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중견기업 감시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의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27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행 공정거래법 규정이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조 위원장이 중견기업 감시를 강화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조성욱, 중견기업 감시 강화 원하지만 공정거래법 한계로 쉽지 않아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규모에 따라 기업집단의 취급을 달리하고 있다.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나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따라 상호출자제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금지행위를 비롯해 각종 공시의무의 범위 등에서 규제 강도에 차이가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서도 자산총액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자산총액 5조 원 미만인 기업집단의 일감몰아주기는 같은 법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규정의 제1항 제7호를 적용해야 제재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는 제1항에서 1호부터 4호까지 네개 호를 통해 부당한 이익 제공의 행위유형을 제시하고 있어 같은법 제23조 제1항 제7호보다 상대적으로 공정위가 위법행위를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적다.

법률 규정상 한계로 공정위의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조사 실적이 미미하다는 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공정위는 중견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놓고 40건 가운데 6건에만 제재를 내렸다.

그나마 과징금 처분이 내려진 2건 가운데 1건은 행정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해 과징금을 반환했다.

전 위원은 “중견기업사건은 대기업에 비해 공정위가 거래의 부당성 등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사정이 이런데 공정위가 중견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제대로 제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중견기업 감시는 조 위원장이 취임할 때부터 꾸준히 강조한 사항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기업집단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시장에서의 반칙행위 또한 용납되서는 안 된다”며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위법행위에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였던 22일 대한상공회의소 ‘CEO 조찬간담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중견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들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만 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사익편취는 자산총액 5조 원 미만의 기업집단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며 “이러한 기업집단에도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내부지원이 있다면 법집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 위원장은 우선 법령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최대한 중견기업 감시 강화기조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예산안심사와 총선 준비 등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한동안 공정거래법 등 법령 개정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임자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해에 마련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을 만큼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는 더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