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순 Global Watch] 미국에게 순자 왈, 아랫사람 궁지 몰면 위태롭다

▲ 미국 최고위급 인사로는 25년 만에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8월3일(현지시각)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미국이 대만을 지렛대로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의도된 정책이라 봐야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Bridgewater의 설립자이자 CEO인 레이 달리오는 월가의 스톡브로커 초년병 시절에 점심을 먹다가 TV에서 리챠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달러화 금태환제 폐기 발표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세계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이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고민하다가 globalization 물결에 올라탔다. 

Bridgewater는 중국과 BRICS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성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대규모 중국 익스포저를 유지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채권 투자 섹터에도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채권왕(bond king)이라고 불렸던 빌 그로스(PIMCO 설립자이자 전 CEO)는 2015년에 "나의 성공은 내 재능 때문이 아니라, 채권 시장이 지난 30여 년간 오직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로스가 말한 한 방향이란 지속적으로 장기 금리가 낮아지는 추세(장기적 저금리/디플레이션)를 가리킨다. 이런 환경에서는 채권 투자자는 그저 buy and hold(매수 뒤 보유) 전략 하나면 된다. 수익률은 각 시기마다 얼마나 레버리지를 갖느냐에 따라 다소 달라질 따름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 다음해 은퇴한다.

달리오나 그로스나 둘 다 운이 좋았건, 혹은 머리가 좋았건 간에 하나의 거대한 흐름에 편승한, 또는 그 흐름을 선도한 것은 틀림이 없다. 

여전히 globalization 프레임에 의존하고 있는 달리오의 최근 미중 관계 악화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미국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비록 비논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대만을 공격하는 중국과 맞서지 않는 것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권력과 지위를 대폭 상실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 다른 국가들은 만일 미국이 동맹을 위해 싸우고 승리하지 못한다면 향후 미국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추가적으로 이 같은 패배는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지도자가 약해 보이도록 만들며, 이는 다시 국내에서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지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

미국 국내 사정부터 생각해 보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임명되었을 때, 주목을 끈 것은 그가 '당파적 이해'를 위해 외교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초당적(bi-partizan) 혹은 국가적 이해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국내에서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외교안보 전략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해왔다.

설리번의 주장을 고려하면, 미국의 우크라이나 정책(러시아에게 전쟁을 강요할 수단으로서 우크라이나를 활용하는 것- 이른바 '최후의 우크라이나인까지 싸우도록 지원한다'는 논리로 표현된다)이나 대만을 지렛대로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의도된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설리번이 입안한 정책들이 '성공적'이었는가는 다른 문제다. 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이듯이, 정책 실패 혹은 계산 착오가 이들의 정책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들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기획하고 있으며(그것이 과연 미국에게, 더 정확하게는 민주당에게 이득이 되느냐와는 별개로), 만일 12월 초로 예상되고 있는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처가 현실화된다면 이 같은 추정은 더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바이든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은 그들 스스로에게는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원치 않았던 결과이든 애초부터 목표였든 간에,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 조치로 인플레이션(최소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심리)은 상승하며 이는 미국 대중들에게는, 적어도 민주당이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저소득층에게는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인플레이션과 전쟁 분위기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일부 금융 자본가(특히 프라이빗이쿼티)들에게는 호조건으로 작용한다. 또한 미국 내 에너지 생산 섹터 관련 인구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이들 집단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정책으로 공화당의 지지 기반을 민주당으로 돌려 놓을 수 있는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 하의 이른바 'southern strategy'(남부 공략 전략)은 민주당의 아성이던 중남부 지역을 공화당의 요새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는 공화당의 '전략'이었다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던 민주당 정권 하에서 이들 지역이 가장 피해를 보았고(대표적으로 러스트 벨트), 이에 따른 정치적 공백을 공화당이 치고 들어간 것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외부적으로는 자신들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 전쟁(hybrid war)으로, 국내적으로는 최근 의회를 통과한 Inflation Reduction Act(실제로는 inflation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세부 내역에 대한 평가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로 공화당의 대중적 베이스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체제 전환(기후 위기를 빌미로 한 경제 시스템의 변화 및 gloabalization을 nationalization 체제로 바꾸는 작업이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과 함께 inflation이 미국 대중들에게 최소한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아야만 한다. 게다가 이 전환은 상당한 시일을 요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문제도 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경제 제재, inflation 중 어느 것도 민주당의 진짜 핵심 지지층인 정보군산복합체와 금융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되는 사건들은 아니다(IT는 군산복합체의 일부다. 실리콘밸리는 1950년대 말 미 군수산업의 일부로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까지 거의 전적으로 미 국방부의 지원 하에 성장했다). 아마도 이것이 '중국'(대만 문제)이 등장한 이유일 것이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매우 미묘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실은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상당할 정도로 민주당 엘리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은 놀라운 것이기도 했다.

먼저 달리오의 평가를 다시 음미해보자.

미국이 동맹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강해보여야' 한다. 당연히 약한 맹주를 따라가는 속주는 없다. 그런데 이 같은 평가는 얼마나 사실일까?

미국의 월남전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다. 당시 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는 "왜 미국이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이기지도 못할 월남전에 개입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정치적으로 공표된 '도미노 이론'(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아시아 전체가 공산화된다)은 한국에서나 통했던(지금도 통하기는 한다) 말도 안 되는 흰소리였고('도미노'에 가장 근접한 인도네시아는 월남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66년 군부 쿠데타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여 우파 군부 통치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국의 국내 정세는 반전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월남전은 미국에게 막대한 재정 적자와 인명 손실을 가져왔을 뿐이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정치학계에서 제시한 설명 중의 하나가 이른바 'prestige론'이다. 우리 말로 '위신론'(또는 특권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주장은 위에서 달리오가 제시한 설명과 그대로 일치한다. 즉, 미국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월남전의 주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prestige론은 오늘날 흔히 듣는 'American Exceptionalism'(미국 예외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이 'rule'을 만드는 주체이며,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그 rule을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외'다.

기본적으로 이 같은 인식은 파시즘 정치이론에 기원을 두고 있다. 나치 헌법을 기초한 칼 슈미트(나치 법학자, 정치철학자)가 바로 이 이론의 창시자다. 다만 슈미트는 이를 국내적으로만 한정했고, 독일이 그 주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를 뿐이다.

미국 민주당이 neo-liberalism의 주창자 아니냐고, 그런데 이들이 파시즘 이론을 원용하느냐고 의아해 한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앞으로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다. 아니, 아니라기보다는 네오 리버럴들은 자신들의 리버럴리즘의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가 자신들의 이해에 반하자, 스스로 전화(transformation)했다.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칼 슈미트도 동일한 관찰을 했다(그래서 슈미트는 아예 처음부터 리버럴들을 경멸했다. 왜냐면, 그들은 아무 것도 못하든지 아니면 곧 '예외주의자'-슈미트의 표현으로는 헌법의 수호자이자 주권자-로 전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인권과 평등의 열렬한 주창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야말로 이 '예외주의'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였다.
 
[이공순 Global Watch] 미국에게 순자 왈, 아랫사람 궁지 몰면 위태롭다

▲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월29일(현지시각) 일본을 방문해 미일경제정책협의회를 가졌다. 두 나라는 대만의 반도체업체인 TSMC에 대한 과잉 의존을 줄이기 위해 공동으로 2나노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개발키로 합의했다. (왼쪽부터)코이치 하기우다 일본 경제무역산업상, 요시마사 하야시 일본 외무장관,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장관. <연합뉴스

트럼프는 그런 점에서는 '예외'였다. 그는 '예외주의자'(exceptionalist)가 아니었다. 그는 매우 순수한 의미에서 포퓰리스트였으며, 따라서 예외주의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위험들(대표적으로 전쟁)을 원치 않았다.

미국의 포퓰리즘 전통은 특이한 바가 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반전(평화를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쟁에 말려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주의(즉, 우리는 우리끼리 살래)로 나타난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 두 경향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흔히 트럼프를 법을 지키기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인물, 그래서 '비민주적인 정치인'이라고 평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포률리스트들의 눈에는 법은 원래 '엘리트'들의 것이다. 순수한 민주주의는 '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중들의 의지가 곧 법이다(그리고 이같은 견해는 루소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엘리트들(기득권 세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민주당과 싸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화당 주류와도 싸워야 했으며, 결국 임기 후반부는 사실상 식물 대통령에 가까웠다.

특히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2019년 북한 김정은 총서기와 싱가포르 회담이 실패로 끝난 다음에는 'swarmp', 또는 'deep state'가 미국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원흉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를 무릎 꿇리기 위해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주류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트럼프를 용인할 수 없다.

트럼프의 주거지인 마라라고까지 압수수색하는 미국 정치사상 유례없는 사태 속에서 트럼프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트럼프가 살아 남는다면, 미국은 거침없이 혼란 속으로 전진할 것이다.

리버럴(네오리버럴)들이 이처럼 스스로 전화하기 때문에, 지난 40여 년 동안 리버럴들의 주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이 혼란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 대 후반에(아직도 네오리버럴이 최전성기에 이르기 전에조차) 이탈리아의 정치학자들은 이같은 경향을 간파하고 이를 '권위주의적 자유주의'(authoritarian liberalism)라고 이름을 붙였다.

최근에는 푸틴이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썼다. 푸틴은 미국 네오리버럴들의 변화를 두고 '전체주의적 자유주의'(totalitarian liberalism)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서 '파시즘'까지는 고작 반 걸음에 불과하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직전인 지난 7월29일 미국의 안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은 일본의 요시마사 하야시 외무장관과 코이치 하기우다 경제무역산업상과 워싱턴에서 미일경제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대만의 반도체업체인 TSMC에 대한 과잉 의존을 줄이기 위해 공동으로 2나노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개발키로 합의했다(8월1일자).

올해 말까지 일본 내에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참여하는 연구개발 조직이 설립될 것이며, 2025년 양산을 목표로 2나노 공정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는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그리고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직후인 지난 7일에는 TSMC가 당초 계획과는 달리 2나노 공정 개발을 연기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이 보도대로라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선도적' 역할은 이제 대만에서 일본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미 TSMC는 지난 2021년 3월 일본 츄쿠바에 3D IC 패키징 원료 공장 건설을 위한 연구개발 센터를 개설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일본의 JSR이 EUV 리토그래피에 사용되는 특수물질을 생산하는 미국의 Inpria를 인수합병하기도 했다.

미일 간 합의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양국 간 공동 성명서에 따르면 두 나라 정부는 기업의 투자 계획 지연이나 금융 섹터의 반대가 있을지라도 첨단 반도체 공정 개발에 나서도록 정부와 (계획에 참여한)기업 경영진 사이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는 '투자 수익률', 또는 시장 전망과 무관하게 양국이 '전략적'으로 반도체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TSMC의 시장 점유율 하락 내지는 첨단 기술에 뒤쳐지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며, 장기적으로 대만에게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전후 사정을 보았을 때,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경제적으로 TSMC (좋은 말로 해서) 생산 기반의 장기적 이전을 보완해줄 '안보 지원용'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올바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곧 은퇴할 하원의장이 뭘 약속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공순 Global Watch] 미국에게 순자 왈, 아랫사람 궁지 몰면 위태롭다

▲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8월8일(현지시각) 정찰을 위해 미콜라이프 지역 최전방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무기지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에게 전쟁을 강요할 수단으로서 우크라이나를 활용하고 있다는 시선이 있다. 이는 이른바 '최후의 우크라이나인까지 싸우도록 지원한다'는 논리로 표현된다. <연합뉴스>

참고로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할 의사도 능력도 아직은 없다. 따라서 미국이 대만을 지렛대로 중국을 도발하는 것은 대만에게만 손실이 될 뿐이다. 도대체 차이잉원(채영원) 대만 총통이 무슨 생각으로 펠로시 방문에 동의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동시에 이는 미국이 미중 수교 이후 globalization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일본을 배제했던 것에서 벗어나서 일본을 다시 '키우는' 정책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만은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며, 한국의 운명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은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다시 그을 것이다. 곱게 물러날지 자신들이 이룬 것을 모두 파괴하고 물러날지는 알 수 없지만(아니, 알 수 있다), 말년이 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거짓말이 넘친다.

손자가 병법 1장 1절에서 일찌기 말했듯이, 전쟁은 거짓말에 기초한다. 단지 전쟁만이 아니라, 권력도 거짓말에 기초하며, 국제관계는 서로 속고 속이는 음험한 공간이다.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순자가 전해주는 바에 따르면, "짐승은 궁하면 아무에게나 발톱을 휘두르며, 새들은 궁하면 아무거나 쪼아대고, 인간은 궁하면 거짓말을 한다"(순자 애공편, 안연문답).

여기까지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그 다음을 귀기울여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예로부터 아랫사람을 궁하게 하고 위태롭지 않은 자는 없었다."(未有窮其下而能無危者也)

거짓말을 넘치는 사회는 결국 그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을 향해 치닫는다. 겨울이 오면, 그 거짓말들은 스스로에게 칼 끝을 겨눌 것이다. 올 겨울은 추울 것이다.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