오가던 공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어항이 그리고 수질이 그리고 먹이가 달라지고 있다. 아마도 먹이를 주던 손이 불쑥 어항 속으로 들어와 금붕어를 잡아채 튀겨먹을지도 모른다.

증시의 bear market rally는 늘 격렬하다. 그 이유는 불황 돌입 직전에는 일시적으로 인플레 효과로 인한 이윤 증가 시기가 오는데, 바로 그 때가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 전망이 강화되면서 이윤이 늘어나서 PER의 P(price; 다른 자산과의 수익률 상대 비교에서 주식이 갖는 레버리지 효과)가 상승하면서 동시에 E(earning)이 상승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시기에는 동시에 숏커버링이 수반된다).

16일 발표된 월마트의 2분기 실적은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이는 미국 소비자들이 높은 인플레이션률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소비 여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은 지난주의 엔비디아의 실적 전망과는 배치되는 것이다(엔비디아는 경기 침체를 예고했다).

가장 눈여겨 볼 지표는 주택건설회사 주가와 이들의 심리지수(NAHB index)이다.

주택건설회사들의 주가는 지난 5월 말에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하여 저점 대비 20% 가량 상승했다.

반면, 주택경기 심리지수는 계속 하락 중이다. 즉, 최근의 주택건설사들의 주가 변동은 '경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연준이 완화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것일까?

다음 설명을 참조하자.

"미국 국채 수익률 곡선(각 만기별 금리 차)은 연준의 기준 금리가 오는 2023년 4월 3.5%로 최고치에 도달하고, 같은 해 9월에는 0.25%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은 연준이 과도하게 금리를 올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Scott Skyrm, Curvature Securities 부회장. 8월11일자 트위터).

연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것 역시 아니다.

Skyrm은 레포(Repo, 환매조건부채권)마켓 전문가인데, 그의 전언에 따르면 투자은행들은 고객들(펀드들)에게 9월 말을 넘어서면서 은행들은 재무제표를 축소할 것이며, 고객들에게 이전과 같은 자금 공급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즉, 9월 말 이후에는 시장에서 유동성이 빠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즉 연말연초에 시장 상황이 매우 나빠질 수 있다).

반면, 최근 레포 트레이더들 사이에 미 재무부가 'treasury buyback'을 시사했다는 평가가 돌고 있는데(자세한 내용은 아직 루머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단 변형된 오페레이션 트위스트류인 것으로 보인다), 이 수단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증시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과거 전례로 보면, 은행들이 재무제표를 본격적으로 축소하면(특히 분기 말 결산기에), 시장에 그 충격이 나타나는 것은 대략 2주가 지난 다음이다.

따라서 만일 9월 말 결산에 대비해 은행들이 재무제표 축소에 나선다면, 10월 중순에 충격이 나타난다(주로 국채 수익률 급락으로 표현된다. 그 직후에 증시에 반영된다).

그러나 동시에 재무부가 국채 재매수에 나선다면 그 충격은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아직은 상황은 유동적이며, 예단은 역시 무당의 영역이다.

그러나 동시에 도구가 많이 동원된다는 것은, 목수가 서툴거나 이것저것 다 들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연장이 시원찮아서 나무가 제대로 깎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든 지푸라기라도 잡히면, 그것은 희망이며, 희망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전략이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다. 빠져죽기 전까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한 첫 번째 곡물 운반선이 시리아에 도착했다(원래는 레바논이 기착지라고 알려져 있었다). 역시 세상은 별 일이 다 있다.

그럭저럭 물밑 협상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시장은 안심한다. 다음 폭탄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