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들을 마음껏 경쟁하게 놔두면 세계시장을 방방곡곡 날 수 있을 것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사장이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늘Who] 김택진, 엔씨소프트 '은둔경영' 탈피해 '맏형' 역할 넓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사장.


'은둔 경영자' 꼬리표를 떼고 한국 게임업계 '맏형'으로서 보폭을 갈수록 넓히고 있다. 

10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벤처 1세대 가운데 오너이면서 대표를 직접 맡고 있는 기업인은 김 대표가 사실상 유일히다.

게임업계를 대표할 만한 명분과 이유를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흔히 ‘3N’이라고 불리는 게임회사 가운데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 대표이사는 회사를 매각하겠다고 내놨다.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도 받는 중이다.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은 사업총괄과 대표 역할을 권영식 넷마블 집행임원에게 넘겼다.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의 유일한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며 회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게임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국회도 김 대표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과거 공식적 자리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드물어 한때 은둔형 경영자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공식석상에 참석하는 횟수가 늘고 있는데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역할도 마다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에는 김 대표가 창업할 당시와 다르게 게임산업이 지닌 위상이 훌쩍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게임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는 월등히 높아졌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산업 수출액은 2018년 42억 달러로 한국 콘텐츠산업 전체 수출액(75억달러)의 56%를 차지한다. 게임수출은 최근 5년 동안 연 평균 9.5%가량 증가했다.

경기도는 2022년까지 게임산업에 533억 원을 투입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게임을 둔 사회적 인식도 차츰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 하자 정부를 비롯해 학회와 각종 단체가 합심해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9일 엔씨소프트를 방문한 박양우 장관을 비롯해 김영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이재홍 게임물관리위원장,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 등을 만났다. 

비공개로 진행한 회담에서 김 대표는 “게임회사들을 마음껏 경쟁하게 놔두면 세계시장을 방방곡곡 날 수 있을 것”이라며 “규제가 많은데 자유로운 경쟁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올해 들어서만 게임업계를 대표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낸 것은 세 번째다. 

김 대표는 2월 청와대가 주최한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정부가 지원책을 시행할 때마다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것 아닌가 우려한다”며 “지원을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유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다른 나라는 그 나라 기업을 보호하는 강고한 울타리가 있어 해외 기업이 들어오기 어려운 반면 한국은 거꾸로 해외 기업이 들어오기 쉽고 한국 기업은 보호받기 어렵다”며 “정부가 더 스마트해졌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오늘Who] 김택진, 엔씨소프트 '은둔경영' 탈피해 '맏형' 역할 넓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9일 엔씨소프트를 방문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와 면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김 대표는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 대화’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문 대통령 왼쪽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더욱 주목을 받았다. 청와대는 당시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게임·정보통신기술기업의 대표 주자로서 김 대표를 대통령 옆자리에 배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에는 국정감사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이전에도 국정감사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번번히 거부했던 데서 확연히 달라진 행보였다.   

그는 국감에서 ‘리니지M’의 사행성 논란을 적극 해명하는 동시에 청소년 보호에 정부도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대표는 조경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청소년 보호를 위해 확률형 아이템 제한과 결제한도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김 대표는 “모바일게임은 온라인게임과 달리 서비스 방식이 달라 엔씨소프트 등 게임회사 하나가 아닌 정부 등 관련기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게임업계를 대표해 규제 완화 등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엔씨소프트 사업을 위해서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9일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권영식 넷마블 대표와 양동기 스마일게이트홀딩스 대외담당 사장,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각자대표이사,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이사, 문지수 네오위즈 대표이사 등을 만나 “성인의 PC온라인게임 결제한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월 50만 원까지 결제할 수 있다.

결제한도를 폐지하면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등 PC온라인게임에서 내는 매출이 크게 뛸 것으로 예상된다.

리니지는 3월 ‘리니지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통해 자동조작 기능과 모바일기기 원격조정 기능을 추가한 데다 4월 갑작스레 과금체계를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 방식으로 바꿨다. “리니지는 이제 모바일게임이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용자들이 게임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급증한 만큼 결제한도가 풀리면 매출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재수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는 10일 콘퍼런스콜에서 “리니지는 리마스터 업데이트와 부분유료화 이후 동시접속자 및 활성이용자 수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재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