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정공법을 선택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일까?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의 직접상장을 선택한 점은 그룹 전체 지배구조 개편 역시 핵심계열사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매입해 순환출자구조를 끊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을 높인다.
 
[오늘Who] 정의선, 현대차그룹 지배력 확보는 정공법으로 가닥잡았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14일 재계에 따르면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의 직접상장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 마련 과정에서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시선이 나온다.

건설업종은 기본적으로 미래 성장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최근 몇 년 사이 건설경기 침체도 겹치면서 많은 건설사들이 상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5년 사이 SK건설,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호반건설 등 실제 상장을 추진했거나 상장을 검토하다 결국 상장을 뒤로 미룬 사례도 많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보유한 2대주주다.

시장에서는 이전부터 정 회장이 상장을 통해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를 높여 지분 승계자금으로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직접 상장보다는 현대건설 또는 현대로템과 합병 등을 통한 우회상장 가능성을 높게 보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직접상장을 통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직접상장은 기업공개를 통해 시장에서 성장성을 포함한 기업가치를 있는 그대로 평가받겠다는 것으로 합병비율 등을 정해야 하는 우회상장 방식보다 논란이 적다.

이런 기조는 현대차그룹 전체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현재 존재하는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면서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놓일 계열사를 향한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있다.

시장에서는 2018년 현대차그룹이 시도했던 현대모비스 분할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 방식 등을 포함해 여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총수 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방안이 정공법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순환출자 고리 중심에 있어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로 향하는 지분을 직접 매입한다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놓이는 현대모비스 최대주주에 올라 안정적으로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문제는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는 점인데 총수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활용한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순환출자 고리에서 현대모비스를 향하는 지분은 기아 17.24%, 현대제철 5.78%, 현대글로비스 0.69% 등 모두 23.76%인데 13일 현대모비스 종가 기준(30만1500원) 가치는 6조8천억 원에 이른다.

정 회장은 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글로비스 23.29% 등의 상장사 지분을 들고 있는데 13일 종가 기준 가치는 현대차 1조3천억 원, 기아 6천억 원, 현대글로비스 1조6천억 원 등 모두 3조5천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가치를 더하면 4조5천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현대차 5.33%, 현대모비스 7.13%, 현대글로비스 6.71%, 현대제철 11.81% 등의 지분을 들고 있는데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지분가치는 13일 종가 기준 3조9천억 원에 이른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의지만 있다면 지분 매각 이후 현금매입 혹은 지분교환 등의 방식으로 순환출자고리 안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매입하며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셈이다.
 
[오늘Who] 정의선, 현대차그룹 지배력 확보는 정공법으로 가닥잡았나

▲ 현대차그룹이 2018년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안 구조도.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정 회장 그룹 승계의 마지막 퍼즐로 평가된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에 취임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고 4월 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대외적으로도 현대차그룹 총수로 인정받게 된다.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결정처럼 지배구조 개편 전체 과정에서도 정공법을 선택한다면 기업 분할이나 합병 과정에 항상 따라붙는 이른바 '꼼수' 논란 없이 공정성을 확보하며 승계 작업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셈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말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엠엔소프트, 현대오트론의 3사 합병을 결정했는데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결국 합병비율을 조정해 합병을 진행한 경험도 있다.

소액주주들은 당시 현대오토에버 대주주들인 현대차 계열사에게 유리한 합병이라며 합병비율 조정을 요구했다. 정 회장은 현재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 과정에서 신주 발행 등에 따라 지분율이 기존 9.57%에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4대주주이며 개인 가운데서는 지분이 가장 많다.

시장에서는 정 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결정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안정적으로 상장한다면 정 회장이 쥔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가치는 1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과 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고려하고 시장 의견을 적극 청취해 최적의 시점과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개편안이 마련되는 대로 시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