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곤충은 지상, 지하, 민물, 바닷물 등 거의 모든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환경 적응 능력을 자랑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전례 없는 기상이변 탓에 생태계의 기본 작동 원리인 ‘견제와 균형’의 질서가 크게 훼손되면서 생태계가 마비 직전이다. 

생태계의 동물 종 수 중 약 75%를 차지하는 곤충이 매년 불규칙하게 이상 발생하는 현상이 대표 사례다. 최근 몇 년 사이 의도치 않게 인간의 삶 속에서 곤충을 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곤충은 지상, 지하, 민물, 바닷물 등 거의 모든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환경 적응 능력을 자랑하지만 끝 간데없는 인간의 욕심으로 숲과 들판, 호수와 강가 끝까지 파괴되자 살 데를 빼앗긴 곤충이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없어지면 없어지는 대로 버텨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 도심 주거지 인근 야산에 곤충이 자리를 잡는 이유는 당연하며 곤충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곤충 대발생의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곤충과 인간의 ‘종(種)간 장벽’을 뛰어넘어 곤충이 대발생하는 첫 번째 이유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같은 서식지 파괴다. 

경파괴와 더불어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이변과 기후위기가 나날이 훨씬 더 심각해지므로 곤충이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변온동물인 곤충은 가뭄, 홍수, 기온 변화 같은 외부의 충격을 그대로 흡수, 반영하는 민감한 동물로 환경 변화에 대한 결과치를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이성적으로 기후위기와 생태계 재앙의 실재를 꾸준히 소리 높여 외쳐도 꿈쩍도 하지 않다가 돌발적인 곤충의 대발생을 목격하고는 ‘곤충의 습격’이니, ‘기후의 역습’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걱정을 하고 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벌레들이 보였을 때 인간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해 아마도 재앙의 징조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연 생태계 파괴로 많은 변화를 실제 체험하면서도 그것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데 곤충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 폐해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교사인 셈이다.

그러나 객관적 추론과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므로 근거 없는 섬뜩한 공포감은 가질 필요가 없다. 기후변화 및 자연의 도시화와 맞물려 곤충은 점점 더 인간의 문명으로 들어오고 있다. 

곤충의 살 곳을 빼앗아 원인 제공을 한 인간이 징그럽고 불쾌하다고 무조건 벌레는 없애야 한다는 근거 없는 도식에 사로잡혀 곤충접촉을 극도로 꺼릴 뿐만 아니라 모두 없애겠다고 난리다.

3억 5천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에서 온갖 질병과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버텨 온 가장 진화한 분류군인 곤충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약을 뿌리면 약에 대한 저항성을 갖고 유전자를 조작하면 오히려 이를 활용, 변형을 통해 살아남은 1%의 생존 곤충이 질병을 더 확산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니 어떤 경우에도 전부 멸종시킬 완벽한 통제 프로그램은 없을 것 같다. 밀도를 줄이고 접촉을 피하는 도리밖에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곤충 세계에 대한 깊고 진지한 이해와 정보가 필요하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에 이름도 생소한 ‘러브버그’가 떼 지어 나타나 난리법석을 피웠다. 비행 중에도, 꽃에 앉아있을 때도, 그냥 벽에 붙어 쉬고 있을 때도 암·수가 내내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러브버그'라는 별명이 붙었다.

암·수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사랑 중'인 벌레가 맞다. 하지만 털이 북실북실한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낯선 파리가 무더기로 나타나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하고 있는데 러브(Love)라니!

몇 개의 방송국에서 대담과 토론을 하고 각종 언론 매체에서 그들의 생리와 생태를 설명하며 오해를 불식시키려 애를 썼지만 ‘보기 싫다는데’, ‘밉다는데’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니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설득하는 수밖에. 그리고 약 1주일 만에 잠잠해졌다. 어차피 짝짓기를 하는 어른벌레의 평균 수명이 일주일 내외인 곤충이었으므로.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은평구 털파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징그럽다고 그렇게 미움을 받던 털파리 종류는 이런 동물이다. 애벌레 때는 몇백 마리씩 낙엽이나 동물 배설물 밑의 축축한 땅 밑으로 모여 지내며 쌓여있던 각종 유기물을 모두 분해하여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는 중요한 분해자 역할을 하고 어른벌레가 되면 식물의 수분(受粉)을 돕고 거미나 새, 잠자리 등 다른 동물의 먹이로 몸 바치니 사람의 건강에도, 농작물에도, 반려동물에도 해를 끼치지 않고 도리어 도움을 주는 훌륭한 곤충이다. 

어디 털파리 뿐인가? 소똥구리가 야생생물의 똥을 분해하여 초지를 깨끗하게 하고, 송장벌레가 사체를 해체하여 산을 정화하고, 각다귀나 하루살이 애벌레가 계곡의 유기물을 분해하니 만약 이런 종류의 곤충 분해자가 없다면 세상은 깨끗한 계곡도, 향기로운 산도 없이 배설물과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할 것이다.

분해자로, 열매를 맺게 해주는 중매자로 곤충은 꼭 필요한 좋은 생물인데 벌레라는 이미지로 차별 당하고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오판해 돌발 해충이라며 지레 겁을 먹고 완전히 없애려 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애기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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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모송장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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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각다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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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루살이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돌발 곤충이 발생하며 곤충에 대한 증오의 목격담과 각종 억측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잘못된 정보다.

곤충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생태계를 돌리는 엔지니어로 분해자로 혹은 식물의 수분 매개자로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주춧돌(Keystone species) 종이다. 집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이 빠지면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특정 종이 갑자기 불어나 마치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것 같은 현상을 ‘대발생(Outbreak)’이라 한다.

2017년 여름엔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 일대에 ‘하늘소의 습격’이 있었고, 2019년에는 질병관리청에서 화상벌레(청딱지개미반날개) 주의보를 내려 곤충의 대발생을 알렸다. 2020년엔 인천 수돗물에서 깔따구 애벌레가 잇따라 발견됐고 붉은불개미, 매미나방, 대벌레, 꽃매미, 갈색여치, 선녀벌레도 수시로 등장한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청딱지개미반날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깔따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붉은불개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매미나방.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대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곤충으로 읽는 경제] 사랑에 목숨 건 '러브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

▲ 꽃매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생태계 내에서 폭발적이거나 돌발적인 곤충 발생은 비교적 흔한 사건이다. 천적이나 먹이가 풍부해지거나 감소하는 결정적 요인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발생과 소멸로 생태적 변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요즘의 곤충 대발생은 서식지 파괴, 기상이변과 같은 극심한 환경 변화로 생태계 내 견제와 균형이 깨진 경우로 ‘에코데믹(eco-demic)’ 즉 환경 감염병으로 볼 수 있다.

해충 대발생과 같은 생태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산과 강을 손대지 않는 생태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현실적으로 견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곤충의 생리와 생태를 근거한 예방적 차원의 조치나 환경친화적인 구제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며칠 전 소란을 떨었던 러브버그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해진다. 보기 싫다며 보건소와 방역단의 인력을 총동원하고 살충제를 살포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쓸데없이 들어갔을까? 또 그 살충제는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쓰이지 않은 예산으로 돌발 곤충을 견제할 천적과 야생동물, 인간이 피해를 보는 ‘살충제의 역설’이 현실화 될 것이다.

예방적, 환경친화적인 방제 방법 대신에 민원인들의 눈에만 보이지 않게 가장 손쉽고 형편없는 극약 처방인 살충제 살포로 또 다른 환경 재앙을 생산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곤충을 막 대하며 낭비한 국가 예산으로 또 다른 해충 대발생의 길을 만들고 생태계를 망가뜨리며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축적된 살충제의 약성 때문에 호흡기에 취약한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양봉으로 도시농업을 하겠다고 뛰어든 도시 농부들의 ‘양봉 꿀벌’은 살아남을지, 살충제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의 건강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경제 어렵다면서 까닭 없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단지 곤충을 잘 몰라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