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대상의 수출통제조치를 장기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추가 수출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불확실하다.

22일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아베 총리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의 수출통제조치를 조만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Who] 아베, 개헌 발의선 실패해 한국 수출통제 장기화 선택하나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는 내용의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24일까지 의견을 받은 뒤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뺄지를 최종 결정한다.

한국 정부가 23일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부당함을 알리는 의견서를 일본에 내기로 했지만 참의원 선거결과를 보면 한국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과 합쳐 전체 의석의 과반을 얻었지만 개헌에 필요한 선까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고려하면 아베 총리가 한국 대상의 수출통제 조치를 한동안 지속하면서 개헌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을 모으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2만6826명 가운데 56%는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가 타당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은 21%로 나타났다.

아베 총리가 22일 아사히TV의 참의원 개표방송에 나와 “한국이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어긴 상황에 관련해 답변을 하지 않으면 건설적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아베 총리가 수출통제조치를 오랫동안 이어간다는 예상에 무게를 실으면서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2일 참의원 선거 결과를 근거로 들면서 “일본 정부가 7월 말~8월 초에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예상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아베 총리도 참의원 선거결과를 고려하면 그냥 물러나진 않을 것”이라며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높다고 대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베 총리가 특정 한국산 품목의 관세율을 높이거나 송금 정지, 비자 발급의 강화 등 추가 조치를 통해 무역갈등의 전면적 확전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향한 첫 규제조치로 반도체 소재품목 3개의 한국 대상 수출절차 간소화를 적용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면 이 조치가 식품·목재를 뺀 수출품목 전반으로 확대된다.

한국 대상의 수출품목마다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교역이 번거로워지지만 수출 자체를 제한하는 쪽은 아닌 만큼 향후 협상의 여지가 어느 정도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도 방송에서 “한국 대상의 수출통제조치는 결코 보복조치가 아니다”며 “한국에 3년 동안 무역관리를 협의하자고 요청했지만 상대가 대응하지 않은 만큼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쌓은 뒤 한국 쪽에 성실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아베 총리는 선거 기간에 어떤 대화나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선거 직후 한국 대상의 수출규제를 이야기했다”며 “정치적 목적을 일정 부분 이룬 데 따른 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렸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변수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23~24일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일본의 수출통제조치를 안건으로 올리면서 일본 정부와 맞붙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모두 바란다는 전제 아래 두 나라의 무역갈등에 관여할 가능성을 내비친 점도 아베 총리가 무역갈등을 확전하는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의 마찰은 정치적 명분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만큼 빠르게 진정되기 어렵다”면서도 “미국 의회가 중재자로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역사적 배경과 제재 명분까지 고려하면 협상 테이블에 미국 역시 앉아야 한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