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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리포트 6월] 현대차그룹에 미국 대통령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박창욱 기자 cup@businesspost.co.kr 2022-06-0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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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구체적 시기와 규모는 아직 결정된 내용이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지을 것이라는 로이터 보도가 5월9일 나왔을 때 이런 반응을 내놨다. 
 
[데스크리포트 6월] 현대차그룹에 미국 대통령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이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같은 달 13일 AP통신에서 부지와 규모 등 좀 더 구체적인 현대차그룹의 미국 전기차 투자 내용이 보도됐다. 그때도 현대차는 보도 내용이 국내에 알려진 바로 당일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공시했다. 

그로부터 바로 일주일 뒤 5월21일 현대차그룹은 약 7조 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와 배터리셀 공장을 짓는다는 투자협약을 현지 주정부와 맺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직접 만나 미국에서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6조 원가량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잇달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모두 13조 원의 천문학적 미국 투자를 발표하기 불과 일주일 전까지 극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시장에 이미 알려진 내용인데도 철저히 '눈가리고 아웅'을 한 셈이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홍보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를 미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현대차 노조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 노조는 로이터와 AP통신 보도가 나온 뒤 17일 발행한 소식지에서 "사측이 일방적으로 미국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해외투자 같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고용안정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한 현대차 노사간 단체협약을 그 근거로 삼았다.

현대차그룹이 효과 극대화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전체 투자 규모를 한꺼번에 발표하지 않은 이유도 미뤄 짐작된다. 

전기차 생산 문제는 노조와 관계가 있으니 미국에서 현지 주정부와 맺은 협약을 알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반면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투자는 노조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신사업이니 정 회장이 직접 미국 대통령 앞에서 발표했다.

정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그룹 경영진에게 노조는 미국 전기차 생산시설 투자 문제에서는 그 나라 대통령보다도 더 먼저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미국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중국 조차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런 미국 대통령보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노조가 무섭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투자 발표 전인 18일에는 21조 원을 투입해 국내 전기차 생산능력을 올해 35만 대에서 2030년 144만 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같은 해 현대차의 글로벌 전기차 생산목표 323만 대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고용 불안을 우려한 노조가 미국 투자에 반대하는 점도 일정 부분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 발표처럼 국내 중심의 전기차 생산 전략이 실행된다면 현대차그룹에게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기준 글로벌 시장 판매 비중이 80% 이상이다. 국내 판매 비중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국내 생산물량 가운데 절반 이하만 국내에서 판매된다. 국내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은 수출로 소화되는데 글로벌 인플레 등이 겹쳐 해상운임은 당분간 고공행진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으로 글로벌 부품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시선도 많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주력 미국시장을 비롯해 해외 현지에 생산 시설을 늘리는 것이 판매량과 수익성 확대에는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연기관차 시대 '패스트 팔로워(추격자)'였던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대를 맞아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외 생산 비중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시선이 많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글로벌기업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만큼 주요 시장의 성장에 맞춰 생산 거점을 속도감 있게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 사이에서는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내 나라에서 차를 팔려면 내 나라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이 주요 국가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런 만큼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생산시설 투자를 얼마나 발빠르게 펼치느냐 여부는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인 셈이다.

전기차 투자 확대 속도는 현대차그룹 노조의 앞으로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 경영진에게 노조를 설득하는 일은 전기차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과제다.

글로벌기업 현대차그룹이 자동차업계 대전환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풀어야만 하는 고민이다. 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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