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2021년까지 주요 사업에 180조 원을 투자한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도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내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부문 투자를 최종 결정한 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오너경영인'답게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 밟고 있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이 투자 결정의 주체와 과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일은 없지만 삼성을 포함한 한국 재벌기업에서 그룹 총수가 아닌 사람이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도 1일 삼성전자 주요 사장단을 소집해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투자계획을 차질없이 집행하기 위해 만전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서 전문경영인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맡기는 오너 역할에 그치기보다 적극적으로 사업전략 수립과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오너경영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달리 이 부회장이 2016년에 오너 일가 최초로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른 점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과거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경영권을 다 넘길 생각이 있다"며 전문경영인에 삼성 경영을 맡길 가능성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전면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점을 볼 때 '훌륭한' 경영인을 찾기보다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데 최선을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오너경영인으로서 역할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삼성전자 지배구조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이 부회장이 들고(own) 있는 삼성 계열사 지분은 삼성전자 0.7%, 삼성물산 17.1%, 삼성SDS 9.2%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의 오너(owner)라 부르기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다.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아도 지분율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박근혜 게이트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이 불거지며 이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과 같은 방식으로 삼성그룹에서 지배력을 높이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계속 이끌려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오너경영인으로 인정받는 일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이 부회장은 오너경영인으로서 책임경영을 더욱 강화하고 삼성그룹 주요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권한을 지닌 사람에 의해 이뤄지고 그 사람이 결과에 책임을 진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라 있지만 경영전반을 총괄한다는 것 이외에 뚜렷한 직책을 맡지 않았고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까지 한 번도 삼성전자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133조 시스템반도체 투자와 삼성그룹 차원의 180조 투자도 실제로 이 부회장이 주도했는지,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확정되었는지 뚜렷하지 않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180조 투자는 계열사와 주요 사업부의 투자 계획을 종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투자금액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주주들과 국민에 오너경영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이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에 앞서 전문경영인과 이 부회장의 권한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삼성이 내놓은 대규모 투자와 같은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데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삼성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경영체제에 관련한 문제는 과거 삼성 미래전략실이 뚜렷한 근거 없이 그룹 전반의 경영을 총괄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부터 계속해 불거져 왔다. 미래전략실이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에서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다른 계열사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도 드러나면서 이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이 부회장이 오너경영인으로서 인정받으려면 계열사 등기임원으로 이사회 등 합법적 의사결정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법과 원칙에 따라 경영을 해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KBS1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사업에 관련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