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펩시콜라 사장을 한 방에 녹인 잡스의 말 한마디

▲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어록에도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아이폰에 잡스의 캐릭터를 합성했다.

 
이 칼럼의 제목은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입니다. '연금술사'라는 단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으로부터 빌려왔습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기업인은 생전에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일본 경제 관련 글을 쓰는 필자는 뛰어난 기업인(CEO)의 경영어록에서 그 '기본'을 찾아보려 합니다. 경영철학자, 경영사상가 등 경영구루(guru)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업인들의 '사례 중심' 경영어록을 통해 그들의 경영철학과 리더십, 그리고 지혜를 소환합니다. <필자주>

[ 비즈니스포스트] "설탕물만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낼 건가요?(Do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selling sugared water?)"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어록 중 하나다. 1983년 3월 잡스가 펩시콜라 사장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애플 CEO로 영입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미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마케팅의 귀재' 스컬리는 미래가 불확실한 IT업체 애플의 제안에 별관심이 없었다. 

그러자 잡스는 직접 펩시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날아가 스컬리와 담판을 지었다. 잡스의 '도발적인 한마디(설탕물)'에 스컬리는 머리를 얻어 맞은 듯 했다. 결국 스컬리는 4개월 만에 설득 당하고 말았다. 당시 잡스는 스물 일곱, 스컬리는 마흔 넷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훗날 존 스컬리의 회고를 이렇게 전했다. "잡스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뤄내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민음사, 2011) 스컬리의 말처럼 '사과(애플 로고)의 마법'은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놓는 일종의 연금술 같은 것이었다. 

2011년 10월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한 외국매체는 '연금술사 스티브 잡스, 편히 쉬소서(Steve Paul Jobs–RIP, the Alchemist)'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매체는 "잡스보다 '현대의 연금술사(the modern day alchemist)'를 더 잘 상징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면서 "연금술사는 갔지만 그의 발명품은 남았다"고 잡스를 추모했다. 

잡스의 발명품만 남은 게 아니다. 존 스컬리를 두 손 들게 만든 '설탕물 어록' 또한 여전히 살아서 비즈니스맨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잡스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이라는 코너명을 자연스럽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오랫동안 일본 기업인(CEO)들에 주목해왔다. 그들은 '경영어록'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한 기업을 분석하려면 먼저 창업자의 경영이념과 경영어록부터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경영이념에 기업의 '방향성'이 담겨 있다면 경영어록엔 'CEO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경영이념이 기업을 떠받드는 서까래라면 경영어록은 서까래를 보조하는 크고 작은 기둥인 셈이다. 

일본 기업인들은 때론 기업의 중요 전략보다 경영어록 하나에 더 힘을 싣기도 했다. 그들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책이나 여러 루트를 통해 후배 기업인들에게 경영어록을 활발하게 확산시켜 나갔다. 이를테면 작은 어록들이 모여 '큰 저수지'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경영어록은 보이지 않는 '기업 자산'으로 축적됐다. 

가장 활발하게 어록을 남긴 일본 경영자로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기업 회생의 신'으로 불리는 교세라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를 꼽을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수많은 기업인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어록을 남기고 기록하는 데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삼성을 일군 이병철 선대회장의 '호암 어록', 그 뒤를 이은 2대 회장 '이건희 어록' 정도가 재계에 많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펩시콜라 사장을 한 방에 녹인 잡스의 말 한마디

▲ 6월14일 네덜란드 아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진 삼성뉴스룸>


스티브 잡스가 연금술사였듯 호암 이병철 역시 연금술사에 가까웠다. 최근 이병철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을 다시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탕을 만들던 기업(1953년 제일제당 설립)이 30년 후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1983년 세계 3번째로 64KD램 생산)으로 전격 탈바꿈했으니 호암의 선견지명을 '연금술의 기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때마침 6월30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할 일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위기 의식 발언(6월 18일 유럽 출장 복귀 현장) 2주 만에 나온 낭보다. 

전 세계가 탈출구 없는 복합 위기 속에 갇힌 가운데 이 부회장은 반도체 위기 상황을 짧고 선명하게 그러면서 강한 메시지로 전달했다. 세계 반도체 선두기업 삼성전자조차 언제든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짐 콜린스(Jim Collins)의 말을 빌려 각 기업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진단해 본다면 그 현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콜린스는 "기업의 몰락 과정은 뱀처럼 소리없이 다가온다"(『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원제: How The Mighty Fall)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리더(경영자)는 늘 위기의식을 갖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기술 강조 발언은 '이재용 어록' 리스트에 오를 게 분명하다. 단언컨대. 

스티브 잡스 이야기로 돌아간다. 잡스와 호암, 두 연금술사는 생전에 잠깐 만난 인연이 있다. 1980년 초반 애플이 매킨토시를 개발하던 당시 잡스는 한국을 방문해 이병철을 찾아갔다. 『삼성가 사람들 이야기』(이채윤 저)에 따르면 20대의 잡스와 70대의 호암은 그날 매킨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강한 인상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펩시콜라 사장을 한 방에 녹인 잡스의 말 한마디

▲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 <사진 아키오 사장 페이스북>


다시 일본 이야기. 필자가 밝힌대로 본 칼럼의 취지는 '기본'에서 다시 살펴보자는 것이다. 일본 현역 기업인 중에서 그 기본의 중요성을 실감한 이가 있다. 

토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다. 아울러 일본 리딩기업 토요타 사례는 경영자의 어록이 시련기의 기업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웠는 지를 보여주는 모범답안이라 할 만하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 아키오 사장이 수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토요타자동차는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리먼 쇼크 여파로 4610억 엔이라는 대적자 늪에 빠졌고 급기야 리콜사태마저 터지면서 아키오 사장은 미국의회 청문회까지 출석했다. 토요타자동차의 명예는 급전직하했다. 아키오 사장은 가장 먼저 뭘 했을까. 

당시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어록 하나가 있다. "기업 풍토가 망가져 버렸다. 땅을 새롭게 갈아엎는 것 외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맨땅에서 시작하자는 얘기였다. 

아키오 사장은 그 어떤 경영전략보다 기본으로 재무장했다. 그렇게 토요타자동차가 명예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거의 10년이 걸렸다. 

"리더십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Leadership is doing the right things)" 경영석학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아키오 사장의 리더십이 그러했다.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