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99개 법안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을 통해 국회 본회의 법안 처리를 사실상 멈추게 한 일이 ‘악수’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여론의 역풍이 일며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 등 신속처리안건과 예산안 등을 처리하기 위한 정치적 강수를 선택할 수 있는 명분을 쥐어준 것으로 보인다.
 
[오늘Who] 나경원의 필리버스터 카드, 여론 역풍 부르는 악수되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2일 한국사회연구소(KSOI)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속처리안건의 처리를 놓고 정기국회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 비중이 유치원3법은 69.2%,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은 71.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은 48.1%로 모두 다수를 차지했다.

‘내년 총선에서 절대로 투표하지 않을 정당’으로 가장 많은 응답자인 44.4%의 응답자가 자유한국당을 뽑기도 했다. 다른 정당의 응답자 비율을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 18.5%, 정의당 8.4%, 우리공화당 4.0%, 민주평화당 0.4% 등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11월29일 자유한국당의 해체를 촉구하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청원은 2일 오후 기준으로 청원게시 사흘 만에 5만3천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나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을 향한 여론이 이렇게 싸늘한 이유는 선거법 처리를 막기 위해 여야 원내대표 사이 합의를 파기하면서까지 민생법안의 처리까지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처리가 무산된 민생법안은 '유치원3법', '데이터3법', 소재부품장비특별법, 청년기본법, 소상공인기본법, 포항지진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형제복지원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 등이다.

특히 형제복지원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법은 생존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까지 벌였던 법안이다.

최씨의 단식은 8일 동안 이어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과 기간이 겹쳐 비교대상으로 꼽히기도 했다. 최씨는 24일 동안 단식농성을 이어가다 본회의가 무산된 다음날인 11월30일 병원으로 이송됐다.

민식이법, 해인이법, 태호·유찬이법 등 어린이 안전을 위한 법안의 처리까지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점은 비난의 강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고 김민식군의 아버지인 김태양씨는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1월29일 본회의가 무산됐을 때 나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으면 민식이법 등 나머지 생명안전 법안들을 통과시켜주겠다’고 말했다”며 “아이들의 이름과 관련해 모욕적 부분을 놓고 나 원내대표에게 사과를 요구 했는데 아직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는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아니다”며 “본회의가 무산된 것을 놓고는 두 당 모두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여론 속에 더불어민주당은 신속처리안건 등 처리를 위한 강수를 고려할 수 있게 됐다.

나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을 향한 여론이 악화된데 따라 법안 처리를 위한 강수를 두는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무산 전까지는 “마지막까지 합의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원내대표는 “공존의 정치, 협상의 정치에 종언을 고했다”면서 “집단인질범의 수법과 다를바 없는 대대적 ‘법질극’”이라고 태도 변화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위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살라미 임시국회’가 언급된다.

‘살라미(Salami)’란 이탈리아식 소시지 가운데 하나로 주로 얇게 썰어서 먹는 음식이라 대상을 작게 쪼개어 대응하는 등 방식을 지칭하는데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살라미 임시국회는 안건별로 임시국회를 하루 단위로 쪼개 여러 번 개최해 법안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국회법에 따라 한번 필리버스터가 적용된 법안은 다음 회기에 바로 표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대응방법이다.  

이 원대대표는 “대한민국에 자유한국당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국회법 절차에 따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을 연합해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도 얼마든 열려있다”며 “자유한국당이 빠지니 국회가 더 잘 돌아간다는 평가를 받는 기회를 우리가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연구소의 설문조사는 지난달 29~30일에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는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사회연구소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윈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