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CP)인 넷플릭스가 국내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ISP)인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계기로 '망 사용료'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와 형평성, 무임승차 논란 등을 근거로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야한다는 의견과 SK브로드밴드의 망 사용료 부과는 '이중과금'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넷플릭스 SK브로드밴드 '망 사용료' 소송에 국내 콘텐츠업체도 주시

▲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의 망 사용료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7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인 KT,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적정한 망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결국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나 구글 등 글로벌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막대한 양의 트래픽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망 구축 투자비용도 증가하게 된다”며 “적정한 망 사용료를 지급받지 못해 이동통신사의 망 투자가 어려워진다면 늘어난 트래픽을 인터넷망이 감당하지 못해 결국 소비자들의 원활한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통신사들이 망 사용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통신요금의 직접적 상승 요인이 되지는 않겠지만 낮은 인터넷 요금제를 사용하던 고객들이 더욱 빠른 속도의 높은 요금제로 변경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와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 사이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네이버, 다음, 왓챠플레이 등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에 매년 많게는 수백억 원대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넷플릭스와 구글 등 글로벌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대부분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국내 통신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019년 10월 열렸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와 해외 콘텐츠 제공업체 사이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자 “망 사용료 가이드라인에 법적 구속력을 둔다면 통상 마찰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구속력을 두는게 좋다고 생각하고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소송을 협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한 상황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망 사용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페이스북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과태료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한 뒤 KT 등 통신업체들과 망 사용료 협상을 마무리지었다”며 “아직 방통위의 중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넷플릭스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물밑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제작업체는 통신사들이 콘텐츠 제작업체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이 ‘이중과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들은 통신망에 투자해 콘텐츠가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콘텐츠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각자의 역할”이라며 “인터넷망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통신요금을 받고 있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들이 우리에게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요금을 이중으로 받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통신사들이 우려하는 트래픽 증가에 따른 인터넷 품질 하락 문제 역시 망 사용료가 아닌 캐시 서버 등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용률이 높은 인기 콘텐츠들을 국내에 설치한 캐시 서버에 미리 저장해 놓고 이를 전송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트래픽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망 사용료를 놓고 의견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던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에게는 현재의 망 사용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망 사용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통신사들로서는 발생시키는 트래픽 규모에 따라 업체별로 망 사용료를 다르게 부과할 수 있다. 

국내 통신시장에서 동영상 트래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와 구글(유튜브) 등에게 많은 망 사용료를 받는 대신 트래픽을 크게 발생시키지 않는 국내 중소 콘텐츠 제공업체들에게는 망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방식의 운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넷플릭스 SK브로드밴드 '망 사용료' 소송에 국내 콘텐츠업체도 주시

▲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실제로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은 2019년 10월15일 열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상견례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망 이용 대가를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에게 받아 중소 콘텐츠 제공업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게 된다면 국내와 해외업체 사이 형평성 문제는 더 크게 불거질 수 있다.

국내 콘텐츠 제공업체들로서는 망 사용료 지급을 거부하거나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넷플릭스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망 사용료’라는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앞서 2019년 11월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트래픽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관련 중재를 요청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