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 행사방향을 결정하기까지 장고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결권 행사지침을 보면 국민연금이 경영권 분쟁 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3자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 한진칼 의결권 장고 불가피, 대한항공 리베이트 공방도 변수 

▲ 전라북도 전주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연합뉴스>


최근 불거진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리베이트’ 의혹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11일 국민연금공단과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탁자책임전문위는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기준 삼아 한진칼 의결권의 행사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이드라인은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싣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의 후속조치로 2019년 12월 도입됐다.

27일에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는 국민연금이 가이드라인 도입 이후 주주권 행사를 처음으로 본격화하는 자리다. 때마침 수탁자책임전문위도 한진칼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수탁자책임전문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한진칼 지분 2.9%를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어 가이드라인상 의결권 위임도 가능하지만 최근 한진칼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고려하면 직접 행사가 주주권익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한진칼 이사회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포함한 조 회장 측의 사내·사외이사 추천안과 3자연합의 주주제안을 모두 주주총회에 올리기로 확정했다. 

양측의 의결권 행사지분율 격차는 1.47%포인트(조 회장 측 33.45%, 3자연합 31.98%)에 불과하다. 사실상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다만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수탁자책임 활동대상의 선정기준을 고려하면 수탁자책임전문위가 의결권 찬반을 쉽게 결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선정기준에는 ‘법령상 위반(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의 사익편취)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이 침해되는 사안’이 들어갔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관련해 '검·경찰의 수사 착수처럼 예상되지 않은 상황의 발생' 등도 명시됐다.

현재로서는 한진칼 주주총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대상자와 관련해 횡령이나 배임, 부당지원이나 사익편취 등 문제의 소지가 확실한 혐의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송이나 수사기관의 조사상황 등을 모두 살펴보면 조 회장은 대학교 부정입학에 따른 학위 취소를 놓고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대한항공 직원들의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어긴 혐의로 검찰조사도 받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에서는 조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던 최근 5년 동안 대한항공이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 관련 행정처분으로 전체 과징금 76억 원을 부과받은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명품 밀수 혐의와 외국인 가사노동자 불법고용 혐의로도 실형이 선고됐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한항공의 전직 고위임원들이 에어버스 항공기 매매계약과 관련해 전체 1450만 달러 규모의 리베이트(판매수수료)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 출석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한항공 리베이트 문제의 검찰수사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에 따라 실제 수사가 시작된다면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 회장 측과 3자연합이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서로 상대방을 겨냥하며 치열한 책임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도 국민연금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 행위로 볼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자칫하면 한진그룹의 ‘집안싸움’에 끼어드는 양상에 놓일 수 있는 만큼 논의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에어버스 리베이트 의혹 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