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화학사업 구조개편을 본격화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 등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그동안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을 그룹의 새로운 중심 계열사로 점찍고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가 불황에 시달리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응책 마련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롯데지주의 중심으로 롯데케미칼 키우기 시동 걸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2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롯데첨단소재 흡수합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합병 등 다양한 방향을 검토 중이고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5월 이사회를 열어 롯데첨단소재 흡수합병을 확정짓는 것이 유력하다.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하면 롯데그룹은 화학사업에서 비용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

롯데첨단소재는 합성수지와 인도대리석 등을 주로 만드는데 이런 제품들의 원재료 60%가량을 롯데케미칼이 생산한다. 두 회사가 같은 법인으로 내재화를 하면 불필요한 절차와 거래비용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컴파운딩 등 서로 겹치는 사업부문을 합치면 시너지 강화도 가능하다.

롯데케미칼이 외형 키우기에서 고부가 다운스트림 제품 확대로 성장전략을 수정한다는 의미도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에틸렌 등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업스트림’과 이런 기초화학제품을 이용해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으로 구분된다. 롯데케미칼은 업스트림, 롯데첨단소재는 다운스트림 중심의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합병이 이뤄지면 롯데케미칼은 기존 설비 하단에 다운스트림 제품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며 "고부가 제품을 공격적으로 넓혀 안정적 실적의 유지 및 이익률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수익성 확대가 절실하다. 지난해는 3년 만에 오랜 라이벌인 LG화학에게 영업이익 1위를 내주기도 했다.

불황 속에 두 회사 모두 영업이익이 크게 축소되긴 했지만 롯데케미칼은 전년보다 32.8%, LG화학은 23.3% 줄어 LG화학이 상대적으로 선방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차이에서 빚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LG화학은 기초 소재부터 배터리,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와 불황 방어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반면 롯데케미칼은 전통적 석유화학사업에 집중한 탓에 경기 둔화로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뒤늦게 사업을 다각화하기보다는 그동안 흩어져있던 자회사들을 한 데 끌어모아 기존사업을 효율화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중으로 롯데정밀화학 합병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은 최근 전기차배터리사업 진출 계획에 관해 “우리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는 있지만 지금 시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 회장에게 롯데케미칼은 의미가 남다르다. 수십 년 동안 롯데그룹을 대표했던 유통사업이 부진에 허덕이는 사이 화학사업이 새로운 간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으로 2017년 롯데그룹 기여도가 54%에 이른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 전체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 롯데케미칼이 기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한국 롯데그룹에서 처음 경영수업을 받은 곳 역시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이었다. 

신 회장이 최근 경영에 복귀하자마자 롯데케미칼을 롯데지주에 편입한 것 역시 이런 기조를 뒷받침한다. ‘롯데그룹 50조 원 대규모 투자안’에서도 롯데케미칼 등 화학·건설 부문에 가장 많은 투자금을 할당했다.

지난해 말에는 신 회장이 최측근인 임병연 부사장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로 앉히기도 했다. 임 대표는 2009년 롯데그룹 정책본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뒤 한 번도 신 회장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