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올해도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작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른 시장상황 악화에 각종 규제 강화 가능성 등 대외적 환경이 발목을 잡고 있는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이 본격적 재산분할 과정에 들어서면서 내부적으로도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고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 쉽지 않다, 우호적 환경 거리 멀어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27일 재계와 증권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SK텔레콤이 중간지주사 전환을 본격화할 수 있는 여건이 좀처럼 조성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하나금융투자는 2019년 말 SK텔레콤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2020년 하반기에는 지배구조 개편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지만 최근 보고서에서는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 추진시기를 2021년으로 늦춰 보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SK텔레콤이 2020년에는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의 행방을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앞서 26일 제2변론기일에서 서로가 제출한 재산목록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재산분할 절차를 시작했다.

노 관장이 재산분할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42.3%를 요구했기 때문에 재판의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SK 보유 지분율(2020년 3월31일 기준 18.44%)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이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하고 투자회사를 지주회사 SK와 합병하는 방안의 중간지주사 전환을 추진한다면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에 불안요소가 생길 수 있다.

SK가 SK텔레콤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기존 SK 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상 그룹에서 안정적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호지분을 30%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바라본다. 

그런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과 지배구조 개편 추진방향에 따라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SK 보유 지분이 20%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박 사장은 현재 중간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내기보다는 기존에 계획했던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전략의 수정도 고려해봐야 할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 제도에서는 기업이 분할합병 등을 추진하면서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한 뒤 지배주주의 분할회사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SK도 2019년 말 자사주를 매입해 자사주 지분을 25.46%까지 늘린 것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시선을 받아왔다.

하지만 기업이 분할 또는 분할합병 때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사주를 활용한 지배력 강화 방안은 힘을 잃게 된다.

21대 국회는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박 사장은 이밖에도 올해 코로나19로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한 자회사들의 상장을 계획대로 추진하기 어려워지면서 중간지주사 전환을 위한 자금 확보에도 제동이 걸려있다.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은 박 사장이 2017년 1월 SK텔레콤 대표를 맡으면서부터 중요한 과제로 거론돼온 사안이다.

박 사장은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SK그룹이 SK텔레콤을 분할한 뒤 투자부문을 지주회사 SK와 합병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추진하는 데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점쳐졌다.

박 사장은 실제 2019년 말 SK텔레콤 조직을 놓고 통신부문을 총괄하는 Corp1과 비통신부문(뉴비즈)을 총괄하는 Corp2로 조직을 이원화하고 2020년 SK텔레콤 자회사들의 상장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등 중간지주사 전환을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박 사장은 2020년 3월 주주총회에서도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최적의 구조를 만들어 필요한 부분을 개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 추진의 의지를 보인 만큼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은 앞서 2018년 3월21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SK텔레콤 정기 주주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SK텔레콤이 이동통신(MNO)사업 위주로만 평가받는 것”이라며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 같은 해 10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그룹 임원과 관계사 대표 등 70여 명이 참석한 SK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자회사 SK하이닉스 지분율을 높이고 뉴 ICT 사업을 이동통신사업과 대등하게 배치해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방안을 추진해 통신기업에서 나아가 ‘뉴 정보통신기술(ICT) 복합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2019년 1월 CES 2019에서는 “중간지주사 전환을 올해는 꼭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SK그룹 차원에서도 SK텔레콤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그룹 실적에 기여도가 높고 사업 전망이 좋은 핵심 계열사 SK하이닉스 사업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재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거느리려면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지주회사 SK의 손자회사이기 때문에 인수합병을 추진하려면 인수할 기업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SK텔레콤 중간지주사 전환은 SK텔레콤이 통신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회사가 SK브로드밴드, SK하이닉스 등 SK그룹의 ICT계열사들을 아우르는 ICT지주사가 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SK텔레콤이 인적분할한 뒤 탄생할 지주회사를 현재 지주사인 SK와 합병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돼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중간지주사 전환과 관련해서는 진행되고 있는 부분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