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순 Global Watch] 우크라이나 전쟁의 프로파간다, 정치가 종교 될 때

▲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에 위치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자택 입구에서 경호원들이 8월8일(현지시각) 경비를 서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은 이곳을 압수수색헸는데 미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정치사에서는 정적을 처분하면서 결코 직접 손대지 않았다. 트럼프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상흔은 오래 남을 것이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어느 조직에나 교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일을 망치는 멍청이들이 있기 마련이다"고 비웃었는데, 여기서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자면 '원리주의자'에 해당한다. 

흔히 원리주의(fundamentalism)는 이슬람에나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시대에 따라 아주 광범한 현상이었다. 

니체가 살던 19세기 후반에는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이들은 산업화의 결과로 노동자 계급이 나타나고 이들 사이에 자생적으로 발생한 문화와 이들이 도시에 밀집 거주하면서 나타나게 된 '도덕적 타락' 현상을 질타하면서 '교리'를 문자 그대로 대중들을 향해 투사했다. 

이 시기의 '사회 운동'은 기독교 사회 정화 운동이었으며, 음주나 매매춘을 죄악시하고, 대중의 빈곤은 이같은 노동자들의 '타락한 문화'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신도들을 이끌고 사창가를 습격하거나 술병을 모아 깨뜨리는 행사도 잦았다. 유럽 대부분의 '기독교민주당' 또는 '기독교사회당' 처럼 정당 앞에 '기독교'가 붙는 정당 명칭은 이같은 사회 운동에 그 정치적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같은 '정화' 운동은 1920년대에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운동'(또는 부흥회 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오늘날 미국 침례교의 뿌리가 되고 있다('엘머 갠트리'는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며 영화화되기도 했다. 영화는 소설과는 약간 다르기는 한데, 버트 랭카스터의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 

한동안 뜸하다가 이같은 원리주의의 세계적 유행이 1970년대에 다시 나타났는데, 한국에서도 상당히 재미를 봤다(이슬람 원리주의는 195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와 CIA가 합작해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Wahabism을 전파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란이나 이라크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알카에다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제민병대 조직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원리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원리주의자인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긴 그걸 인식할 수 있으면 원리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순환논리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한국에서도 원리주의는 여전히 성하고 있으며, 아마도 전보다도 더 성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원리주의는 영어로는 표현이 동일하기는 하지만, 근본주의와는 다르다. 원리주의는 '언어'(언어로 표현된 교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그 언어가 상징하고 있는, 또는 함의하고 있는 '이념'(사상)에 따르는 것이다(한국적 의미의 근본주의는 영어로는 radicalism이 더 어울린다).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중도주의자'가 되거나 결국은 '원리주의자'의 길에 빠지게 된다. 

원리주의는, 인식론적인 관점에서는, 언어를 문맥 속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 때문에 발생한다. 더 깊숙히 따지고 들어가면, 실은 자신들의 몰이해가 자신들의 이해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원리주의적이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해'(interest)는 그 자체로 '이성적'(계산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흥정'의 여지가 있으며 따라서 '원리주의적'이 되기에 충분치 않다. 

인간의 사고가 원리주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해관계인 동시에, 종교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배타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중동에서 발원한) 서구 종교는 기본적으로 '우리'와 '타인'을 적대적으로 구성한다. 이 원칙 하에서는 '타자'는 적이며, 따라서 굴복시킬 대상이거나 혹은 타도해야할 대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옳다. 

이런 프레임에 '이성'을 들이대는 것은 터무니 없다. 미국 네티즌들이 자주 쓰는 Upton Sinclair의 표현을 빌자면
"It is difficult to get a man to understand something when his salary depends on not understanding it"
(어떤 것을 이해하지 않아야만 먹고 사는 사람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란 어렵다). 
    
[이공순 Global Watch] 우크라이나 전쟁의 프로파간다, 정치가 종교 될 때

▲ 우크라이나 자포로제 원자력발전소. 최근 이곳으로 포탄이 날아들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곳은 현재 러시아군이 장악해 전기 공급까지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자포로제 원전 사건이 그렇다. 

이 원전은 지난 3월 러시아군이 점령했다(러시아의 제1단계 작전의 핵심은 돈바스 포위 작전 병력 배치 완료와 원전 및 생물학 실험소 점령에 있었다). 이 원전에 2주 전부터 포탄이 날라들기 시작했다. 현재 원자로 6기 중에 1기만이 정상 가동 중이며, 송전 시설 일부가 파괴되었다. 또 폐연료봉 창고 근처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누가 쏘았는가?

우크라이나 정부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 군이 쏘았다. 응?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고(러시아군 대대급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려고 준비 중이며, 자칫하면 체르노빌급 대사고를 야기할 수 있는데 러시아가 자기 스스로를 향해 쏘았다고? 그렇다. 이게 우크라이나의 주장이다. 

이걸 서구 언론은 그대로 옮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중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데, 이게 통한다(한국에서 통하는 만큼 서구에서도 통한다). 

지난 9일자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정보심리전'(Information Psychological Special Operation)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프로파간다'다. 프로파간다는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참/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어를 구성하는 것이 이 작전의 요체이며, 통했기 때문에, 이 작전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초등학교 3학년만 되도 이 주장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학력을 가진 인구들로 구성되었다는 언론도, 그 언론은 수용하는 대중도, 최고 학력을 자랑하는 엘리트 집단도 (아무런 의심을 표명하지 않고) 믿는다. 이들은 참/거짓을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이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뉴욕타임스에 아주 재미있는 르포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던 필라델피아주의 어느 보수적인 소도시의 선거 분위기를 전한 르포였다. 

당시 트럼프의 매매춘 사실이 폭로되었던 직후였는데 기자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게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를 그런 것(매매춘)을 용납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저열하다고 보지 말아라. 우리도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라고 대답했다(이 기사를 보고 필자는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트럼프는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그러나 대신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저열한' 일까지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독실한' 기독교도들에게 비쳐졌다. 그래서 지지했다. 

트럼프가 기존의 관행에 맞지 않는 온갖 괴상망측한 행동들이나 파격적인(실은 막무가내인) 행동들을 했을 때, 그것은 자신을 지지해준 대중들을 '배반'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것이었다. 그것이 트럼프의 힘이었고, 동시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비극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트럼프가 어떤 인간이냐가 아니라, 이미 미국 정치 구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종교화'되었다는 것, 따라서 민주/공화로 대표되는 양당은 엘리트들의 '담합'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전면적 대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기 전까지는. 그러므로 진리(진실)보다 적대가 우선한다. 여기다대고 사실이 어떻고 진리가 어떻고는 쇠 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 쇠 귀에 경을 읽으면, 읽는 중도 피곤하고 듣는 소도 화를 낸다. 

흔히 이를 내전(civil war)라고 부른다. 트럼프의 거주지(마라라고) 압수 수색은 미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닉슨한테도 그러지는 않았으며, 미국 정치사에서는 정적을 처분하는 방식에는 일정한 관행이 있었다(결코 직접 손대지 않았다). 그것이 깨진 것이다. 

설사 트럼프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상흔은 오래 남을 것이며 혼란은 단시일내 진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정치적 대립의 격화를 민주당은 계산에 넣었을까? 당연히. 

종교화된 정치적 적대는 상호적이다. 단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8100만 명에 이르는 바이든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바이든이 유능하다거나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지지한 것이 아니다(심지어는 바이든은 코로나를 핑계로 집에만 들어박혀서 선거 운동에 나오지도 않았다). 아마도, 바이든을 지지한 대중들도 그가 '아무 생각없는'(즉 치매 초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수도 있다(모르기도 힘들다). 

그러나 대중들이 '신뢰'한 것은 바이든이 아니라, 바이든이 50여 년간 쌓은 경력이 보여주는 '시스템의 힘', 또는 기득권의 힘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온한 삶을 헤집는 트럼프를 제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바보라도 좋았고, 실은 바보일수록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인간(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good old days'를 다시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사를 뒤흔드는 마라라고 압수수색도 용인해줄까?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아니라면, 디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다음 대선에 공화당 주자로 나선다. 그리고 공화당 주류는 디산티스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디산티스는 대외정책에서는 마이클 폼페이오 전 CIA 국장, 국무장관의 판박이다.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여러분은 아직 본 편을 못 본 것이다.    
 
[이공순 Global Watch] 우크라이나 전쟁의 프로파간다, 정치가 종교 될 때

▲ 발틱해를 통과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노스스트림'.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중단으로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프로파간다는 확실히 서구에서는 성공적이다. 독일의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전쟁 발발 뒤에 녹색당의 지지율은 약 10% 포인트 상승했다. 지금은 모든 정당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도대체 녹색당이 무엇을 잘했는가? 전쟁의 북소리를 잘 울렸다. 녹색당은 반전 정당 아니었나? 옛날(1990년대)에는 그랬다. 

그러나 1990년대 치열한 내부 사상 투쟁 끝에 녹색당은 변신했다(이념적인 원칙적 생태주의자들은 모두 밀려났다). 변절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지금의 독일 녹색당은 채식주의자 네오 리버럴(vegan neo-liberal)에 불과하다. 

그러면 독일 대중들은 '우매해서' 속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도 독일이 러시아 경제 제재에 뛰어드는 일이 제 발등 찍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파시스트 정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개인적 경험으로는 독일 대중들의 평균적 지적 수준은 매우 높다. 최소한 확실히 영국보다는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독일이 이기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내일은 없다고 독일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완전한 패배가 불가피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기꺼이 속아줄 것이다. 

그래서 들통나기 전에 뭔가 방책도 필요하다. 12일자 독일 언론에 우스운 뉴스가 실렸는데, 독일 정부가 러시아와의 협상 중개인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를 내세웠다는 것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으며, 러시아 관영 석유회사(로즈네프트) 이사로 재임하기도 했다(최근 사임했다). 

이 뉴스가 '웃기는' 이유는, 슈뢰더는 불과 두어 달 전만 하더라도 친러파라는 이유로 '천민'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슈뢰더의 사민당 후배이자 지금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선배 정치인으로 제대로 처신을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힐난했으며, 독일 정부는 지난 5월 슈뢰더에 대한 (전임 총리에 대한)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연금은 '과거 지위'에 의거해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부의 방침을 따르느냐에 따라 지급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사건은 독일이 법치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슈뢰더는 이 문제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독일 정부는 대리인으로 써먹으려면 연금은 다시 지급해야할 것이다. 

'중개'가 잘될까? 이미 2주 전에 푸틴이 가이드라인을 천명한 바 있다. 노스스트림1(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독일은 지멘스가 담당한 개스터빈의 수리에 대한 법적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라는 것과(이건 실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제 수리를 담당한 캐나다가 여전히 개스터빈이 제재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은 러시아가 요구하는 개스터빈이 러시아 자산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법적인 서류를 제출할 수가 없다), 둘째로는 제3국에 수리를 맡길 필요가 없는 노스스트림2를 가동하라(지난해 완공되었으나 독일이 준공 검사필증을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단, 노스스트림2를 통해서도 원래 합의했던 천연가스 공급량의 절반밖에 줄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달고서(러시아 국내 수요 증가를 이유로 들었다). 말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잘 되기는 힘든 중재다.  

제이크 설리번이 기획하고 서구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공격적 프로파간다'는 영국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사임을 발표하고 후임 총리 선출 과정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리시 수낙 전 재무부장관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었다. 그러나 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자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약 18만명에 이르는 영국 보수당원들이 투표로 당 대표를 결정하면 자동적으로 당선자가 총리가 된다). 

트러스 외무장관은 'Boris on the steroid'(우리 말로 하면, '뽕 맞은 보리스')로 불리는 인물이다. 모든 면에서 보리스보다 '강경파'다. 무엇을 하든, 트러스는 보리스의 두 배로 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 보수당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같은 인물이다(보리스는 말로만 때우고 실제 행동은 하지 않은 것이 실각의 가장 큰 원인이다. 실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른바 '파티 게이트'는 내부에서 유출시킨 스캔들이었다). 

만일 수낙이 총리가 되었다면, 영국발 세계적인 긴축 모드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러스가 총리가 된다면,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그리고 재정 지출이 모두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북소리 또한 높아질 것이다. 

영국 총리 선출 결과가 나오는 9월 5일 무렵부터 그동안 말만 많던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비로소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일반적인 전쟁의 반격이 아닌 무차별적인 민간 폭격과 시설물 파괴 형태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미 반격 능력을 상실했다). 러시아는 한 달 쯤은 기다려 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은 아마도 9월 25일의 이탈리아 총선 이후가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당이 여론 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선거 연합에 참여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이탈리아의힘 정당과 북부의 '동맹'이 전체 의석의 60%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상하원 모두 60%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이들은 'eurosceptic'(EU 회의론자)로 불리는 정치 세력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정책 연대 합의에 'EU 정책의 충실한 이행'을 포함시켰다.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이들은 EU나 유로화 탈퇴론자들은 아니다. 다만, 이탈리아 민주당(구 사회당이 해체되면서 남은 잔류 세력)이 EU 강화론자라면, 이들은 EU를 연방 국가가 아닌 느슨한 국가연합(confederate;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과 유사한 국가 형태)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나중에야 어찌되든 당장은 상당히 유순하게 EU 강화론에 동참할 것이다. 왜냐하면, 2000억 유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설립된 유럽개발기금의 최대 수혜자가 이탈리아다. 2천억 유로를 이탈리아에 지급하기로 했다. 단 EU가 요구하는 개혁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 정도 돈이라면 정치노선 쯤이야 기꺼이 팔아먹을 수 있다. 

게다가 ECB(유럽중앙은행)도 이탈리아 국채 매입을 늘리겠다고, 다만 이를 위해서는 EU 개혁안을 따르라고 협박 겸 당근을 뿌리고 있는 중이다. EU에 가입하고 유로화로 전환한 뒤에 이탈리아의 대중들의 생활 수준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수준으로 후퇴했다. 

'국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탈리아는 지금이라도 유로화에서 탈퇴하고 EU에서도 나가는 편이 낫다(당장은 힘들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게 낫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기득권층 입장에서 본다면, EU와 유로화는 선물이었다. 게다가 2천억 유로는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뇌물이다. 

지금 이탈리아의 정치세력 중에서는 아무도 이탈리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도 힘도 정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2~3년 뒤에도 여전히 유로존이 침체에서 헤매고 있으면, 그 때 가서는 이탈리아 정당들은 비로소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올 4분기부터 독일이 경기 침체에 돌입하고 EU 전체로도 늦어도 내년 1분기에는 경기 침체가 확실시되지만, 과연 이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아마도 이들 앞에 놓인 선택은 전시경제 체제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장기간의 높은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자기 집에 포탄이 날아드는 게 아니라면, 아마도 당연히 기득권자들은 전시경제를 원할 것이지만,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사회 혼란을 수반한다(전시 경제하에서는 이를 억압할 수 있다. 

어쨌든 둘 다 전체주의 프레임 안에 있는데 전체주의적 자유주의인가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인가의 선택일 뿐이다). 이탈리아에서 파열음은 아마도 경기 침체 탈피를 위한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지난 2008년과 같은 글로벌 bail-out은 없을 것이다. 미국 연준은 더 이상 공평무사한 '최종 대부자'가 아니며, 지난 6월에 영란은행은 이를 경고했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다가올 위험성이 매우 높다(외채비율이 높은 개발도상국들이 초토화될 것이다). 지금의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 한.  
       
유럽에서는 셋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다시 한번 '배판'(double down; 미국 아이다호주 연방 상원의원인 짐 리시가 지난 5월 말에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면서 한 말이다)을 외칠 것이며, 아마도 글로벌 셋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브라질 대통령 선거(10월 말)와 미국 중간 선거(11월 초)까지는 전쟁은 가열되고 경기 또한 한없이 아래로 향할 것이다. 

브라질 선거는 지금으로서는 개표 부정을 빌미로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개월은 소요될 것이다(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루이스 룰라 전 대통령의 지지율 격차는 계속 좁혀지고 있는 중이다). 내년 2월까지는 혼란은 계속될 것이며, 무엇으로 끝날지는 무당이 아니고서야 가늠해볼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점에서는 한국은 유리한 점이 있다. 우리는 이미 무당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