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 읽는 경제] 골칫덩어리 '벌레', 생물산업 첨병으로 꿈틀대다

▲ 붉은점모시나비 5령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곤충학자로서, 보전생물학자로서 곤충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시민들을 직접 만나서 강의도 하고 칼럼과 책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곤충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 고치거나 일반인들이 전혀 몰랐던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실을 전달한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생태계 내 곤충의 훌륭한 역할을 역설하며 만일 곤충이 없어지면 이 세상이 얼마나 어설프고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될지 경고도 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오래 해오고 있다.

하지만 눈에 뜨이는 특별한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멸종위기에 처한 곤충을 보전하고 고유종을 지키려 애쓰는 내 모습을 보고, 왜 사람 먹고살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그까짓 벌레에 집착하느냐며 핀잔을 받을 때는 더욱더 허탈해진다. 모진 욕설과 애꿎게 미움을 받는 곤충 신세도 늘 처량하지만 내 처지도 덩달아 고달퍼 가끔 우울해질 때도 있다.
 
골칫덩어리 ‘벌레’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짜릿한 감동이 없을까? 아니 최소한 있는 그대로만이라도 곤충을 인정해줄 방법이 없을까? 사람들이 늘 관심을 기울이는 돈, 경제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사로 부상을 시키면 훨씬 설득력이 있겠지! 오랜 기간 연구하며 준비했다. 돈이 되는 곤충을 목표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보전하고 싶어하는 붉은점모시나비를 17년째 연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모시 같은 하얀 날개에 빨간 원형 무늬가 찍힌 붉은점모시나비는 IUCN과 CITES에도 등재되어있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우리나라도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으로 지정한 고귀한 나비다. 태양처럼 붉은 원형 무늬의 특징을 태양의 신 Apollo와 연관지어 Apollo butterfly라는 영명(英名)으로도 불린다. 

2005년 보전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지만 복원은 고사하고 증식조차 하기 힘들어 몇 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 편의 논문이나 정보가 있었지만 잘못된 문헌이라 오히려 장애가 됐다.

한겨울에 부화해 발육하는 놈들을, 따뜻한 봄이 되어 알에서 나오고 비로소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으니 출발부터 틀린 정보였다. 알 속에 애벌레의 웅크린 상태로 190여 일 여름잠을 자고, 한겨울에 먹고 성장하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니 제대로 된 자료가 될 수 없었다.

2012년 무더위를 피해 추운 겨울에 발육하는 생리적 특성을 확인하고 실험에 필요한 충분한 개체 수를 확보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골칫덩어리 '벌레', 생물산업 첨병으로 꿈틀대다

▲ 논문 표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영하 48도에 견딜 수 있는 알과 영하 35까지 버틸 수 있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추위를 견뎌내는 내한성 메카니즘을 규명하면서 애벌레 혈액 속에 있는 물질을 분석하여 논문을 출간했다.

거의 모든 생물들이 선호하는 따뜻한 날씨를 피하고 추운 겨울에만 발육하는, 신비에 가까운 이 생물을 연구하면서 분명 남다른 생리적 특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범위를 유전체 분석 연구로 깊게 확장했다.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여 내동결물질 대사 관련 유전체를 분석해보니 역시 기대한대로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에서 특별한 물질이 나왔다. 총 15종의 펩타이드를 채취했고, 그 중 치주질환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항균물질을 1차로 확인했다. 관련 논문을 내고 특허를 받는 등 필요한 수순을 모두 밟았지만 갈 길은 멀다.
 
논문이 발표된 이후 여러 저널에서 추가 논문을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왔고, 세계구강학회(World Congress of Oral & Dental Medicine)에서 초청 강연을 제안 받는 등 곤충 애벌레에서 추출한 항균 물질에 대해 세계적으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층적, 실질적 연구가 추가로 진행돼 치주질환이나 더 나아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가 되는 순간, 탄소 발생 없이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생물산업의  첨병이 될 것이다. 단 한 건의 사례이지만 곤충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로, 골칫덩어리 ‘벌레’의 놀라운 변신이 아닌가! 

곤충을 알면, 그들의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경제가 손에 잡힌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