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궁지에 내몰렸다.

김 대표는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뒤 삼성그룹을 대표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모든 회계처리를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런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으로 벼랑 끝에 몰리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과정에 삼성그룹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동안 일관되게 고의 분식회계 의혹을 전면부인 해왔다.

김 대표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고의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회계처리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증권선물위원회의 감리 결과에 깊이 유감을 느낀다”며 “이번 이슈가 회사의 본질적 기업가치나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힘쓰고 수주 확대에 온 힘을 다해 주주가치가 제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금까지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고의성이 없었으며 삼성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 아니란 점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김 대표의 그동안 주장과는 상반되는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7일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에 숨겨진 회사 공용서버와 직원 노트북 등을 확보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용서버와 직원 노트북 수십 대를 분산해 보관하다가 최근 검찰이 수사망을 좁혀가자 은닉한 자료를 다시 꺼내 일부 기록을 훼손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면 숨기고 싶은 내용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김 대표가 분식회계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증거인멸 수사에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사이의 연관성을 파헤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검찰은 8일 오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자료 은폐에 개입한 혐의로 삼성전자 보안선진화 태스크포스(TF)와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 소속 임원 2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안선진화 태스크포스는 삼성그룹 전반의 보안을 담당하는 곳이고 사업지원 태스크포스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를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 가치를 부풀리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을 23.2%나 보유하고 있었던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그룹 지배력을 확대했다. 

현재 삼성물산은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김 대표 역시 신뢰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물론 검찰수사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 전반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우선 김 대표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처분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면서 4조5천억 원대의 고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해 김 대표와 회계담당 임원의 해임 권고 및 80억 원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월 행정소송을 통해 본안소송이 끝난 뒤 30일까지 증권위 처분 집행의 유예를 받은 상태다. 

수사결과에 따라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금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건을) 제대로 수사를 해보니 (삼성그룹의) 조직적 합병승계 작업과 관련된 사안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의 자만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게 제 생각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