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로 시추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심해용 원유 시추설비) 처분에 애를 먹고 있는데 업황의 부정적 변화가 더욱 야속할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에 얼어붙은 시추시장, 삼성중공업 재고 드릴십 처분부담 커져

▲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5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상승세를 타던 드릴십 가동률이 3월부터 다시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추시장 분석기관인 인필드리그(InfieldRigs)의 시추설비 분석자료에 따르면 드릴십 가률은 올해 초 80%에 육박했으나 4월 첫째 주(3월30일~4월3일) 기준으로 73%까지 낮아졌다.

글로벌 드릴십 가동률은 2019년 한때 50%대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말부터 회복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3월 국제유가 급락으로 저유가가 본격화하자 해양유전 시추심리가 악화면서 다시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중공업은 건조가 거의 끝났으나 발주처의 인수 거부로 떠안은 재고 드릴십만 5척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시추시장에 훈풍이 불어 재매각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최근의 저유가는 코로나19로 시작된 수요 부진뿐만 아니라 산유국들의 증산에 따른 공급과잉이 겹쳐 나타난 것이다.

원유 공급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시추회사들이 심해 시추까지 하면서 해양유전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의 매각처를 꾸준히 찾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고 드릴십을 어떻게든 활용해 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해 초 재고 드릴십을 담보로 장기차입금 7천억 원을 확보한 것이 그 사례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유럽의 한 시추회사와 드릴십 용선계약도 논의하고 있다”며 “이와 상관없이 재고 드릴십 5척 모두 언제든 매각이 가능하며 재매각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용선계약이나 재매각계약이 잘 체결될지도 미지수일뿐더러 재매각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드릴십이다.

2019년 10월 대우조선해양은 노르웨이 시추회사 노던드릴링으로부터 드릴십 1척의 판매계약 취소를 통보받았다.

이 드릴십은 대우조선해양이 원래 미국 시추회사 밴티지드릴링으로부터 6억6천만 달러에 수주했던 드릴십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노던드릴링과 이 드릴십을 3억5천만 달러에 재매각하기로 했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는 드릴십 재매각계약을 체결한 뒤에도 인수처가 인도받기를 거절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삼성중공업의 재고 드릴십 5척은 애초 계약가격이 29억9천만 달러였다. 그러나 2019년 말 기준 장부가치가 15억9천만 달러까지 떨어져 있다.

삼성중공업은 꾸준히 드릴십 재매각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는 실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2019년 삼성중공업의 적자 6166억 원 가운데 3480억 원이 충당금 등 재고 드릴십 관련 손실이다. 영업외손실 5226억 원 가운데 3410억 원도 드릴십 관련 비용이었다.

증권가에서는 시추시장의 부진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삼성중공업도 드릴십과 관련한 추가 비용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시추시장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라며 “삼성중공업도 재고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드릴십 5척에 추가로 손상차손을 인식하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