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파괴적 혁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책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필요한 기능만 갖춘 적당한 제품을 낮은 가격에 제공해 시장을 밑바닥부터 장악하는 전략을 말한다. 파괴적 혁신 전략을 펼치는 기업들은 그 뒤 더 좋은 품질의 제품까지 내놓으며 시장 입지를 완전히 다진다.
 
[데스크리포트 7월] 중국 배터리 내수 넘어 세계로, LG엔솔 정면승부 준비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


더 나은 기술력으로 좋은 제품을 내놓던 기업들은 이런 파괴적 혁신 전략을 펼치는 기업에 밀려 힘을 못 쓰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현재 전기차배터리 시장 상황만 보면 크리스텐슨 교수의 이런 분석이 딱 들어 맞는다.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의 약진은 무서울 정도다. 

세계 1위 CATL은 2020년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과 시장점유율 20%대 초반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CATL은 2021년 30%대 초반 점유율로 LG에너지솔루션과 격차를 10%포인트 이상 벌렸다.

올해 들어 두 회사 사이 격차는 2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다. 배터리시장 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1~5월 CATL의 점유율은 33.9%인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14.4%에 머물렀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다른 중국기업 BYD(12.1%)에 세계 2위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다.

중국은 유럽, 미국을 넘는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시장이 커지는 속도도 빠르다. 중국 배터리기업들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폐쇄적인 자국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국내기업들이 주력으로 하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경쟁력이 좋은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영향력을 자국 시장에서 점차 세계시장으로 넓히고 있다.

미국 IT전문지 테크크런치 등 외신 보도를 보면 중국산 배터리는 유럽과 미국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다음으로 큰 전기차 시장인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를 선호했다. 하지만 배터리 원재료 가격 상승에 원가경쟁력을 고려해 리튬인산철 배터리 채택을 늘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벤츠를 비롯해 유럽산 전기차 4대 가운데 1대에 중국산이 들어간다는 추정도 나온다.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는 미국 시장에서조차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심지어 중국산 배터리는 국내 안방 시장까지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기아는 니로 전기차에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와 내년 이후 당분간 생산할 전용플랫폼 전기차 절반가량에 CATL 배터리를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이라는 냉정한 시장 논리에 현대차그룹조차도 중국산 배터리에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중국 기업들은 리튬인산철에 이어 삼원계 배터리로도 품목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 배터리기업들이 중국기업의 약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 배터리기업은 연구개발·설계와 생산에선 좋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요와 조달에선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이 아직 생산시설을 마련하지 못한 미국시장에서 빠르게 생산능력을 키워 수요 기반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원료 조달처를 다양화해 공급망을 안정화해야 한다. 급격한 전기차 시장 확대에 대비해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 절감도 서둘러야 한다.

전기차 시장이 아무리 빠르게 커진다지만 본격적 전기차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중국 배터리기업이 약진한다지만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기업 역시 미국을 비롯한 단단한 글로벌 생산기반, 완성차업체와 협력관계, 수백조 원의 천문학적 수주잔고를 쌓아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까지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1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CATL을 제치고 아직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기술적 요구가 까다롭고 외국기업에 폐쇄적인 일본 트럭업체에 대규모 배터리 공급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배터리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기업과 본격적 패권다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