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포스트 코로나19에 대비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데 기업들을 둘러싼 환경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현금을 두둑히 챙긴 기업들은 인수합병(M&A)를 향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반면 일부 바이오기업들은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데스크리포트 6월] M&A 불붙는 제약바이오업계, 한쪽에선 '돈가뭄'

▲ 한 연구원이 연구센터에서 신약개발 연구를 진행하는 모습.


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제약바이오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불이 붙은 가운데 일부 바이오기업들에게는 잔인한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다. 

먼저 인수합병(M&A)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던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최근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판매로 막대한 돈을 번 체외진단기업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올해 3월 독일의 유통사 베스트비온(Bestbion)을 인수한 데 이어 4월에는 619억 원을 투입해 이탈리아 유통사 리랩도 인수했다. 

두 기업 모두 유럽에서 체외진단기기를 공급하는 유통회사로 베스트비온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에 자체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리랩은 이탈리아 전역에 체외진단용 시약과 기기를 공급한다.

GC셀은 GC(녹십자홀딩스)와 4월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바이오센트릭을 인수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인수합병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인수합병 검토 대상만 1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구체적으로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 플랫폼기술, 백신 생산시설, 세포유전자치료제(CFT)를 비롯한 새로운 바이오분야 등을 대상에 올려놨다.

아직 백신 생산능력이 없는 개발도상국에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설립해 현지에 진출하는 방안도 인수합병 전략에 포함됐다. 

셀트리온도 풍부한 현금 활용 계획 안에 인수합병 방안을 넣고 검토 중이다.

이 밖에도 국내 상위 제약기업을 중심으로 비상장 바이오기업 및 중소 제약사에 대한 인수합병도 꾸준히 타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이미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두산그룹 등은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고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기업들도 많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에게 잔인한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의 투자심리도 얼어붙었다.

여기에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편이 장기화하면서 비상장 바이오벤처의 기업공개(IPO)는 쉽지 않은 상황이며 주요 수익원인 기술수출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신약 연구개발(R&D)과 임상 등에 대규모 자금을 꾸준히 투입해야 하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K-제약바이오의 성장판이 조기에 닫힐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제약바이오 분야는 특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개발 과정은 임상 비용 등을 포함해 적어도 수천억 원, 많게는 1조 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 금리 인상 추세는 바이오업계에게 심각한 악재가 되고 있다. '돈줄'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빅파마를 대상으로 한 기술수출 시장 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기술수출은 올해 들어 1분기에 6건을 기록했고 2분기에는 단 1건에 그쳤다. 

기술수출에 성공하더라도 글로벌 빅파마들의 투자 여력이 줄면서 제값을 받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제약바이오업계에서 흘러나온다.

신약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은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일 뿐만 아니라 기술특례제도를 통한 상장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술수출이 줄어들면 그만큼 상장심사를 통과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에 따라 올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연구개발 및 임상 자금을 조달하려고 계획했던 비상장 바이오벤처들은 '상장 절벽'과 마주하게 됐다.

올해 들어 기술특례를 통해 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애드바이오텍·바이오에프디엔씨·노을 등 3곳에 불과하다.

여기에 기존에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기업들의 잇따른 사고로 한국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심사 기준 개편 작업에 돌입하면서 기업공개 시장은 더욱 얼어붙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기술특례제도를 활용해 상장한 바이오기업은 98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거래가 정지된 곳은 신라젠, 인트로메딕, 디엑스앤브이엑스, 큐리언트 등 4곳이 있다.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상장제도 개편을 위해 추진하는 ‘표준 기술평가 모델’ 도입이 올해 말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상장 절벽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앞다퉈 뛰어 들었던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자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백신·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수십 개의 국내 바이오기업 가운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은 곳은 아직까지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정도에 불과하다. 

자금줄이 막힌 바이오기업들은 본업인 신약개발 대신 분야가 다른 부업에 열중하면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술특례로 상장했더라도 5년이 지나면 연매출 30억 원을 올려야만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