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진하는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기를 꺼려하고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어 부산시민들이 찬성하는 가덕도신공항에 반대하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 민심은 가덕도신공항에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김종인 가덕도신공항 딜레마, 반대하면 부산이 찬성하면 대구가 걸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을 놓고 국민의힘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사이 이견이 적지 않아 당 지도부도 쉽사리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국무총리실 아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발표한 김해신공항 검증결과에 따라 김해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고 가덕도신공항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박근혜정권 시절 동남권신공항을 건설하는 문제를 놓고 부산·울산·경남은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김해신공항을 건설하기로 결론이 나 가덕도신공항 계획은 묻힐 수밖에 없었지만 김해신공항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가덕도신공항 계획이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해신공항 검증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등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힘을 모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신공항에 힘을 싣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부산·울산·경남 민심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원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승부수를 띄웠다는 시선도 나온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가덕도신공항 계획이 추진되는 상황이 그리 달가울 리 없다.

부산시장 선거를 코앞에 두고 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이는 게 내심 못마땅하지만 이에 반대하며 표심을 거스르기도 어렵다.

16일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의 11월 2주차 정당 지지도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은 부산·울산·경남에서 29.3%의 지지를 얻으며 30.1%를 받은 민주당에 추월당했다.

11월 1주차 조사에서 국민의힘(34.2%)이 민주당(29.5%)에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가 역전된 것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의 성추문 탓에 치러지는 선거라 국민의힘에 다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는데 여론조사를 보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따논 당상’으로 여겼던 선거에서 패배하면 지난 국회의원선거 패배에 이어 국민의힘이 입을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국민의힘이 부산시민이 바라고 있는 가덕도신공항에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쌍수를 들고 적극적 환영의 뜻을 내보이기도 힘들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대구·경북의 반발이 매우 거세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에서는 지역거점 공항으로 대구통합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가덕도신공항이 건설되면 대구통합신공항의 항공·여객 수요를 빼앗겨 공항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애초 대구통합신공항은 김해신공항 건설을 전제로 계획이 세워졌던 사업이다.

국민의힘 소속인 권영진 대구시장은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놓고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권 시장은 “만약 김해신공항에 문제가 있어 이를 변경하려면 당연히 영남권 5개 시도민들의 의사를 다시 모아야 한다”며 “대구·경북은 가덕도신공항에 합의해 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외부인인 김 위원장으로서는 국민의힘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의 반발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대구·경북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주도하는 친호남, 좌클릭 행보 등을 놓고 소외감을 표시하며 불만을 보이고 있는데 국민의힘이 가덕도신공항에 찬성하면 불난 대구·경북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가덕도신공항 문제는 정파보다는 지역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이다.

국민의힘의 부산·울산·경남 의원들은 민주당의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공동으로 발의하겠다는 뜻까지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아직 명확하게 당론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가덕도신공항 추진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부산·울산·경남 쪽에서 얘기하는 가덕도신공항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대구 수성구갑을 지역구로 둔 주호영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여권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 선거에서 덕을 보려고 무리하게 신공항 계획 변경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는 월성1호기 문제와 판박이로 정부의 김해신공항 최종검증을 놓고 감사원 감사로 적절성을 따져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