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진보성향의 민주당 정권임에도 공화당의 트럼프 정부 못지 않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대기업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보조금과 세금감면을 합쳐 약 100조 원 혜택을 주는 반도체지원법을 밀어붙인 일은 친기업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데스크리포트 8월] 삼성과 SK가 친기업 정부 출범 뒤 겪는 아이러니

▲ 삼성전자가 친기업 정부의 등장에서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글로벌 반도체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만큼 반도체지원법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 역시 친기업 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엔 법인세를 한해 6조 원 이상 깎아주는 세율인하를 뼈대로 하는 감세안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기준 법인세 납부 1위와 3위 기업이다. 그런 만큼 정부의 감세안이 시행되면 천문학적 세금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주요 교역국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도 친기업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선 앞으로 사업이 꽃길만 걸을 것 같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순탄하게만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2. 바이든 정부는 글로벌 기업을 도와 이를 통해 미국 반도체 공급망을 단단하게 다지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동시에 반도체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미국 정부가 서방국가의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을 상대로 중국에 공급 중단을 압박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패권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글로벌시장 질서를 왜곡한다고 반발한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이 일종의 글로벌 갑질을 한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친기업적이지만 글로벌경제 관점에서 보면 친시장적이지 않은 정책 역시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반도체가 안보'라는 정치적 구호 아래 글로벌시장을 패권다툼의 하위 개념으로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자유무역에 맞지 않는 미국의 반시장적 정책은 반도체 공급망의 왜곡을 불러 오히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경제적 폐해로 돌아오고 있다는 비판도 미국 내부에서 나온다. 

#3.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은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도 큰 고민을 안긴다. 

당장 반도체지원법만 봐도 그렇다. 이 법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이 앞으로 10년간 중국에 새 생산시설 건설이나 기존 생산시설 확장을 하지 못한다는 단서조항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현지 투자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선 주요 시장이자 생산기지인 중국 시장 투자를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친기업적인 미국의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반시장적 성격의 불이익을 안기게 되는 셈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칩4 반도체 동맹 가입을 요구하는 일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칩4는 미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한국의 반도체 협력 체제를 강화해 결과적으로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입장에서 일종의 글로벌 담합 시도로 볼 여지가 크다.

한국이 이 칩4에 가입하지 않으면 미국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질 수 있고 자칫하면 공급망과 관련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반대로 칩4에 가입하면 최대 반도체 고객인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4. 윤석열 정부 역시 바이든 정부처럼 산업정책에선 친기업적이다. 하지만 외교까지 포함하는 전체 정부 정책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기업 활동에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미국처럼 경제 문제를 정치의 하위 개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보다는 미국과 관계를 좀 더 강화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시장 논리의 관점이 아니라 보수적 정치이념에 좀 더 충실한 외교정책을 펼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경중안미(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라는 기존 외교 기조에서 탈피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까지 미국 중심으로 치우치는 기조가 굳어진다면 반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다 파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경영에서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친기업을 표방하는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정작 국내 대표 반도체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이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산업정책뿐 아니라 글로벌기업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교정책에서도 경제와 기업을 먼저 염두에 두는 기조를 갖길  바라는 목소리가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친기업 정책을 하겠다면 법인세 깎아주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일부 기업인을 특별사면 해주는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친기업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만 해서 이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까지 살뜰히 잘 챙기는 단계까지 나가야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마음 편히 뛸 수 있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